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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언론에 대한 글

우리는 왜 언론을 미워하는가

by 격암(강국진) 2017. 12. 16.

17.12.16

중국에서 한국기자가 폭행당했다. 기자의 폭행이란 충격적인 것인데 그것도 외국에서 그랬으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국인들의 분노가 폭팔할만도 하다. 특히 언론들이 이 문제를 사방에서 보도하면서 그것을 은근히 유도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도무지 기자들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에는 오히려 한국 기자를 비난하는 말들이 더 많다. 이것이 모든 국민의 뜻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기자가 얼마나 미움받고 있는 존재이며 불신받고 있는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언론인들중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단연 손석희다. 그리고 손석희를 제외하면 김어준이 눈에 띈다. 이런 현실도 사람들의 눈에 비친 언론의 현실을 보여준다. Jtbc는 회사의 규모가 공중파에 비할바가 아니다. 하물며 김어준은 요즘은 라디오 방송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거의 개인자격으로 팟캐스트를 하던 사람이다. KBS나 MBC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쓰는가,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가. 이건 삼성이나 현대같은 대기업이 즐비한 시장에서 한 중소기업이 아니 심지어 한 포장마차가 그들을 모두 꺽었다는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중소기업이나 포장마차가 할 수 있는 것을 삼성이나 현대가 하지 못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요즘 공영방송 정상화로 시끄러운데 기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10년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상화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보다 나을지 몰라도 사람들의 눈높이에 도달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책임의 상당부분은 언론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의 책임은 물고 물리는 것이라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리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이지만 오늘날 기자들이 이렇게 미움을 받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스스로 취재를 다닐 수는 없다. 그러니까 현대사회에서 기자는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어줘야 한다. 그것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주요 언론의 기자가 된다는 것은 큰 출세로 여겨진다. KBS같은 곳은 연봉도 억대연봉이다. 

 

여기서 질문이 있다. 기자는 그냥 투명한 렌즈처럼 사실을 사실대로 보여주는 존재일까 아니면 현실을 왜곡하고 정리해서 시민들에게 현실에서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심지어 나아가 시민들을 가르치는 존재일까? 한국 사회가 단순했던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는 투명한 렌즈처럼 사실을 사실대로 보여주는 존재로서의 기자도 충분히 훌룡했다. 전 세계에서 통할만한 지극히 보편적인 상식에만 근거해도 뭐가 중요한가는 확실했기 때문에 기자가 자기 자신 특유의 가치관을 개입시킬 여지는 더 적었다. 필요했던 것은 주로 뻔한 사기와 학살을 숨기려는 권력의 억압을 이겨낼 용기였다. 광주학살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 심오한 철학은 필요없다. 물론 그 시대라고 해서 기자가 지식과 관점이 필요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설적 기자로 남아 있는 리영희는 용기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통역관으로 일했던 경험을 통해 국내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정보를 많이 수집하고 그것에 기반해서 글을 쓰고 기사를 썼다.  

 

오늘날에는 어떤가. 오늘날의 한국에는 사실들의 양이 너무 많다. 보도는 선택적이 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사실만 보도하는 신문도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기가 쉽다. 사회적악들은 훨씬 더 은밀해 졌다. 그들은 쿠데타를 하거나 단순히 내놓고 돈을 훔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은밀하게 이익을 나누고 범죄를 저지를 방법이 많아졌다. 이런 시대에 그저 중립적인 자세로 판단없이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하는 언론인은 위선자거나 바보다. 사실은 보도되지 않는다. 보도 될 수도 없다. 요즘 이명박에 대한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으로 24시간 떠들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중관계가 지금 한반도 상황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중국에 간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어떤 성과를 보이고 있는가에 대해 하루 종일 떠들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보다 기자가 폭행당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 이 모든 것들은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선택된 사실들이다.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양만큼 보도한 사실이다. 사실보도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 선택된 사실들이고 선택이 이뤄졌다는 것 자체가 왜곡이다.

 

굉장히 중요한 뉴스인 내각제 개헌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민들은 현재의 국회를 보면서 의원내각제건 실질적인 내각제인 분권형 대통령제건 관심이 없다. 있다면 4년중임제 대통령중심제뿐이다. 여론조사를 해도 항상 그렇게 나오는데 언론은 분권형 어쩌고 하면서 계속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만 한다. 싫다는데도 계속 의원내각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의도가 없을까? 그게 누구에게 유리한지 많은 사람들은 느끼고 있다. 언제 우리나라가 소수파 의견만 이렇게 계속 존중하는 나라였는가. 

