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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교육에 대하여

독립적 사고에 대한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0. 5. 13.
우리 할아버지는 농사를 짓던 분으로 전혀 지적이지 않다. 그런 분이지만 나는 살아계실때 대화를 나누며 문득문득 어떤 지혜의 조각을 보는 것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단순히 고집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고 그건 잘나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흐리멍텅한 문제인데 할아버지는 확고한 견해를 나름의 합리적 근거위에 가지고 계신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보다도 어리석었던 당시의 나는 그걸 신기하게 생각할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일자무식의 사람이지만 지혜롭더라라는 식의 이야기는 사방에서 발견된다. 피터드러커의 자서전을 보면 그의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언뜻보면 우스꽝스러운 할머니지만 크고 넓게 보면 지혜로운 분이었다는 이야기다. 피터드러커는 대학생때의 나보다 훨씬 뛰어나 그 지혜를 꽤뚫어봤지만 나는 그저 가끔 신기해 했을 뿐이다. 

요즘와 돌아보면서 나는 너무 많은 현대인들이 너무 복잡한 기계같은 철학을 가지고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여기 손수레가 있다고 하자. 손수레의 구조는 간단하다. 쓰다가 망가지면 스스로 고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디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 있으므로 비록 멋진 최신형 자동차의 성능과는 비교할수도 없지만 나름대로 최선의 효율을 올리기 위해서 손수레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쉽게 이해할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최신형 자동차는 복잡한 기계적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전자회로가 잔뜩 들어가서 일종의 블랙박스같이 그안을 열어봐야 알수도 없는 기계가 되었다. 기계는 물론 쾌적하게 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엄청난 효율을 보여주지만 일단 한번 고장이 나면 전혀 손쓸수가 없다. 왜 작동하지 않는지 알수가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 나는 기계공이나 그 자동차를 만든 회사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이런저런 엔진오일을 꼭써야 한다고 말하면 나로서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판단하기 힘들고 그저 조용히 그 조언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차가 멈췄는데 주변에 수리소가 없다면 이제 나는 차를 버리고 짐을 들고 걷거나 완전히 멈춰서 대책이 없어질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현대사회는 현대인에게 아주 많은 것을 요구한다. 1-200년전에는 세상은 아주 천천히 변했으며 농꾼의 아들로 태어나면 농꾼이 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교육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집안일을 거들다보면 저절로 배우는 것이다. 생활이 단순하고 변화가 적다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복잡한 사고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압도적 인 다수의 사람에게 미디어의 영향이라던가, 문화적 차이, 이데올로기의 문제, 무의식과 경제의 잣대로 본 사회적 계급구조따위는 생각해 볼 필요가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말하자면 손수레에 비교할수 있을 것이다. 그건 스스로 만든 손수레 같은 것으로 단순하고 잘안되면 자기가 직접 고치는 그런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비교할수 없는 정보를 접하고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살면서 우리는 훨씬 더 강력한 도구가 필요하다. 결혼, 육아, 직장생활, 사회적 의무와 권리등 여러가지들이 훨씬 복잡해졌고 그걸 해내기 위해 훨씬 더 복잡한 가치관, 윤리적 시각이 필요해 졌다. 우리는 강력한 스포츠카나 비행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한사람도 남김없이가 아니라면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이 스포츠카나 비행기를 집에서 혼자 만들고 수리하고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은 해일처럼 몰려오는 생각할 거리들에 대처하기 위해 더 강력한 사고의 틀을 배우고 익히지만 그건 그저 가져다 쓰는 것일뿐 그 도구들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그렇게 될경우 우스꽝스러운 일이 생긴다.

멋진 스포츠카지만 바퀴가 없다. 그러면 앞으로 가질 않는다. 혹은 바퀴가 있긴한데 차체는 엄청나게 무거운데 장난감 바퀴다. 하지만 스포츠카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그저 엔진만 크면 된다고 생각하고 차가 앞으로 안간다고 하면 점점 더 크고 복잡한 엔진을 끼워넣으려고만 한다. 혹은 달리는 것과 그리 상관없는 멋진 카오디오나 무거운 문짝, 넓은 짐칸등에 신경을 쓴다. 

