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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영화 중력삐에로를 보고 : 절대악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09. 12. 1.

09.12.1

최근 영화 중력삐에로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소설가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소설에 기반한 것인데 지루하지 않고 꽤 좋았습니다. 그 줄거리를 말해보면 이렇습니다. 두 형제 이즈미와 하루는 남다른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엄마가 강간을 당했고 그로 인해 임신을 했으며 그렇게 탄생한 아이가 하루인 것이죠. 엄마는 자살인지 사고인지 알수 없는 사고로 죽고 아버지만 살아있습니다만 그 아버지조차 암으로 죽어갑니다. 그런 상황에서 도시에는 연쇄방화범이 나타나고 하루의 친부 그러니까 그 강간범이 겨우 5년형을 살고 사회로 복귀해서 같은 도시에 있다는 것을 두형제는 알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아내가 강간당하고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는 신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리고 이런 답을 들었답니다. 스스로 생각해라. 이즈미가 강간범을 익사시킬 준비를 하는 동안 하루가 30차례의 연속 강간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방화를 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즈미는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하루가 그 강간범을 먼저 불에 타죽게 만듭니다. 이때도 형은 동생에게 말합니다. 너는 잘못한게 없다. 이세상에 너만큼 이 사건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없다. 

 

 

영화속의 캐릭터로서 강간범은 순수한 악입니다. 내가 즐거우면 강간은 본래 좋은 거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암으로 죽어가는데, 엄마는 전에 죽었는데 그런 말을 듣는 이즈미와 하루가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지요. 

 

문제는 이거라고 봅니다. 이 영화처럼 극적인 상황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때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말이 통하지 않는 단체, 말이 통하지 않는 정치인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을 순수한 악으로 인식하게 되죠. 대화가 통할 수 없는 상대, 한마리의 미친 개를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것 같은 상황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뭘해야 하는가. 우리는 대충 세가지의 가능성을 고려할수 있습니다. 하나는 간디같은 성자가 할 행동 -저는 간디의 본래 뜻이 이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즉 무조건적인 용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친 개가 자기 다리를 무는데 그냥 내버려두는 것같은 일이 아닐까요? 더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사회적 통념에 따르는 것입니다. 즉 법과 상식의 테두리안에서 분해도 참는 것입니다. 용서도 아니고 복수를 안하는것도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법과 상식안에서 해결한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권해지는 방법입니다. 

 

 

세번째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하는 것처럼 잘 생각해서 자신의 생각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법도 상식도 무시하겠다는 겁니다. 

 

보통 법과 상식을 무시하라는 말을 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사소한 집시법을 따르는 것과 민주화운동을 해야 한다는 내부적 욕구와의 싸움에서 법과 상식만 따르라고 한다면 이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에 법이나 상식따위는 무시하라는 말을 일반론적으로 긍정한다면 이 세상은 무법자천지가 될 것입니다. 

 

내 생각에 개인으로서 우리앞에 주어진 문제는 이것이라고 봅니다. 일단 일반적 기준으로서 법과 상식의 존재를 긍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습니다. 즉 내가 살인을 하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살인죄로 처벌받는 관례를 없애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두번째는 상식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나는 과연 그럴만한 상황에 있는가를 판단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우리모두가 법과 상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어야 하고 그럴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것과 지금 이 순간 그것이 바람직한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린애가 장난감을 빼앗아간 친구를 칼로 찔러죽이면서 나는 상식과 법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일반적 지혜, 일반적 상식, 일반적 법, 일반적 관습이라는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하는 질문에 답하고 그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이 영화속에서 우리는 그 아버지는 과연 강간당해서 생긴 아들을 출산해야 했는가라던가 살인이 정당한가라던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 답은 어느쪽이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윤리적 상황에서 일반론적 답을 내리는 것 즉 이러저러한 상황이면 이게 옳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 모든 순간은 다르고 결국 각자가 잘 생각해서 자신의 결단을 내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 책임도 져야죠. 그에게 옳은 것은 나에게도 옳다는 것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받아들이고 법과 상식에서 자유로워질 준비가 되어있는가, 책임을 준비도 되어 있는가, 그걸 우리는 각자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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