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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가치판단에 대하여

연작 에세이 10 : 사랑으로 죽이기

by 격암(강국진) 2009. 11. 24.

머릿말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나 오염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지만 오히려 장애인들을 사랑으로 죽이고 자연을 사랑으로 죽인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말을 했지만 사실 이제까지의 말들은 말하자면 새로운 것을 더하기 위한 말이라기 보다는 아는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더 잘 생각해 보자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들은 유용한 것이고 나름으로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도구가 아니다. 사랑은 바로 이 책을 시작하던 때에 말했던 가치판단의 힘을 주는 근원이다. 사랑을 할 수 있으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걸 하기 위해 우리는 무지를 달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현실적으로 거의 의미가 없다.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나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전에 우리는 사랑이 무엇이 아닌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랑으로 장애인 죽이기 

 

상대방을 악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행위를 하는데도 상대방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는 일은 없을까? 물론 있다. 흔한 예 일중의 하나가 바로 신체적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다. 길을 가다가 시각 장애인을 본다면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만약 저 사람 불쌍하다 도와주자고 생각했거나 같이 가는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그리고 그런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랑은 선을 행하는 게 아니다. 누굴 불쌍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불쌍한 존재로 본다는 시각은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고 차별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그 사람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친구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 보자. 혹은 우리가 누군가를 고용하기로 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들은 냉정히 이익이 오고가는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가진 걸 나눠줄 여력이 없다면 그 불쌍한 사람을 고용할 것인가. 그런 사람은 친구로 삼지 않고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르게 불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만연할 때 그 태도가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을 만든다. 그들을 단순히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 이 정도의 말로 머릿속에서 뭔가 벨이 울리는 느낌이 없다면 조금 다른 예를 생각해 보자. 당신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라서 어느 회사에 취업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 당신의 뒷조사를 한 다음에 당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가난한 집안 출신의 사람을 고용하는 게 좋은 일인건 알지만 지금은 당신 같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사람은 받아줄 수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할 것인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할 것이다. 그 일을 하는 데 우리집이 가난한 것과 부자인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 것이다. 내가 맡은 일을 할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내가 맡은 일을 할 수 있는 한 나는 다른 사람과 동등한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고 해서 당신이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먹을 것을 주고 힘내라고 한다면 당신은 굴욕감을 느끼고 화가 날 것이다. 당신을 동등한 존재로 받아주지 않고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그 선의에 대해 오히려 화가 날 것이다. 장애인들도 어떤 장애는 가지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많은 일들을 해내는 데 문제가 없다. 그들이 설사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직장생활을 한다던가 일을 하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 마디로 그 사람의 가치를 모른다. 자신의 가치를 모른다. 누군가의 가치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다. 

 

혼혈인 사람, 결손가정의 아이들, 남자와 여자의 문제, 지역의 문제등 여러 가지 이유의 선입견에 대해 사회는 말해 왔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다르지만 동등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물론 다르다 하지만 동등하다. 여자는 타고나길 좀 소견이 좁고 몸도 약하고 용기도 없는 존재니까 남자가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여자에게 잘해주는 남자는 바로 선의로 여자를 죽이고 있는 남자이다. 그런 남자는 중요한 직책에 여자를 앉히려고 하는 것 같은 결정적인 중요한 순간에 가서는 여자가 어떻게 그런 중요한 일을 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 장애인이다. 누구는 더 부자고 누구는 더 공부를 잘하고 누구는 더 몸이 크고 힘이 세다. 누구는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생각이 장애인인 사람이고 누구는 깨어진 가족관계로 평생 매여 살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어떤 면에서 장애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쉽게 해내는 것을 다른 사람은 잘해내지 못한다. 어떤 시각장애인은 분명 눈이 멀쩡한 사람보다 보는 일에서 장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애인은 남과는 다른 그런 경험을 통해 정신적 성장을 했을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상인들은 그 장애인에 비하면 진정한 장애인일수 있다. 정상인의 테두리, 장애인의 테두리를 만든다는 것은 몰상식한 것이다. 

 

우리가 장애인의 이야기를 할 때 흔히 한국 사회에서 이런 저런 복지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더욱 시급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 괴상한 나라다. 우리는 길에서 장애인을 보기가 힘들다. 그것은 단지 나다니기 불편해서일까? 그 이상으로, 분명 장애인을 우리 중 하나로 보지 않고 차별하고 동정하고 우리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쳐다보고 쑤근대는 그런 태도가 만연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둠 속으로 숨는다. 가난이 그렇고 무식이 그렇듯이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신체적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름'에 대해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이렇게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차별받는다. 부장들이 모이는 곳에 과장은 낄 수 도 없지 않던가? 박사들이 모이는 곳에 학부만 졸업한 사람이 끼면 뭔가 치사하게 느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던가? 강남 엄마들만 모이는 곳에 경기도 소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끼면 뭔가 차별이 느껴지지 않던가?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잘난' 사람들은 선의로 가득차 있다. 단지 그들이 한국에 만연하는 태도대로 다름에 대처하고 세상을 단순한 수직구도로 보기때문에 그들의 선의란 적선처럼 보일뿐이며 그들의 언행에서 끝업는 자기오만과 선민의식을 느끼게 될 뿐이다. 외국이라고 이런 게 없을리 없다. 하지만 한국은 이게 유달리 심하다. 한국은 일단 호칭에서 차별을 강하게 표현한다. 우리는 동등하게 호칭을 쓰지 않는다. 굳이 서로 다른 계급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조기축구회 회장이라도 해서 회장이라고 불러야 하고 어릴 때부터 알던 사람도 박검사니 강박사니 하고 꼭 호칭을 붙인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구분하는가. 사랑은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를 구원해 준다는 거만한 생각도 안하는 것이다.

