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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영화 이창동 감독의 시

by 격암(강국진) 2010. 8. 9.

10.8.9

%이 영화평에는 소위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내용을 알기 싫어하시는 분은 읽지 마십시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영화 내용을 안다고 해도 시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이창동감독은 내가 한국 영화를 좋아하게 만드는데 지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박찬욱감독이나 봉준호감독 혹은 임권택감독이나 홍상수감독같은 감독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그들의 작품도 매우 기쁘게 보지만 그래도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국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해준 것은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이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초록물고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초록물고기를 보고 한국 영화를 좋아하고 다시 평가할 마음이 들었다. 따라서 영화를 볼 때 마치 첫사랑의 기억이 그 이후의 사랑에도 영향을 미치듯 이창동감독의 영화가 어떤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같다. 

이창동감독의 영화는 지극히 사실같은 이야기를 그리거나 사실 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흔히 비극적 상황이다. 그렇지만 생활의 발견같은 영화에서 흐르는 홍상수감독의 사실성과 이창동감독의 사실성은 다르다. 이창동감독은 항상 끝까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초록물고기 이전에 한국영화를 제대로 본 적은 없었지만 드문드문 영화를 본다고 해도 나는 그 안에서 항상 앞뒤가 안맞는 혼돈만을 느꼈다. 사랑도 모험도 두서가 없어보였고 절대적 절망속에서 영화는 아주 허망하게 끝나고 마는 것 같았다. 초록물고기는 달랐다. 초록물고기도 비극이지만 그 안에서는 막둥이와 그 가족의 애정 나아가 인간에 대한 희망같은 것이 보였다. 막둥이가 비극적으로 죽었다고 해도 그것이 개죽음은 아니었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모여서 장사를 하는 막둥이 가족을 보면서 세상은 조금씩 좋아질거라는 희망을 발견하게도 되는 것이다. 

시는 작은 소도시에서 사는 할머니 미자의 이야기다. 미자는 파출부를 하면서 홀로 엄마와 떨어져 크는 손자를 키우며 산다. 그녀의 삶은 영화가 진전되면서 처참하게만 흘러간다. 안그래도 어려운 삶인데 파출부를 하러 간 곳에서 그녀는 매춘부 취급을 받는다. 게다가 사랑하는 손자는 윤간당하고 자살한 여학생을 윤간한 사람중의 하나로 밝혀진다. 미자는 합의금마련이 어렵고 대책회의에 불려다니는 것이 어렵다. 거기에 더해서 그녀는 알츠하이머진단까지 받는다. 미자는 손자의 장래를 위해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말에 거의 매춘과 협박이나 다름없는 짓을 해서까지 돈을 마련하는 일도 한다. 미자의 삶은 대단히 고단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위에 시에 대한 문화교실의 이야기가 덮어진다. 시에 대한 이론은 미자에게 있어서 모순적인 것이 되는데 사물을 잘 보고 진짜로 보고 느껴지는 것을 쓰라는 말때문이다. 미자는 아름다운 사과나 꽃을 보려하지만 정작 그녀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은 비참한 그녀의 현실이며 죽은 여학생에 대한 미안함이다. 

그녀는 계속 시를 쓸 수가 없다면서 시를 어떻게 쓸 수 있냐고 묻는다. 그녀는 그녀가 만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메모를 남기지만 결국 시를 완성하지는 못한다. 그녀는 시낭송회에서 시를 읽고 음담패설을 하는 경찰을 보고 아름다운 것을 이야기하는 시를 모독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나에게 있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중 하나는 자기 자식들이 윤간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모인 부모들의 집회장면이다. 거기에는 응당있어야 할 것이 없다. 그것은 바로 죽은 여학생에 대한 미안함, 생명에 대한 존중, 윤리적 가치에 대한 감수성이다. 물론 사람은 이미 죽었고 일은 이미 터졌으니 부모들로서도 모여서 사과하고 합의금이나 건네고 하는 일밖에는 할 일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똑같은 것을 해도 있어야 할 감수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하는 것은 작은 차이같지만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 내고 만다. 

