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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영화 굿바이 :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by 격암(강국진) 2009. 12. 15.

9.12.15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들의 이름들을 죽 보다가 일본 영화 굿바이를 보고는 몇가지 쓰고 싶은 말들이 생각났다. 영화 굿바이는 원제 오쿠리비토로 출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철도원의 유명여배우 히로스에 료꼬가 나오지만 영화자체내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같다. 

 

 

영화는 한 첼리스트가 오케스트라에 취업하자 마자 오케스트라 해산으로 일을 잃어버리고 고향집으로 낙향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에 젊은 애인을 따라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남아서 지켜온 그 집은 찻집이었다가 술집으로 운영했었다는 데 뭐가 되었건 시골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정취있고 멋진 까페 분위기를 가졌다. 그 집에서 젊은 두 부부는 시골생활을 시작한다. 연주여행을 하며 평생을 낭만적으로 살겠다는 꿈은 현실과 부딛혀 산산조각이 나고 만것이다. 

 

그는 우연히 잘못된 취업광고를 보고 찾아가서는 염습사가 되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염습사란 장의사의 일 중 염을 하는 부분만 전문화 된 직종이다. 시체를 염을 하는데 본래는 가족이 하는게 전통이었으나 염습사는 그 가족의 일을 대신해 주고 화장을 시켜주고 얼굴을 정돈해 주는 일을 해서 입관시키는 것을 돕는다.

 

일본은 사실 죽음과 친숙하게 살아가는 나라다. 우리는 동네 한구석에 공동묘지가 있으면 집값떨어진다고 야단이 날것이다. 일본이라고 해서 그걸 좋아할 리야 없지만 실은 일본은 동네 구석구석에 그런 작은 무덤자리들이 보인다. 집과 무덤이 뒤섞여있는 일본을 보면 일본은 그런 쪽으로 질색하는 것이 훨씬 적다고 느껴진다. 

 

그런 일본이지만 염습사라는 직업은 아내로부터도 친구로 부터도 인정받지 못한다. 모든 것을 이해해주던 아내도 결별을 결심할 정도의 강도로 반대하고 친구도 안면을 바꿔 제대로된 직업을 가지라며 무슨 부끄러운 사람을 만나듯 대한다. 

 

 

 

남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것에서도 난관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길을 보내주는 일의 보람을 느끼게 되면서 일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영화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로 이 직업의 여러가지 상황을 보여주다가 어릴 적 자기를 버리고간 아버지를 직접 염해주는 것으로 끝이난다. 원망하던 아버지 였지만 찾고보니 버린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면목이 없어 평생을 헤매다닌 초라한 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결국 그를 평생 그리워 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영화상을 비롯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의 여러부분을 휩쓴 영화로 추천받아 마땅한 영화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머릿속에 떠올린 이야기는 죽음의 의미라던가 가족의 의미라던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보다 직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 꿈꾸던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정말 드물다. 설사 정치가나 과학자나 사장이나 교육자를 꿈꿔서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는 그 직업이 자기가 상상한 그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그 직업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꿈꾸던 직업을 하고 있는 것인데다가 나름대로 그 직업에서 보람도 계속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상당히 운좋고 능력이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이 영화는 멜로나 가족이야기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도 직업의 세계를 다룬다는 중심축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 점이 이 영화의 최고의 미덕이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는 유감이지만 그것이 법정드라마던 메디컬드라마던 상관없이 모두가 멜로로 흐르고 마는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일전에 히트친 드라마 종합병원도 온통 간호사와 의사간의 멜로가 강조되어 의사들이 집에 가서 아내에게 변명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직업의 세계에 충실하라라는 메세지는 한 미 일 세개의 나라 중 일본에서 가장 강조되어지는 미덕인것 같다. 한국은 솔직히 드라마 속에서 배금주의적 시각이 너무 강한 경우가 너무 많다. 즉 직업에 대한 존경심이나 자부심은 거의 없고 수입과 사회적 평가로 직업이 평가되고 만다. 이것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장인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국에서는 외길인생으로 나름의 보람을 찾는 인생을 별로 인정해 주질 않는다. 

 

미국은 일본같은 장인정신은 아니라도 프로정신이 매우 강조된다. 빵을 만들건 청소를 하건, 그림을 그리건 거기에는 전문가적인 훈련과 경험과 식견의 깊이가 있다는 것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 선진국이다. 일본은 거기에 더 나아가 아예 직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한우물을 파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다는 발상을 제시한다. 그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정치적 보수색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이 정치 사회적으로 어리석어 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행복과 삶의 보람을 찾는 한가지 방법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는 결국 뭔가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 돈이나 지위, 사회적 명성이나 어떤 명분을 만족시키기 위해 직업의 세계를 산다기 보다는 그냥 그 직업이 주는 작고 큰 보람에 만족하며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행복해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더 좋은 직장, 더 큰 명성, 더 높은 사회적 평가에 행복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내 일을 충실히 하며 사는 것에도 답은 있지 않을까?

 

적어도 한국사회는 이 답에 그리 강하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같다. 그것도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것을 한번 경험해 본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그것이 다른 나라 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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