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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연애시대라는 드라마.

by 격암(강국진) 2011. 5. 4.

내가 즐겁게 봤던 드라마로 연애시대라는 드라마가 있다. 오늘은 문득 그 드라마 생각이 나면서 참 그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드라마 자체도 나는 좋아하지만 그 드라마 이상으로 지겨운 몇몇 드라마가 생각이 나서 그렇다. 





나는 종종 거기 있는 것보다 거기 없는 것이 더 중요하고 거기 보이는 것보다 그 배경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연애시대라는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 인지는 그 드라마를 보는 것이상으로 다른 드라마를 보는것, 그리고 왠지 뭔가가 다른데 그게 뭘까를 생각하는게 필요하다.


우리나라 드라마건 외국 드라마건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소재가 있다. 재벌 이야기, 액션 첩보물, 출생의 비밀, 비극적 사랑,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왕들 이야기, 정치가 이야기,..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면서 혹은 재미없게 보면서 생각해 보면 그런 드라마가 암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 메세지는 이거다. 인생이 즐겁고 의미있고 재미있으려면 스펙타클한 액션이나 거대한 부자나 왕이나 정치가가 될 필요가 있다. 특이한 직업을 가지거나 높은 사람이 되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게 무슨 메세지인지도 모른채 그런 메세지에 물들어 간다. 그러다가 어느날 연애시대같은 드라마를 보면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 사실 이드라마도 손예진 감우성같은 매력적인 미녀 미남이 나오긴 마찬가지만 그래도 그것은 절제되어 있다. 액션도 없고 특이한 직업도 아니며 권세도 없고 무슨 출생의 비밀이나 충격적 이야기도 별로 없거나 절제되어 있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거기에 그런게 하나도 없다는 것에 있다. 결혼한 남자가 결혼을 번복한다는 마지막 에피소드같은 것은 드라마의 매력을 별로 더하지 않으며 오히려 개인적으로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거기에 그런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보이는게 있다는것이다.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 주는 친절한 단골집 아저씨, 항상 만나서 잡담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친구들, 아침마다 먹는 베이커리의 빵들이며 음악이며 가끔씩 놀러가는 바다며 춘천같은 곳에 대한 그리움 그런 것이다. 


즉 개인의 일상생활에서의 소소함, 작은 것들을 보여주면서 결국 행복과 만족은 그런 것에서 나온다는 것, 대단한 이벤트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단순히 소소한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으로 단순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히려 작은 세부사항에 대한 배려, 섬세함의 중요성이다. 우리 마을이 행복한 마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데 그 대답이 다리를 놓는다, 유원지를 만든다라는 식의 것이 바로 재벌과 출생의 비밀이 매번나오는 드라마다. 


그런데 현실의 우리는 사실 개개의 일상에서 작은 부딛힘과 배려가 요구되는 사회, 매우 정밀한 예술품이나 기계같은 사회에 살고 있다. 어떤 거대한 개발을 하면 좋은가 아니면 나쁜가하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좌파냐 우파냐 하는 식의 판가름이 아니라 사안사안에 대해 섬세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애시대같은 드라마는 내가 드라마를 잘 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이제 드물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드라마, 영화의 부침이 거의 정확히 한류의 부침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송강호가 나오는 반칙왕같은 영화를 좋아했다. 전에는 한국에도 개인에 주목한 영화나 드라마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점점더 주인공이 왕이거나 재벌이거나 해서 극적인 반전, 세상을 뒤집어 버리는 스펙타클한 사건에 집중하는 드라마, 영화가 대세가 된다. 이건 개인의 실종이고 무식한 계몽주의로의 회귀다. 


연애시대의 원작은 일본작품으로 알고 있다. 나는 진정 사랑할 만한 개인을 그려내는 작가가 한국에는 드물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금방 매우 극적이고 비극적인, 매우 거대한 스케일의 일로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그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정약용은 일찌기 젊어서 부터 유배를 시작해서 자기 집주변을 일구면서 글읽고 쓰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누군가가 정약용에 대한 드라마를만든다면 아마도 정치드라마를 만들겠지만 나는 선비의 일상이란 것, 즉 출세하건 하지 않건 상관없이 행복할수 있는 전통적 인간상이란 것을 조명할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이 든다. 커피한잔을 놓고 행복한 일상이란 달밤에 거문고 튕겨보거나 촛불에 국화 그림자를 만들어 즐기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풍류란 출세나 부귀영화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런 멋이 사라진 시대가 아쉽다. 


고전적 선비의 멋이 아니더라도 현대 한국인의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꼭 엄청 폼나는 사람이 아니라도 된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부럽고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그릴수는 없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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