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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호우시절, 사랑에 대한 또하나의 영화

by 격암(강국진) 2010. 7. 4.

10.7.4.

호우시절은 정우성과 고원원 두배우가 출연한 사랑영화입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그 대본을 쓴 사람은 유명한 이외수씨의 아들이라고 하는 군요. 극의 배경이 되는 무대는 사천입니다.

우선 제목 호우시절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그건 두보의 시 봄날밤의 기쁜비에서 나오는 말로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린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春夜喜雨(봄날 밤에 기쁜 비)

好 雨 知 時 節當 春 乃 發 生隨 風 潛 入 夜潤 物 細 無 聲野 徑 雲 俱 黑江 船 火 燭 明曉 看 紅 濕 處花 重 錦 官 城

즐거운 비가 그 내릴 때를 알아
봄이 되면 내려 생을 피우는구나.
바람 따라 밤에 살며시 내리니
세상을 소리 없이 촉촉하게 적시네.
들길은 낮게 드리운 구름으로 어둡고
강 위에 배 불빛만 외로이 비치네.
새벽녁 붉게 비가 적신 곳을 바라보면
금관성에 꽃들도 활짝 피어 있으리라.
(인터넷에서 가져온 원문과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binil79/101912130 )

영화는 사천성의 음식, 팬더, 거리 문화등과 두보라는 시인을 배경으로 집어 넣으며 가장 중요한 암시적 배경은 사천성 지진이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영화는 일단 흥미로울 배경을 상당부분 가지게 되는 것인데요. 문화상품의 저력은 역시 삶의 모습과 전통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런 배경위에서 정우성이 박동하라는 이름을 가지고 중국으로 출장온 남자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사천에서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 메이 (고원원)을 만나게 되죠. 줄거리 자체는 단순합니다. 옛날에 사귀었다가 거리가 멀어지자 마음도 멀어져버렸던 여자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 별로 그 우여곡절이 크지도 않지만-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렇게 제가 그 영화에 대해 쓰고 있다는 것은 제가 그만큼 영화에 만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같은 느낌이 듭니다. 기본이 되는 적당한 국물에 고명과 면이 어우러져서 한그릇을 비우고 나니 뿌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영화입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이런 이미지는 이 영화가 엄청난 명작으로 기억에 남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만 그러나 명작은 명작의 쓰임새가 있고 그냥 예쁜 이야기는 예쁜 이야기의 쓰임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좋은 영화입니다.
사랑이야기는 남녀 배우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정우성도 멋진 남자로 나오지만 고원원은 참 예쁜 모습입니다. 두 남녀의 감정은 아마도 요즘 젊은 사람들 감성에는 지나치게 자제되어 보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인가 지루하다는 평을 쓴 사람도 있더군요. 

그러나 자제가 있기에 이 영화는 괜찮은 영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도 비슷한 말을 쓴 것같지만 남녀간의 사랑이란 진심으로 자기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이 가장 절정이 되기 마련입니다. 받아들여질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걱정하게 됩니다. 

만약 원나이트스탠드 같은 것을 제의하고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은 자신을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는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난 너에게 하룻밤정도의 가치만 느낀다. 그러나 난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는 사실 이러저러한 사람인데 너에게 사랑을 받을수 있겠는가하고 묻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반드시 사랑을 돌려 받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짝사랑이란 슬프고 힘든것이죠.

메이는 이중으로 상처입은 여자입니다. 박동하와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으로 돌아간 박동하는 편지에 대답도 없이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새로이 만나 결혼한 남자는 사천대지진때문에 잃었습니다. 박동하는 꿈을 잃은 남자입니다. 시인이 될거라 믿었지만 어느새 샐러리맨이 되어 자기가 선택한 길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된 남자입니다. 삶은 의무와 습관이 된 남자이며 이제 옛사랑메이의 기억이 희미해질 만큼 수없이 많은 여자들을 그저 거쳐오기만 하고 여전히 외로운 싱글로 남아있는 남자입니다. 

이 둘이 만나 둘은 다시 젊어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다시 시를 말하는 여자를 만나고 두보의 시를 선물해주는 여자를 만납니다. 여자는 박동하가 떠난후 박동하가 준 자전거를 팔아버렸다고 말합니다. 왠지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박동하는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잔잔한 영화의 절정이라면 절정이 되는 몇개의 포인트는 메이가 떠나는 박동하를 만나러 공항으로 뛰어올 때입니다. 분명히 입이 아니라도 행동으로 메이는 박동하에게 아직 자신은 박동하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한 셈이죠. 결국 둘은 호텔에 같이 숙박하게 되는데 왠지 메이는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다가 박동하가 메이와 사귀게 되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메이는 자신이 결혼한 여자임을 말하고 상황은 급격히 뒤집어 집니다. 

이 상황이 다시 뒤집어지는 것은 박동하가 교통사고때문에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한 메이를 보러온 사람에게 그녀의 남편은 지진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이죠. 결국 옛사랑이 부활하는 것은 아주 쉽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오해와 결단의 벽을 넘어 부활하게 됩니다. 워샹니는 나는 너를 보고 싶어라는 중국어 입니다. 박동하는 워샹니라고 쓴 편지와 노란색 자전거를 메이에게 한국에서 보냅니다. 

실은 모든 것이 그렇게 매끄럽기만 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박동하는 메이와 지냈던때의 기억을 별로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사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면은 옛사랑으로서의 메이의 중요성이나 그녀를 항상 사랑했다는 박동하의 주장과 반대되는 것같습니다. 메이는 너무 쉽게 박동하게 넘어오는 느낌입니다. 박동하가 자신과 헤어져서 다른 여자만난다고 연락도 안한 남자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약간 어리둥절합니다. 그녀가 자전거를 못타는 트라우마가 생기게 될 정도의 남자가 박동하이며 마찬가지로 옛사랑이 컷다면 상처도 컷을 것입니다. 상처가 크면 망설임도 크기 마련이지요.  만약 이 두사람이 정말 예전엔 아무것도 아닌, 옛사랑이라 부를 것도 없는관계였다면 영화는 그저 예전에 좀 알던 두남녀가 우연히 다시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가 되어 그 핵심적 매력을 잃게 되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두가지 이유로 그런 결점은 결점이 아니고 그냥 참을 만한 것이 됩니다. 가장 큰 것은 '종교'적인 이유지요. 즉 옛사랑은 부활할것을 믿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옛사랑에 대한 종교입니다. 옛사랑의 부활을 기원하고 믿는 관객에게 옛사랑의 존재는 신앙이며 캐릭터의 어색함은 옛사랑의 부활이라는 결과로 그럭저럭 무마됩니다. 두번째는 그것이 사실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이기 때문에 그것이 장점이기만 한것은 아니겠습니다만 현실속의 남녀들은 지고 지순하지 않습니다. 모순이 없지도 않습니다. 결국 다른 이야기는 다 잡소리고 박동하는 메이가 미녀이기 때문에 메이는 박동하가 매너좋고 미남이기 때문에 이유불문하고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가 현실에서는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굳이 옛사랑에 대한 영화를 소개하고 평을 쓰는 것은 왜일까 생각해 보니 영화 자체이상으로 우리의 추억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분명 사랑에 목숨바칠 각오가 된 10대나 20대 초반보다는 몇번의 사랑을 거치고 예전엔 그런 사람도 있었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호소력을 가질 것입니다. 아직 연애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추억이란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사랑이야기에 상관없이 중국 사천 청두의 사는 모습, 두보의 향기, 음식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니 다른건 뭐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즐기면 되는 일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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