 

세상이 복잡해 졌다고 해서 하루가 48시간이 된 것도 아니고 아나운서가 세 배 빠르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기자가 사실을 선택하는 기능은 더 중요해 졌다. 오늘날 언론들이 욕을 먹고 있는 부분이 이것이고 특히 KBS나 MBC같은 거대 언론사들이 욕을 먹는 큰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은 사악하거나 무능하거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뻔한 현실을 외면한다. 사람들이 김어준에게 주목하는 한가지 이유는 김어준은 자기 입장에서 정보를 걸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걸러주는 방식은 결코 백사람 천사람이 이리저리 손을 대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그냥 자기 의견이다. 심지어 손석희의 Jtbc 뉴스조차 기계적 중립문제로 욕을 먹을 때가 있다. 

 

다른 방송으로 가면 하나 마나한 소리로 시간을 채우는 일이 많다. 그들의 말은 마치 환자에게 수십가지 다른 치료법을 나열하면서 뭘 선택하든 내 의견은 없고 책임도 당신이 지라고 말하는 의사같다. 물론 그 수십가지 치료법의 대부분은 비싸고 위험한 것이므로 사실은 중립도 아니다. 제약회사나 병원의 입장을 은근히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중립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여러가지 의견을 말하는 언론들의 태도다. 그들은 세상일을 요약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어딘가로 세뇌하려고 한다. 

 

세상일이 복잡해서 눈과 귀가 사실을 모두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뻔한 헛짓을 하면서 책임은 안지고 그러면서 이득은 챙기려고 하는 그 모습에 분노가 일지 않을 수는 없다. 오죽하면 많은 사람들이 진실은 인터넷 댓글이나 소문이나 팟캐스트 개인방송에 있다고 믿을까. 

 

오늘날 언론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그게 문제다. 그들이 일반론적으로 보통 시민들보다 무능하거나 무책임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늘날 언론으로써 의미있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전문화해야 한다. 그냥 상식만 가지고 그때 그때 다른 주제를 떠드는 것으로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된다. 이명박 전문가이건 세금 전문가이건 과학전문가이건 국제관계 전문가이건 전문가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국 기자들의 기사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있다. 너무 수준이 낮다. 아마추어적이다. 블로거의 글이나 팟캐스트의 보도를 폄하할 수준이 아니다. 

 

둘째가 사실 더 중요하다. 기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회사의 입장에서 말하는 기자따위는 오늘날 아무 가치가 없다. 사람이 자기 기준에 맞춰서 자기 관점을 말할 때 그 사람은 당연히 오류도 생기고 자신의 무지를 들어 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자기 관점이란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관점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한다. 손석희나 김어준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평가해 주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뭐든지 쓰는 셀러리맨은 기자가 아니다. 

 

그런데 자기 관점이란 것은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일종의 자기 철학의 구성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더라하는 이야기만 나열하지 말고 자기 의견도 말해보라고 했을 때 더듬거리는 사람은 사실 여러가지 상충된 정보를 자기 나름으로 융합하는 일이 없이 백과사전식으로 외워서 떠들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자기도 모른다. 자기 철학이 없는 사람의 의견따위는 공해다. 왜냐면 이론에 자기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공부잘해서 똑똑하다고 알려진 사람은 많지만 김어준이나 김용옥같은 사람이 대중성이 큰 이유는 이것때문이다. 남의 의견 줄줄 외워서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자기 철학이 없는 것은 대개 쉽게 눈에 띈다. 대개 그들의 말은 위에서 말한 책임지지 않는 의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철학이 있다와 없다의 흑백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같은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자기 철학이 있다고 말할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기자들이 되어서 무책임하게 정보채널을 장악하고 있으니 미움을 받는다. 박근혜나 이명박이 그냥 일반인들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나쁜 사람들인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자기 분수에 안맞는 권력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얌전하기만하고 시키는 대로만 할 것같은 스타일의 사람들이 기자한다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기자들이 욕먹는 큰 이유는 그들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은 안지면서 큰 확성기로 떠드는 것은 이 시대에는 죄악이다. 

 

세상에는 무료로, 혹은 훨씬 저렴하게 자기 의견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실은 블로그를 하는 나도 그런 사람이다. 팟캐스트를 하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견해를 보다 또렷하게 들어내서 애매하게 숨지도 않는다. 이런 다른 정보채널이 있는 가운데 대다수 언론들은 비싼 정보채널을 무책임하게 차지하고 앉아서 전문성도 들어나지 않는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고 있다. 

 

노무현 정권때 청와대 출입을 좀 더 많은 언론들에게 개방하려고 했더니 기자단들이 난리를 피웠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청와대가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거 하지 말라고 난리를 피운다.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정보는 우리를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정말 언론이 제 역할 하고 있다고 믿게 하지도 못하면서 그런 밥그릇 싸움만 하니 언론이 미운털이 안 박힐 수가 없다. 상황은 앞으로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시대의 변화를 가로막는 적폐로 인식되게 된다. 이미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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