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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영화 스모크 : 삶이란 선택의 연속

by 격암(강국진) 2009. 12. 25.

9.12.25

훌룡한 배우가 가져야 할 첫번째 조건을 내게 꼽으라면 나는 강력한 인격적 인상을 들 것이다. 하비 키이텔이 영화 스모크에서 오기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 생각을 했다. 그가 상점 카운터 뒤에서 담배를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사가 없고 심지어 아무 행동도 없어도 그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름이진 이마와 다부지게 다물어진 입술 그리고 매서운 눈매는 그가 고집스러운 사람이란 것을 보여준다. 그는 결코 성직자처럼 절제하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 엄격한 자신의 규칙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그는 말을 해도 어물어물 말을 하는 법이 없다. 항상 똑부러지게 이것봐 하는 식으로 주목을 끌면서 정확히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는 상냥하거나 법을 잘 지키는 착한 시민은 아니다. 여자에게건 어린애에게건 응석은 받아주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다. 그 같은 사람과 이야기하려면 긴장을 해야 한다. 어떤 선을 넘어서면 그는 즉각 한방 날리거나 뭐라고 쏘아붙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좋은 사람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들이 써주지 않을 바보를 점원으로 쓰고 인연이 어쩌다 닿으면 결국 힘없는 할머니도18년전에 자신을 배신한 여자도 사고를 치는 흑인 꼬마도 도와주고 만다. 

 

 

 

 

스모크는 웨인왕 감독이 1995년에 발표한 영화다. 오기는 뉴욕 맨하탄에서 시거가게를 하고 있는 남자다. 영화는 오기의 가게 손님들이 야구로 잡담을 하다가 단골손님인 소설가 폴이 담배를 사러와서는 연기의 무게를 재는 법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폴은 총격사건으로 임신한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는 남자다. 야구 이야기와 책을 쓰는 작가가 단골로 들리는 맨하탄의 담배가게의 풍경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는 뉴욕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거기에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진한 농도로 보여준다. 

 

영화는 삶의 고비에서 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여러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차에 치일뻔한 폴을 구해준 흑인 고등학생 토마스는 우연히 권총강도와 길에서 부딪혔을때 그들이 떨어뜨린 돈봉투를 들고 달아나 버린다. 아마도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을 것같은 토마스는 그 순간의 행동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권총강도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돈은 자신의 미래라고 그는 말한다. 도대체 그런 짓을 왜했냐고 묻는 폴에게 그는 대답을 잘 못한다. 그냥 한 것이다. 그냥 그랬는데 그게 그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었다. 

 

폴은 토마스에게 단순히 고맙다고 하고 헤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계속 고집하여 음료수를 사주고 결국 잠자리까지 제공하면서 점점 토마스와 가까워 지고 나중에는 오기에게 토마스의 일자리를 부탁하게 된다. 토마스가 집에 없을 때 폴의 집으로 권총강도들이 찾아와 폴은 죽음의 위기를 맞지만 토마스가 경찰을 부른 덕에 팔에 기부스를 하고 얼굴에 상처를 입는 정도로 끝이 난다. 그래도 폴은 토마스를 걱정하고 토마스가 자신의 친아빠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데 도움을 준다. 

 

오기는 3년동안 고생해서 5천불을 저금했다. 그리곤 그것을 쿠바산 시거를 밀수하는데 투자하는데 토마스가 그걸 전부 물에 적셔서 날려버린다. 이 일로 인해 한때 토마스가 자신의 미래라고 말했던 돈은 토마스에게서 오기로 넘겨진다. 오기는 낙담하다가도 어린 꼬마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지만 돈을 주고 싶고 우정과 시거 가게에서의 자기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토마스의 청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 돈은 오기를 위해 씌여지지 않는다. 오기는 18년전에 자신을 배신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가 오기의 딸이 있다고 찾아 온 것이다. 마약을 하는 딸 때문에 오기는 고민하지만 돈이 없어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오기는 그 돈을 그냥 건네주고 만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단순히 옳다던가 틀리다던가 혹은 존경할만 하다던가 비난해야 할 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들은 좀더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그만큼 더 무미건조했을지 모른다. 그들은 모두 우리가 서있는 곳과는 다른 곳에 서있다. 우리는 대부분은 빈민가의 흑인 꼬마도 아니고 대학에 가는 대신에 입대를 해야 했던 시거가게 주인도 아니며 아내가 총에 맞아 죽은 소설가도 아니다. 우리가 그 중의 하나라고 해도 삶의 자세한 부분은 또 다를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선택들이 모두 무작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인격들이며 그들 나름의 논리와 살아가는 방식대로 선택을 하고 있고 그 결과를 맞이 하고 있다. 

 

영화는 오기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끝이 난다. 오기는 도색잡지를 훔쳐가는 도둑을 쫒다가 그의 지갑만을 줍고 만다. 지갑을 줍고보니 그 지갑안에는 꼬마와 엄마의 사진이 있었다. 오기는 그걸보자 그 도둑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만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할 일이 없던 그는 그 지갑을  돌려주러 지갑의 주소로 찾아간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눈이 먼 흑인 할머니가 외로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만을 발견한다. 그 할머니는 처음엔 자신의 손자가 크리스마스에 자신을 방문해 준줄 알고 기뻐한다. 그 착각의 순간, 오기는 그녀의 손자인척 하기로 결정한다. 할머니도 곧 그가 그녀의 손자가 아니란걸 알았다, 그러나 그냥 그걸 모르는 체 하기로 한다. 외로운 할머니에게 호의가 베풀어졌고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선택과 선택이 합쳐져서 그 외로운 둘은 크리스마스 식사를 함께 한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약간의 변수와 함께 끝이 난다. 오기는 그 집의 화장실에서 훔쳐온 것이 뻔한 박스채 쌓여있는 카메라 더미를 발견한다. 오기는 슬쩍 한개를 가져와 버린다. 몇달후 그가 양심의 가책때문에 할머니를 다시 방문했을때 그 할머니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에 사진을 찍지 않던 그는 그 사진기로 매일 같이 맨하탄 3번가와 7번애비뉴가 만나는 곳에 가서 아침 8:30분에 사진을 찍는다. 그걸 10년이 넘게 해서 사진은 4천장이 쌓였다. 아내를 잃은 친구 폴은 그의 아파트에 와서 그 사진을 보면서 처음엔 이해를 하지 못한다. 똑같은 사진을 뭐하러 이렇게 많이 찍었을까. 잘 보지도 않고 휙휙 사진첩을 넘기는 폴에게 오기는 말한다. 너는 너무 빨리 보고 있다. 천천히 봐야 한다. 매일 매일이 똑같지만 동시에 똑같지 않고 다르다. 천천히 사진을 살피던 폴이 발견한 것은 총에 맞아 죽은 그녀의 아내가 우연히 찍힌 사진이었다. 천천히 사진을 보자 그안에는 정말 중요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매일 매일이 똑같다면서 건성으로 살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분명 매일 매일은 똑같지만 동시에 똑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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