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식교사생활을 한적은 없지만 학비와 생활비 때문에 대학교와 대학원 시절에 걸쳐 끊임없이 과외선생님을 했다. 한동안이지만 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일한적도 있다. 때문에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들과 여러가지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덧셈뺄셈이 안되는 중학생에서 전교1등수준의 학생, 철부지 여학생에서 아무 특징이 없으며 부모 사랑을 갈구하는 애처로운 남학생을 만났다.
학부모들의 주된 관심사는 물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공부잘하게 만들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무슨 유명한 고액과외선생님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아이들을 공부잘하게 만드는 선생님이었다고 자부한다. 성적이 크게 오른 경우는 있어도 떨어진 경우는 없었고 많은 부모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수업을 어떻게 했을까? 내 수업의 상당부분은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공부를 하는 법과 정신적 자세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감이 없는 아이에게는 자신감을 가질 만한 사실을 말해 주었고 잘난 아이에게는 하늘위에 얼마나 높은 하늘이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학회에서 보고온 노벨상 수상자의 지적수준과 전국 학력고사 1등을 하고 서울대를 수석졸업한 한국의 한 교수와의 수준차이 같은 걸 이야기해 주면 전교1등하는 아이도 자신의 우물이 얼마나 작은지 조금은 느낀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대개는 수학선생님이었다. 시험에 대비해서 공부하는 여러가지 요령과 참고서를 선택하고 그 참고서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며 효과는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대개 학생의 신뢰를 얻을 수가 있었는데 사실 이부분이 중요하다. 학생이 선생님을 믿게 되면 학생은 나는 이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으니까 이 선생님이 된다고 하는 것은 될거라고 믿는다. 이 신뢰가 결국 학생의 성적을 올리는 큰 바탕이 된다. 대개의 학생은 자기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데 -심지어 전교 5등안에 드는 학생도 그럴때가 많다- 부족한대로 학생은 선생을 믿고 선생의 보증을 믿음으로서 불안이 잠식해 들어오는 입시생활을 견디기 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 모두는 어느 정도 사전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진짜 핵심은 아이가 세상과 자신의 인생을 보는 눈을 점검하게 하고 그걸 확장하는 것에 있다. 그 결과는 대개 열심히 공부하는 생활이 된다. 많은 중고생들은 세상에 대해 막연한 생각밖에 없으며 부모에게 의존적이다. 부모가 어떻게 해줄거라는 생각에 젖어있다. 대개 나는 이 생각부터 지우는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자기 판단에 따라 살수 밖에 없으며 부모는 도와줄 능력이 없고 부모도 자식을 완전히 이해할수 없기 때문에 금전적인 능력이 있다고 해도 자식을 무한히 도울수 없으며 오히려 상당한 경우 자식은 성장하면 부모를 부양해야 하고 언젠가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죽어서 대부분의 사람은 고아가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사고가 그다지 정돈되어 있지 않던 젊은 시절이었지만 대개 효과가 있었다. 아이들은 인생이나 가치라는 주제에 대개 진지한 태도를 취한다. 오히려 어른들은 아는게 없으면서 짜투라기 지식으로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고 생각해 본것이 있다고 착각하며 남들의 조언에 귀기울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 나는 부모들의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이글을 시작했다. 부모들의 착각이란게 뭘까? 부모들은 대개 내가 쓴 것의 정반대로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다. 일단 부모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을 도울수 있는 것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공부로 말하자면 과외선생님이 부모들보다 훨씬 더 잘 도와줄수 있다. 그런 과외선생님도 도울수 있는 한계부터 지적하고 대화해 나가는데 부모들은 그저 아이들을 밀어부치면 결과가 나올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세한 부분까지 조정하려고 하는 부모들이 많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돕고 싶으면 아이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신뢰를 얻는 데 중요한 것중의 하나는 신처럼 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모든 걸 알고 있고 내가 모든지 해낼수 있으니까 나를 믿으라고 하면 대개 아이들은 -현명하게도- 믿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엉터리 사기꾼이나 그런 식으로 말한다. 신뢰를 얻는데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내가 너보다 이것저것은 낳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으니 네 문제는 결국 네가 풀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해야 하고 그런 태도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기저귀부터 갈아주며 아이를 키워온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을 무시한다. 네가 뭘 아냐, 너는 안된다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아이를 돕겠다고 나선다.
이런 태도와 착각의 연장이 정점을 이루는 것은 아이를 철학적 무균실에서 키우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교과서나 참고서 문제를 풀고 외우는 것 이외에는 모든 관심을 끊을 것이며 철학적인 사색과 고민따위는 돈한푼되는 것이니 할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공부잘하는 아이를 만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집짓기로 말하자면 건물의 토대를 쌓을 자재를가지고 위로 위로 더 뽀죡하게만 쌓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건물은 측면으로의 충격에 약해서 한순간에 붕괴할수 있다. 대개의 경우 이런 교육은 대학입시 이전에 아이들을 좌절시키고 방황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특히 이런 사실을 이해할줄 모르는 부모를 둔경우는 그렇다.
이것은 불행하게도 부모가 철학적으로 가치판단적으로 아이에게 전해줄 철학이 없기 때문에 -혹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그들은 책을 읽지 않으며 그런 복잡한 이야기를 해줄수 없고 그들은 그런거 몰라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개 그들은 그들이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의 큰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그들이 어린 시절, 그들은 친인척을 훨씬 더 자주 만나는 환경에서 지금보다 전통이 잘 지켜지고 세상이 훨씬 단순한 시절에 성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적어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에는 입시공부에 찌들지 않고 아이들과 놀면서 성장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들은 어느 정도 일관된 가치판단과 철학, 상식을 공유하는 문화적 공동체 안에서 성장한 것이며 그것들을 흡수하고 몸에 새길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가지면서 성장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살아갈 철학과 지혜와 동기의식을 배울수가 있었다. 그들이 당연한 것이며 후진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그들의 삶의 바탕이 되어 준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을 만나는 일이 없고 세상은 복잡하기 짝이 없으며 초등학교부터 학원으로 다니느라 바쁘다. 많은 아이들은 일찌감치 교과서만 들여다 보고 일종의 바보로 성장한다. 철학과 지혜와 문화를 흡수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예의가 없고 상식이 없어도 공부만 잘하면 부모들은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마치 상식따위는 세상사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철학이란 반드시 말과 글로만 전해지는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부모들로 부터 받은 것을 너무 무시한다. 그리고 그걸 자식들에게 전해 주지 않는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수학공식 하나 외우는게 중요한거라고만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동기의식이 전혀 없고 상식이 없으며 부모가 알아서 모든 걸 해줄거라고 생각하고 전혀 생각하는 습관이 없는 아이가 만들어 진다. 이런 아이는 대부분 자신의 재능보다 공부를 훨씬 못한다.
아이를 아이취급하면 아이는 계속 아이로 남는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게 뭔지 착각하고 자신이 그저 학교에서 배운 공식이나 지식나부랭이로 이때껏 이만큼 살아왔다고 착각하면 자신의 아이를 그렇게 키운다. 아이를 바보로 생각하면서 아이앞에서 신처럼 나는 모든지 알고 있다는 식으로 행동하면 아이는 부모를 믿지 않거나 정말로 부모를 신처럼 생각하는 바보로 자란다.
적어도 꽤 평이 좋았던 전직 과외선생님중 한명인 나는 말한다. 부모님들 공부잘하는 자식을 가지고 싶다면서 정말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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