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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쉬는 일에 대하여

by 격암(강국진) 2010. 1. 31.

최근 몇주간은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급하게 한국에 돌아가서 부모님을 도와야 하는 일도 있었고 큰 우환은 없었으나 크고 작은 일들이 터져서 나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지치게 되면 쉬어야 합니다. 문제는 진짜로 사람이 지치게 되면 쉬는 방법에 대해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미도 없는 드라마 물을 연달아 보면 시간을 잘가고 세상일을 잊게 됩니다. 그래서 마치 자신이 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휴식이란 몸과 마음을 깨어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지 몸과 마음을 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걱정거리앞에서는 그런 방법도 처방이겠으나 대개 그런 휴식은 몸과 마음을 둔하게 만들고 점점 지치게 만듭니다.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머리속에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걱정거리는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어린왕자에 보면 자신이 술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어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술을 마시면 자신이 주정뱅이라는 것을 잊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술이 깨면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술을 다시 마셔야 합니다. 이런 것은 반드시 술마시기라는 잘못된 휴식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것 같습니다. 


진정한 휴식은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것을 하는게 휴식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일을 하는게 휴식입니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근심만 늘고 지쳐갑니다. 어떤 때는 집안 청소를 하거나 목욕을 하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하는 것이 휴식이 되고 어떤 때는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치거나 미뤄두었던 자잘한 숙제를 해치우는 것이 휴식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음악을 듣는 것이 휴식이지만 어떤 음악인가 하는 것은 그때 그때 틀린 것같습니다. 머리가 둔감해 졌다는 느낌일때는 클래식음악이 좋습니다. 바하나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물론 느슨한 재즈나 명상곡따위는 반대로 머리가 너무 민감해 졌다는 느낌일때 휴식이 되기도 합니다. 몸에 활력이 부족할때는 비트가 강한 유행가를 듣는 것도 좋고 슬픈 사랑노래를 들으며 감정을 불러 일으켜 보는 것도 좋은 것같습니다. 어떤 때는 낡은 기타를 꺼내 노래라도 직접 부르는 것이 진짜 휴식이 됩니다. 


어떤 때는 누군가를 만나야 휴식이 됩니다. 아이들이나 아내 같은 사람이나 친구 말입니다. 어떤 때는 혼자여야 휴식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휴식과 일은 그래서 객관적인 잣대로 말하기 어려운 것같습니다. 어떤 때는 마라톤을 하는 것도 분명 휴식이 될것입니다. 저의 체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세상 사는 법의 달인이 있다면 매순간 매시간 매일을 한시도 쉬지 않고 휴식할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사람의 생활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잠자는 시간이며 일하는 시간 휴식시간을 자기 맘대로 구분하여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활의 달인'은 그저 계속 자기 마음이 시키는 대로 쉬고 있을 뿐입니다. 


충분히 쉬었을때 마음속에는 올바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같습니다. 다음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렇지 못할때 우리는 우왕좌왕합니다. 그저 어제나 그제했던 것을 반복하거나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몸을 바쁘게 움직여 일을 하거나 해변에 누워 휴식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일을 하는 것도 아닌것이 되고 휴식을 하는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실은 도대체 나는 지금 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며 뭐가 중요한 것인지 길을 잃은 사람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쉰다는 것은 그래서 시간과 공간에서 분리된 독립된 하나의 행동이 아니고 하나의 연속된 춤동작 같은 것같습니다. 한 걸음을 제대로 걷고 한박자를 제대로 밟으면 다음 동작이 따라나옵니다. 반대로 한동작을 잘못하면 다음 동작도 잘못됩니다. 잘못이라는 느낌에 서두르다보면 점점더 엉망이 되곤 합니다.


쉬는 일이야 말로 그래서 세상을 사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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