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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사람들, 사람들

2010년에 다시 생각해 보는 유시민

by 격암(강국진) 2010. 1. 27.

나는 5년전쯤에 유시민의 초상이라는 글을 쓴적이 있다. 내가 쓴 글이지만 인터넷에서 구해다가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그걸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본다. 나는 다른 할말이 있을까? 유시민은 달라졌는가? 

 

최근에는 개혁당에 참여했을때 만큼 유시민에 대한 소식을 많이 접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시민이 약간 변했다는 소식은 몇번 들었다. 전에는 바른 말하는 투사같은 이미지 였는데 이제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하고 말을 삼가한다고 한다. 한명숙씨 같은 분은 그러니까 유시민이 유시민이 아니더라며 본래의 유시민으로 돌아가는게 좋겠다는 말씀도 하신적이 있다. 

 

나는 참여정부의 기간을 일종의 한국의 르네상스시대의 시도라고 보는 편이다. 이것을 르네상스라고 부르지 않고 르네상스시대의 시도라고 말하는 이유는 인본주의, 합리주의가 그 이후 주류로 자리잡았는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때문이다. 적어도 이명박 시대의 시작은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대처럼 프랑스 혁명이후의 나폴레옹시대처럼 민주와 합리가 권위주의로 대체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자신이 계몽주의의 실수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을 했다고 하며 나는 노무현이 한국에 진정으로 도입하고 싶었던 것은 합리주의라고 생각한다. 즉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독립적 이성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세상을 열어보자는 것이다. 신비한 권위나 지식이 아니라 상식이 움직이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절차와 토론을 강조했다. 투명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시대에 심정적으로 민노당 체질이라고 말하면서도 노무현의 경호원으로 인식되던 사람, 노무현의 유산을 물려받을 적자로 생각되어지는 사람, 이 사람이 유시민이다. 유시민은 내가 보기에 이성의 힘을 믿는 합리주의의 특징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며 뒤집어 말하면 바로 그 합리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그 한계를 극복하고 문제점을 덮을 것인가 아니면 그 문제가 확대되어 정치적으로 실패하거나 사회적인 비극을 만들어 낼것인가 하는 것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20세기 철학은 현대문명을 많이 비판했으며 앞에서 말한것처럼 계몽주의는 낭만주의적 반항을 유럽에서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유시민은 관습과 권위보다는 합리주의로 문제를 풀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은 일관적이지 못한 언행을 매우 싫어한다. 또한 자유를 사랑하고 투명성을 좋아한다. 

 

이 현대적 미덕만 나열해 놓은 것같은 유시민에 대한 묘사는 거꾸로 어디에서 문제가 있을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노무현의 합리주의와 유시민의 합리주의는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같지 않다. 노무현은 숙명론과 천명을 믿는 도가적 기질도 좀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수십년동안의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며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유시민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노무현은 합리주의지만 천명을 믿고 계산의 한계에 보다 민감하다. 반면에 유시민은 이성적 판단에 보다 신뢰가 깊어서 예측할수 없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노무현이라면 개혁당의 문을 열고 닫을 때 보다 신중했을 것이다. 노무현이라면 열린우리당이 부서질 때 보다 신중했을 것이며 노무현이라면 지난 대선때 신당에 참여하는 일에 보다 신중했을 것이다. 

 

내가 유시민에 대한 찬가를 늘어놓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유시민에 대한 고도의 비난을 늘어놓고 있는지 열심히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몰라 미리 말하지만 나는 지금 대선군으로 올라와 있는 사람중에서 내맘대로 대통령을 지명할 수 있다면 유시민을 지명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를 높이 평가한다. 다만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정직하고 지적이며 일관성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인데도 현실에서는 자꾸 틀린다. 그는 사람보다는 주로 논리를 본다. 그때문에 유시민이 배신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유시민을 추종하는 사람만큼이나 가지고 있다. 

 

합리주의적 사고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항상 내미는 것이지만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 민노당같은 정당은 합리주의적 사고를 하는게 아니라 권위주의적 사고를 한다. 그들은 그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한다고 생각하는 것같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합리란 서구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광신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나의 머리로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히 누군가를 복사하려고 한다. 누군가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를 잔뜩 인용하거나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이러저러한 것이 주류적 생각이라는 것에 해박하면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것같다. 어렵게 이야기하건 간단히 이야기하건 자기 생각이 없는 것은 똑같다. 

 

이들은 유시민을 많이 싫어하는데 그들이 유시민보다 계산이 위라고 생각하거나 유시민이 계산을 뻔히 알면서 대중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계산의 힘을 무한히 믿는 사람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일들을 기억하라고 하고 싶다. 혹자는 노무현은 나중에 대선에 이기기 위해서 미리 일부러 부산에 가서 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몽준의 오판도 노무현의 계산에 의해 일으킨 것이며, 탄핵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국회를 장악하는 국면도 노무현의 정교한 계산에 의해 그렇게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말은 터무니 없다. 노무현은 계산에 의거해서 그런 길을 걸은게 아니다. 계산이 빠른 사람은 그런 길을 걷지 못한다. 불행히도 유시민은 노무현보다 계산이 빠르다. 그래서 나는 유시민이 노무현이 걸은 길을 갈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기타 진보세력은 계산은 좋아하는데 계산을 잘하지도 못하고 남의 계산만 줄줄이 왼다. 

 

한국 사회의 정신에 있어서 크나큰 난관은 합리주의와 합리주의의 극복을 한꺼번에 해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정치인들은 권위주의적이고 낭만적인 엉성한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이시대 가장 큰 합리주의의 전도사를 구하자면 그건 유시민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것을 넘어서는 일이 동시에 필요하다. 합리주의로 국민통합을 이뤄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치와 문화는 논리와 합리주의로 해결되지 않는다. 유시민이 이문제의 중대성을 얼마나 뼈져리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것을 해낼수 있을 것인지 나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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