 

참선과 환경문제

 

참선은 보기에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고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그린피스처럼 거리로 나가서 시위하는 모습이 떠오르니 참선과 환경문제는 관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실은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환경문제가 주로 기술의 문제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고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의 근본은 사람이 자연을 뭘로 보는가 하는 것이다. 그 시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바뀐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 중심의 사고를 한다. 우리나라 역사책을 한번 보자. 거기 금강산이 이러저러하게 변했으며 한강이 어떠했고 곰이 어떻게살았으며 왕궁 앞의 개미들은 몇 마리였다는 기록이 얼마나 나오는가. 역사는 주로 사람에 대한 기록일 수밖에 없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 속에 인간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은 천년이 넘은 나무를 단지 목재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집에서 키우며 정들은 강아지가 아프면 슬퍼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바다에서 잡아온 물고기의 경우는 돌 같은 물건처럼 취급한다. 이 차이는 그 물고기를 길고 긴 성장과 역사의 결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키운 강아지와는 다르다. 

 

인간의 머리에 인간이 가득찰 때 자연은 그저 정복의 대상이 된다. 산이 인간의 앞을 가로막으면 그 산을 밀어버리고 그 안에 길을 낼 때 그것이 인간승리가 된다. 자연은 그저 소비할 자원, 쟁취할 보물이다. 그 안에는 자연에 대한 외경이 없다. 사람들은 종종 저 자연이 뭔지는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쉽게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 지금 부셔버려도 원하면 쉽게 수복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게 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선을 하는 사람들이 노력하는 것 중의 하나는 사물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나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는 일이다. 내가 뭘하고 내가 어떻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인위적 생각으로 세상을 판단해서 이거저거가 뭔지 다 안다는 생각을 지워버리고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참선이라고 하니까 이것이 불교만을 말하는 것인것 같지만 굳이 불교를 말할 필요도 없다. 기독교에서 기도를 하는 것도 이런 것일 것이다. 중용에서 말하는 중이며 대학에서 말하는 조용히 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아니라 과학과 예술을 말해도 그렇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진짜로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마음을 잔잔하게 하고 그게 정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느끼는 것이다. 과학적 이론도 예술작품도 이런 잔잔한 마음의 상태에서 태어난다.

 

자연은 냉장고 안에 든 음식처럼 우리가 먹을 음식이니까 아껴서 먹어야 하는 존재도 아니고 불쌍하니까 돌봐주고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자연을 그렇게 사랑할 때 자연은 살아나지 않는다. 죽고 만다. 사랑은 그것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그 유용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 훼손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살 때 우리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에 대해 누군가가 몇백 페이지에 걸쳐서 조목조목 숫자를 나열하고 경제적 사회적 의학적 이득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꼭 해야 하는 것은 조용한 마음으로 자연의 의미를 명상하고 느끼는 것이다. 

 

하회마을의 물길이며 문경새재의 길 위를 비추는 햇빛이며 관악산의 약수터길이며 집 앞에 핀 코스모스며 그것이 나에게 어떤 느낌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잔잔한 마음이 아니면 그것들이 쉽사리 돈이나 상품이나 다른 어떤것으로 대체될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없어지면 대신 하와이나 괌이나 알프스에 가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게 정말 다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한게 있는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이란 소설은 한국에서 매우 유명하다. 그래서 그 메밀꽃이 피는 길이 관광지로 변했다. 우리는 그걸 밀어버리고 잊어버릴 수 있을까? 적어도 한국 사람에게 한국의 산천이 외국의 산천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는 길을 만들고 꽃을 꺽고 나무를 자르며 사는 것을 피 할 수 없다.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느낌이 중요하다. 그 느낌을 제하고 객관적 숫자로 가치를 따져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객관적 숫자로 보면 남한산성 밀어버리고 디즈니 랜드를 만드는게 더 좋다고 나올지도 모른다. 따라서 어떤 것이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가, 어떤 것이 가치 있어 보이는가에 대한 느낌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느끼지 못할 때 논리나 과학은 변명을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그것들은 대단한 것들이지만 언제나 우리 내부의 감정과 느낌의 수단 이상의 것은 아니다. 수단이 우리에게 가치를 제시해 줄 수는 없다.

 

맺는 말

 

우리는 많은 것을 사랑의 이름으로 괴롭힌다. 자연을 괴롭히고 우리나라를 괴롭히고 친구를 괴롭히고 연인을 괴롭히고 부모님을 괴롭힌다. 어떤 경우 그것은 정말 거의 죽이기가 된다. 상대방은 우리에게 간절히 손을 내밀지만 우리는 그들의 진짜 얼굴, 진짜 목소리를 보거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너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아라고 해 버린다. 

 

그렇다면 진짜 사랑을 하려면 뭐가 필요한 것일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진짜로 사랑할수 있게 만들까. 우리는 사랑을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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