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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사람들, 사람들

유시민의 초상 (2005년)

by 격암(강국진) 2010. 1. 27.

나는 개인적으로 유시민을 모른다. 다만 개혁당 때 기웃거린 경력이 있는 고로 유시민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졌고 한번은 그에 대한 자료를 모아다가 요약을 해본경험도 있다. 그리고 꾸준히 그의 언행에 대해 주목해 왔다.

 

내가 그에 대해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명석함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지도력 따위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사람들이 그를 명석하다고 말하는데 그는 명석한 게 아니다. 물론 그가 사람들을 명석한 정도로 나열했을 때 매우 명석한 사람들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지적으로 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거나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김대중이나 김영삼의 리더쉽은 커녕 노무현보다도 훨씬 지도력이 약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지도자의 자리에 서기를 거부하고 실질적으로 그가 그룹을 이끄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을 유시민의 뭐뭐뭐라고 부르는데도 자꾸 다른 사람들을 데려다가 지도자로 옹립시킨다. 그는 스스로 책임자의 자리는 싫고 학생운동 때도 나는 책임자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가 가지는 미래의 비전이 넓고 원대한가. 그것도 난 모르겠다. 인터넷 정당을 4대 구호 중의 하나로 세우고 시작한 개혁당이지만 유시민이 스스로 말하는 것은 인터넷 정당이 뭔지 자기도 모르겠다는 거였다. 나는 그가 매우 현실적이며 눈앞의 문제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는 이렇게 저렇게 하면 10년 뒤에 한국은 엄청나집니다라는 식의 원대한 비전은 거의 말하지 않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일은 주로 올해나 내년에 일어날 정치적 변화다. 그는 코앞의 일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자신의 판단을 믿는다.

 

그래서 그는 틀리지 않았는가. 천만에 그는 여러번 틀렸다. 김대중불가론에 조순지지로 유명한 게 유시민 아닌가? 개혁당을 세울 때 백년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거나 개혁당과 함께 정치적 생명을 다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열린우리당에 들어가면 열린우리당을 개혁하여 참여정당 만들 수 있다고 말했던 것도 유시민 아니었던가?

 

그는 천재도 아니고 리더쉽도 부족하며 비젼도 없고 자주 틀린다. 그래도 나는 유시민이 존경스럽다. 그는 한 가지 재능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위선을 싫어하고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패거리 정신에 휩쓸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우리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의 위선을 저지르는 것을 증오한다. 속에서는 이 바보새끼하고 욕이 나오면서 겉으로는 존경합니다하고 말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한다.

 

내가 누굴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건방진 일이고 그저 피상적으로 느낀 그의 삶에 대한 감상은 그는 계속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다. 가만 있자니까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다. 스스로가 위선자라는 생각을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 나서게 된다. 그래서 자꾸 말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패거리문화가 짙게 발달하여 같은 일이라도 누가 했는가에 따라 판단이 백팔십도 달라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헌재는 탄핵을 기각했지만 찬성한 사람도 많았다. 경국대전 운운하며 수도이전도 위헌 판결을 내렸다. 과연 그들이 패거리 문화에 영향 받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과연 이회창이 대통령이라면 그런 판단이 내려질까.

 

이 패거리 문화 때문에 국민들은 정치가를 믿을 수가 없다. 죽일 놈처럼 말하다가도 당적만 이동하면 갑자기 우리편이고 그래서 선거운동을 도와줘야 되는 형편이 된다. 민주당의 추억은 이회창이 민주당후보였다면 민주당의원들이 얼마나 충성을 다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국민들이 정치가들에게 당하지 않는 방법이란 오직 하나다. 그들의 세력이 균등해 지도록 맞춰주는 것이다. 그래야 박 터지게 싸울 테니까. 서로 싸우고 헐뜯다보면 비리가 나오게 되고 서로 감시하게 되니까. 이것이 우리국민의 애처로운 현실이다.

 

이래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자존심이 있고 철학이 있고 위선을 싫어하는 정치인이다. 현대적 유행어로는 우리는 쿨한 정치인이 필요하다. 즉 입장에 따라 잣대가 흔들리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되 규칙을 지키는 인간이 정치판에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은 차라리 말을 안할지언정 거짓말은 덜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속마음과는 다르게 말하는 위선을 견딜 수 없어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못한다. 찬찬히 따져보면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도 다 알아낼 수 있는 자체모순적인 행동에서 다른 사람들은 빠져나오질 못한다. 왜냐면 그들은 다 위선자이기 때문이다. 위선자들이 위선자들과 어울릴 때 그들은 그들이 위선자라는 것도 모른다. 그게 관행이고 그게 인지상정이고 그게 인간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스스로가 위선자라는 사실자체를 잊어간다. 네티즌들 눈에 뻔히 보이는 위선을 세상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저지른다.

 

그러니까 그들은 유시민이 싫다. 느끼한 웃음에 악수 몇 번하고 내가 뒤봐주면 그도 내 뒤를 봐주고 하는 끼리끼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걸 넘어 유시민은 계속 그들에게 애써 잊고 싶은 것을 기억나게 만든다. 그들이 위선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추억해보면 순진했던 청년시절 유시민 이상으로 똑똑히 말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낡고 닳아빠진 위선자로 변했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자위도 한다. 그런데 늙어가는 데도 오히려 나보다 더 나이든 선배인데도 위선자로 변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 증오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저건 정상이 아니라고 외치고 저주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은 그를 증오하거나 좋아한다. 그를 증오하는 부류는 딱 한 가지 이유다. 그가 기성체재를 자꾸 흔들기 때문이다. 그가 조직을 해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유시민을 불편해 하기 때문이다. 그가 없다면 위선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어떤 것들이 그렇게 안 되기 때문이다.

 

그를 좋아하는 국민들은 그가 진실과 정보를 주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런 정치인이 없다면 정치판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암흑같을 것이다. 앞에서는 죽자고 싸우고 뒤에서는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민주당이든 의원들끼리 서로 존경합니다 운운하면서 조선일보기자와 술이나 퍼먹는 그 분위기를 국민들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그런 위선을 국민들에게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다른 정치인 천마디 백마디보다 훨씬 정치판 현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유시민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뜻있는 시민들에게 있어서 정치판의 등대와 같은 존재다. 

 

국민들은 이제 너무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선적인 인간의 임기응변형 대꾸는 금방 그 허실이 들어나고 만다. 그래서 위선적인 정치가들은 매체에 자주 나올 수가 없다. 토론회만 하면 유시민은 훨훨 날고 다른 정치가들이 죽어지내는 것은 그들이 위선자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상은 정치가들만 빼고 '쿨'하게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방송가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이 느끼한 웃음을 진행자에게 날리면 애매한 말로 음해나 할 것 같으면 진행자도 마주 웃으며 넘어가야 하는데 손석희는 냉정하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되는 게 없다.

 

나는 소망한다. 유시민이 빨리 정계은퇴하기를 바란다. 그가 더 이상 스스로가 위선적이라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한다. 모든 정치인들이 유시민 정도의 위선에 대한 증오는 기본으로 가지게 되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미래에 대한 논의는 결국 패거리싸움으로 전락하고 만다. 불신과 조직논리가 우리나라를 멍청이나 가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가 오면 우산을 쓰자고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비오는 데로 국민을 우산 없이 내모는 정치인들이 있다. 토론은 위선자끼리 할 수는 없다. 위선의 탈을 벗어야 진정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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