이 사람이 손수레라도 혼자 만들어 봤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테지만 그는 간단한 것이라도 완전한 것을 손수 만들어 본적이 없다. 처음부터 자신은 이해할수 없는 복잡한 것을 받아서 썼을 뿐이다. 자동차는 개솔린이 있어야 간다는 것도 모르고 차를 운전하다가 차가 멈춰서면 대책이 없는 그런 꼴이 되는 것이다. 

손수레를 써본 사람은 차가 고장나거나 산악지대같이 적합하지 않은 순간에 이르면 지게를 꺼내거나 손수레를 꺼내서 그걸 쓸수 있지만 차밖에 모르는 사람은 인도던 물길이던 비포장도로던 그냥 차를 달리다가 사고가 난다. 그리고 거기에 주저앉아 어쩔줄 모르게 된다. 

나는 내가 할아버지에게서 본 지혜의 빛이 이런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확실히 그분은 시대에 뒤진 분이었을 것이다. 책도 많이 읽지 않으신 분이니 지식이나 수학, 어학에 대해서라면 대학생은 커녕 중학생에게도 뒤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분은 바로 공식적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독립적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하셨다. 정해진 길만 잘달리는 교육받은 사람들과는 다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계공이나 자동차 회사의 노예가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은 기본적 자기 성찰과 공부를 통해 자기만의 손수레나 지게도 만들어 보지 못한채 가장 최신의 가장 강력하고 복잡한 자동차를 구입하고 그걸 쓰려고 하지 않는가? 그나마 그 자동차들은 대부분 움직이지도 않는 것들이다. 판매회사들이 중요부품을 빼먹고 팔거나 애초에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산에서 제트 고속보트를 사서 달리려고 하면 되지 않을 것이다. 

기계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기계는 곧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은 두가지 중의 한 행동을 한다. 하나는 그 복잡한 기계에 대한 독학을 시작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서니까 도서관에 가서 전자기학과 금속학 책을 꺼내서 보는 것과같다. 아무리 공부해도 자동차바퀴가 터져서 자동차가 안간다는 사실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하나는 기계공 즉 철학자에게 가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기계공이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엉터리 기계공은 잘모르면 그냥 엔진을 통째로 갈아보자던가 동력축을 바꿔끼자던가 엔진오일을 갈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자동차는 더더욱 엉망이 된다. 급발진사고로 사망사고를 낼지도 모르지만 기계공들은 돈을 벌려고 하는 욕심에서 소비자를 지배하려는 야망에서 절대 모른다고 하지 않는다. 

그럼 뭘해야 할까. 자기 성찰이다. 지게를 만드는데 거기에 자동차 문을 달고 트럭용 바퀴도 달고 기름통도 달아놓는다면 필요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때문에 들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능력에 닿는 것중 제일 간단한 것으로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에게 받은 것을 버려야 한다. 자기의 상식, 자신의 문화적 습관이 뭔지 그런 근거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고 생각해서 그걸 떼어내고 사고 하려고 해야 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부품을 쓰면 그만큼 나는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야 한다. 

내가 보는 현실은 이런데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지식과 더많은 지식체계, 새로운 생활 스타일에 환호하는 것같다. 그들은 지식의 파편들을 외워서 객관식 문제로 시험보고 평가받는데 익숙해서 백과사전적 지식의 양이 뭔가를 해결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지식더미 안에 갇혀서 더욱더 부자유하게 되지 않을까? 돌아가신 법정 스님이 무소유라는 말을 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이유가 뭐겠는가. 

나는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지게나 손수레를 써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복잡한 기계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전거면 충분할때 제트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으며 간단한 탈것이라도 온전히 자기것으로 했을때 복잡한 기계도 더 잘 탈수가 있다. 무엇보다 하나의 사고방식이 전혀 소용이 없어지는 어떤 막다른 벽에 다다른 순간이 왔을때 우리는 더 단순하고 벌거벗은 독립적인 사고로 전환해서 상황을 돌파할수 있을 것이다. 시동도 걸줄 모르면서 최신 제트기에 앉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대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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