아뭏튼 대책회의로 모인 부모들은 기르던 개가 죽어도 그것보다는 더 슬퍼할 것 같았고 현장의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농담이 터져나오고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것은 잘봐줘도 감정없는 로보트들의 회의 같았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지만 감정없는 로보트 같아진 사람들이란게 정말 이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웃이 죽건, 아들의 친구가 밥을 굶건 아무 감정적 반응이 없어진 그런 사람이 정말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이 다수가 되는 사회란 얼마나 공포스러운 사회인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영화속에서 부모들의 대책회의는 상식적인 선택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시를 쓰려고 하는 할머니 미자는 마지막에 결국 가장 사랑하지만 죄를 지은 손자를 스스로 고발해서 죄값을 치루게 한다. 시를 쓰려고 노력하는 감성을 가진 그녀는 시는 제대로 못쓰지만 죽은 여학생의 사진을 보면서 돈 몇백만원주고 그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시문학교실에 마지막으로 시를 한 수 남기고 사라진다. 사랑하는 손자를 고발하고 알츠하이머로 미래도 없으며 여러가지 일들로 심신이 지쳐버린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영화는 분명히 말해주지 않는 듯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자살을 암시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녀가 남긴 시는 결국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죽은 여학생에 대한 것이었다. 그 시는 처음에는 미자의 목소리로 낭독되다가 여학생의 목소리로 변하는데 때문에 이것이 윤간당하고 자살한 여학생의 심정을 그린 것인지 매춘과 협박까지 해가며 구하려고 했던 손자를 경찰에 넘기고 상처입은 미자의 심정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것은 더더욱 그녀가 그 여학생과 같은 처지이며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은 물론 비극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절망을 말하는 비극은 아니다.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미자를 보여주는 희망의 영화이기도 하다. 

오늘날 시는 죽었는가. 나 자신도 문화적 소양이 부족해서인지 별로 시집을 사서보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시 이전의 것이 아닐까. 그것은 세상을 느끼는 감수성이다. 영화속에서 미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결핍되어 보이는 그것이 진짜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항상 시 쓰는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미자였지만 결국 시문학수업에서 시를 완성한 사람은 미자하나였다. 진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만 가득한 세상은 공포스럽다. 시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영화다. 이 세상이 시를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찼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여담이지만 주연배우 윤정희씨에 대해 한마디를 하고 이 영화감상문을 마치기로 하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한가지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것은 만약 이 영화를 다른 여배우가 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김혜자가 주연인 시는 어떨까. 윤정희의 연기에 불만을 가졌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는 주연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그 느낌이 엄청나게 달라지리라는 것을 느꼈다. 

윤정희라는 배우는 오랜동안 프랑스에서 살아온 배우다. 칸영화제에서 굳이 한복을 입어 스스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준 그녀는 분명 한국인이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진짜 한국인이 되려면 한국을 떠나 살아봐야 하는게 아닐까 하고. 한국을 떠나 살아본 사람들은 외국문화에 완전히 삼켜지거나 한국적 문화정체성의 소중함을 깨닿고 그것을 오히려 강화한다. 한국에서 살고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한국인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경험이다. 무엇보다 한국적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외국에 살면 여러가지 가치에 대한 판단이 다를 때를 느낀다. 다르니까 한국적 가치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답이 확실하지 않아도 질문은 떠오른다. 

이 영화는 보편성을 가진 영화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에 대한, 한국 사회를 위한 특수한 영화다.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영화다. 그렇게 볼 때 한국사회의 가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는 미자는 프랑스생활을 하며 사는 여배우라는 것이 나에게 어떤 씁슬함을 더한다.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더했을 때 그 사람이 도덕적 자존심을 가졌을 것을 상상하기는 더더욱 어려웠을까? 보다 보통의 한국할머니와 비슷한 김혜자표 시가 어떤 느낌일까가 궁금해 졌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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