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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명품드라마와 막장드라마의 차이

by 격암(강국진) 2010. 11. 25.
저는 드라마광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만 가끔은 아내가 보는 한국드라마를 볼때도 있고 미국이나 일본드라마도 봅니다. 이 이야기는 반드시 한국이나 미국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드라마를 넘어서 소설이나 영화등 모든 종류의 예술문화작품에 다 적용되는 것입니다만 이 세상에는 명품드라마가 있고 막장드라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명품과 막장을 나누게 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연기력이라던가 사극에서 고증의 정밀도라던가 극의 긴장감등 저마다 기준을 정할수 있겠습니다만 저의 경우 핵심적 부분은 갈등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갈등이 존재하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를 원하는데 가지지 못한다던가 둘이 공존할수 없는데 공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던가 하는 상황, 뭔가가 없는 상황, 뭔가를 강렬하게 원하는데 가질수 없는 상황, 뭔가가 피눈물나게 가슴아픈 상황등 해결되지않은 문제가 주는 갈등이 있기에 이야기는 존재할수 있는 것이죠. 

이같은 점은 어제도 해가떳는데 오늘도 뜬다라는 이야기처럼 당연하고 반복적인 것을 기술하는 이야기가 아무 재미가 없다는 점을 봐도 알수 있습니다. 뭔가 외계인이 폭탄을 태양에 발사해서 태양이 내일은 안뜰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돼야 재미가 있고 들을 이유가 있게 되는 것이죠. 

갈등이 있어야 이야기가 있는데 문제는 갈등의 내용입니다. 예쁜 여자를 봤다. 멋진 남자를 봤다. 저 사람을 내 애인으로 만들고 싶은데 그걸 못하네라는 것도 분명 갈등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원초적인 욕망, 순간적 욕망일 뿐입니다. 순간적 욕망이 갈등의 내용의 전부라면 이야기는 막장이라고 분류되기 좋은 쪽이 됩니다. 

선남선녀가 나와서 로멘틱한 대사를 하고 로멘틱한 상황을 연출하는 드라마는 보기에 눈이 즐겁고 재미있지만 사실은 생각보다는 그렇게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왜 둘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가에 대한 부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다면 두사람은 만나자마자 해피엔딩으로 바로 끝나버릴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바쁜 직업과 사랑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데 일에서는 경쟁자가 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자주 쓰는 다른 갈등의 주제가 유교적 전통질서와 현대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이 가정내에서 충돌하는 것이 갈등의 내용이 되는 것이죠. 보통 이런 이야기는 며느라와 시어머니간의 갈등으로 나오는 일이 많습니다. 

갈등의 내용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것같아도 실은 본질적으로는 한가지로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이 충돌하는 것이 갈등이라는 것이죠. 대장금이나 료마전같은 드라마는 인간 사회속에서 정의란 어떤 것인지, 사회는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풀어나가는 것이죠. 

바로 그래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어떻게 드라마안의 갈등구조에 반영되는가가 명품과 막장의 차이를 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따라오다가 보면 난 그냥 재미만 있으면 되지 인생에 대한 고민같은 건 복잡하고 싫다고 생각할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분명 드라마의 재미란 신기한 특수효과나 선남선녀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실은 이 이야기의 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얕다면 재미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두요리사의 이야기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두 요리사는 요리로 대결해서 서로를 이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요리사의 이야기지만 요리이야기는 별로 안나오고 괜히 남녀사랑이야기만 잔뜩 나오다가 승부자체는 터무니 없이 쉬운 비법하나로 끝나버린다면 재미가 있을리가 없지요. 

재미가 있으려면 요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나와야 합니다. 요리사들이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고 요리사세계의 현실을 자세히 묘사하면 할수록 그 배후에 있는 이유가 등장하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요리란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할때 대결은 이제 단순히 잔재주가 아니라 요리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충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리라는 특정주제를 깊게 파고들때 우리는 한가지 사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특수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때 일반론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집중력을 발휘하는 방법, 도덕적 가치적 판단을 내리는 방식,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길등이 점점더 요리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만한 이야기로 번지게 되고 결국은 이것은 요리이야기지만 정치이야기인것도 같아지고 그걸넘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식 막장드라마는 대개 억지스러운 갈등상황을 만들고 전부 사랑이야기로 채웁니다. 사랑이야기로 채우는 이야기는 제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한다고 해도 거기에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없을때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욕망의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로 현실에는 거의 등장하기 어려운 막장파 현대여성과 조선시대건 현대시대건 용납되기 어려운 시어머니를 등장시켜서 그들이 막장스러운 일을 끝임없이 벌이고 우연한 일이 겹치고 겹쳐서 오해를 낳고 비극을 낳아 차라리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더 현실성있게 보일정도의 이야기가 됩니다. 

막장드라마는 단순히 재미없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했다 시피 드라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주장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드라마가 쉽게 돈과 출세에 대한 욕망, 사랑이야기, 억지스러운 갈등으로 채워지는 경우 그것은 인생 뭐있어 잘먹고 잘살고 근사한 여자나 남자찾아서 즐기는게 인생이야 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됩니다. 

시커먼 타이어를 태워서 내놓았다면 그위에 각종 양념이며 장식을 달았다고 해도 그걸 먹을때 소화불량에 걸릴것입니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막장드라마는 특히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막장드라마는 그런 느낌을 줍니다. 각종양념에 속아서 이야기의 핵심적 갈등에 대한 고민없이 막연히 드라마를 소비할때 그것은 말처럼 그렇게 시간때우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느정도는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사람,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에 대해 고민을 어느정도하는 사람은 막장이야기를 들을때 심리적인 고통을 느낄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야기가 내부로 침투해서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예 마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뭐 그냥 심심풀이인데 뭐라고 말하지만 실은 막장이야기의 노예가 되어 어느새 그 막장드라마의 내용을 두고 사람사는게 정말 저렇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요즘은 문학이 죽은시대라고들합니다. 문학이 죽었다는 건 이야기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작가가 인생의 근원적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서 공감받을 것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고민이 없으니 갈등도 없고 따라서 할 이야기도 공감받을 것도 없는 것이죠. 그것은 우리가 마침내 더이상 앞으로 나갈곳이 없는 천국같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뜻이거나 -개인적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가 개인들에게 주입하는 삶의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다른 걸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것입니다. 전자가 아니면 후자일텐데 아무래도 후자같이 느껴집니다. 


당연한걸 당연하지 않게 보고 그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 고민을 잘 풀어내서 보여주는 명품드라마가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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