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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언론에 대한 글

루저녀 사건으로 보는 언론의 오만과 차별

by 격암(강국진) 2009. 11. 11.

2009.11.11

머릿말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여대생이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발언해서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흥분한 네티즌중에는 그 여대생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퍼뜨리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도 있었다. 이 같은 일들은 단순히 한번 생긴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구조적 문제점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죄인가?

 

한국 방송에서 못생긴 여자는 루저라는 발언을 한다면 어떨까. 물론 그런 방송이 나갈 수도 있다. 드라마나 영화속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남자가 그런 대사를 한다면 그런 대사는 그냥 나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이 나가는 식으로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어떤 말이 가지는 의미는 그 말이 나가는 앞뒤 문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대담프로그램에서 한국의 남자대학생들을 불러 의견을 듣는다면서 못생긴 여자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그걸 그렇게 대답하는 남자가 있다면 즉각 아나운서의 반박을 듣거나 방송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일 방송에서 그런 분위기 였던가? 어떤 사람이 미혼모는 루저라고 말하거나 혼혈아는 루저라고 말하거나 동남아 노동자는 루저, 파업노동자는 루저라고 말하면 어떤가. 가벼운 농담거리로 낄낄거리는 분위기에서 방송이 되었을까?  

 

가치판단이 문제의 핵심,

 

문제의 핵심은 언론사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가치판단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남아 노동자는 루저라고 하거나 못생긴 여자는 루저라고 말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판단하지만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말하거나 자동차 없는 남자는 루저라고 말하는 종류의 것은 뭐 할 수도 있는 대단치 않은 일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판단은 항상 다수의 일반대중과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번 루저 발언 사건에서는 그렇다. 국민들이 방송사들의 가치판단과 의견을 달리했던 예들은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점점 더 강력하게 반응하고 있다. 황우석 사건을 포함해서 아프칸 선교사건, 디워사건, 재범사건등 여러가지 사건에 대해 국민들은 방송사의 평가를 못마땅해 하고 있으며 그들의 가치판단을 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틀리고 맞는 것은 뒤로 해두고 생각해 보자. 사실 가치판단의 문제에서 사실은 적어도 부분적인 중요성밖에 지니지 않는다. 한 여성이 방송에 나와서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발언한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게 얼마나 잘못된 것이냐는 것이다. 그건 논리나 사실로 판명될일이 아니다. 가치판단이 틀리고 상식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방송국의 대응을 보면 이런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그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에 가깝다. 약간 문제가 되는 면이 있다고 해도 자유로운 사회에서 자기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할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은 그 자체가 선택이다. 방송국은 방송에 나갈사람을 선택한다. 방송국이 일제침략은 정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그 사람의견을 방송했을 때 그건 그 사람의견일뿐이라는 말로만 모든 책임회피가 되는게 아니다. 사람들은 흥분해서 어떤때는 MBC를 욕하고 어떤때는 KBS를 욕하고 어떤때는 SBS를 욕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런 판국이면 방송국들은 아무리 욕을 먹어도 상관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구조적 문제

 

이런 문제들의 배후에는 몇가지 고질적인 문제들이 있다. 하나는 방송 독점이다. 즉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도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건 정확히 시장주의가 통하는 장소가 아니다. 미국이던 일본이던 우리나라처럼 몇개방송국이 채널을 점령하지 않는다. 케이블티비 사업을 해도 우리나라 방송 컨텐츠는 결국 몇개 방송사에서 독점적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이 방송국이 오만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다. 우리나라 방송국들은 권력과 자본에만 두려움을 느낀다. 결코 시청자 무서운 줄은 모른다. 국민은 그들이 존재할수 있게 하는 손님이고 기반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일 뿐이다. 

 

또하나의 고질적 문제는 한국의 공인된 지적 엘리트들이 무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인된 지적 엘리트들이라는 것은 바로 한국에서 교육과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교수나 피디나 작가들이다. 지적 엘리트가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국민들의 의사를 국민들이 납득할수 있게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이 비싼 월급을 받고 생활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들의 상식과 가치판단이 대중과 멀어진 것이다. 대중은 오히려 인터넷에서 보통 사람들의 블로그, 게시판에서 인터넷 까페에서 더 깊은 진실을 보고 합리성을 보고 공감대를 느낀다.

 

지적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토론회를 하고 작가들이 드라마를 만들고 피디가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일반국민들은 답답하고 화가난다. 초등학생들이 나가서 대화를 하는 것이 낫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드라마는 막장드라마라고 분통터뜨리고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편협하다고 느낀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의견이 같을수는 없으므로 어느정도까지는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방송과 국민간의 괴리가 어느정도 이상으로 커지면 이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것이 아니다. 마이크를 쥔 지적 엘리트들의 오만과 무능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그 마이크를 빼앗아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게 되는 것이다.  

 

맺는 말 

 

장기적으로는 한국 방송환경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고 사실 이미 바뀌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티브이보다 인터넷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전국 티브이망의 효율성을 인터넷망이 능가해서 공중파라는 것이 거의 의미없어지는 때가 반드시 올것이다. 인터넷이 나오고 우체국의 편지가 의미없어지듯이 티브이망도 사라지는 때가 올것이다. 점점 방송들의 독점력은 약화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독점적 위치에 있는 방송국들은 겸손해야 한다. 일종의 심판의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만을 크게 보여줄수록 대중들의 저항은 거세어져서 비극을 만들어 낼 수있다. 그들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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