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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사람들, 사람들

철학자 강유원의 글을 읽다 2

by 격암(강국진) 2010.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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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0일 그는 책읽기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우리 사회의 천박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뭔가 본때 있고 멋진것을 가르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좀 성공하면 술퍼먹고 접대받고 계집주무르는 일을 당연시 했다. 즉 그런 것이 성공의 증거가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누구도 난 성공하면 커다란 서재를 가질수 있을거야 라던가 내가 성공하면 나에게 책 상납(?)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권력을 휘두루고 술마시고 개처럼 변하는 것이 성공의 권리이자 증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천박성이다. 


이게 하루이틀 된것이 아니라는 한탄에 이르러서는 좀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역사를 거슬러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조를 말하며 그 시절에도 양반, 상민, 노비의 비율을 보았을때 (그에 따르면 1780년에는 37.5:57.5:5 였고 1850년에는 70.3: 28.2 : 1.5 다. 우리나라에 노비후손이 하나도 없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옛날에도 그랬다는 것이다. 양반이 되면 병역과 납세의 의무에서 벗어난다니 이 비율이 주는 의미가 뭐겠냐는 것이다. 한줌의 양민이 몇배나 되는 상류층을 먹여살리는 구조다. 그러니 나라가 망했지. 


일견 맞는말이다. 그러나 너무 자학하지는 말자. 19세기에 무식한 일이 일어났던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니까. 그 잘난 미국도 여성참정권은 20세기 초반이 되서야 획득되었다. 보기나름에 따라 거기서 거기다. 생각만큼 엄청난 차이도 아니다. 


그러나 이 비율은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돈이 돈을 만드는 나라 한국에서 지금 인구분포가 삼각형에서 역삼각형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파렴치함은 결국 몇배나 되는 기성세대가 몇안되는 젊은 세대의 등에타고서 돈을 착취하는 상황을 만들수도 있고 이미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교육비다 부동산비나 세금이다 해서 돈을 뜯기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다 젊은 세대다. 그들이 난 차라리 한국인 안할래 라는 소리를 하기 전에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욕심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강만수처럼 강남에서 고액아파트 가지고 종부세 내려니 피눈물이 나더라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야 나라에 희망이 없다. 강남 아파트 가진 사람이 세금때문에 죽는 소리하면 우리나라 사람중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그런 소리를 정부고위인사가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철학과 균형적 시각이 삐둘어져도 엄청나게 삐둘어졌다는 증거다. 


강유원은 말한다. 우리 이제 이념대림은 그만하자고 하지말고 이제 제발 이념한번 가져보자고. 그는 말하는 것과 삶이 다른 위선자들, 생각의 깊이가 없고 결국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주의자들에게 지긋지긋해 하는 것같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한번 생각을 가지고 살아보자는 것이다. 우리도 한번 폼나는 논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도 한번 폼나는 철학을 가진 지도자를 가져보자는 것이다. 그는 정운찬 총리를 몇번 거론한다. 그는 일관성도 없고 상식도 없으며 경제학자로서 성취도 없다. 그런 사람이 나라의 가장 명망있는 지도자중의 하나고 차세대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강유원은 정운찬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의 책은 이제부터 읽지 않기로 한다. 


나중의 일이지만 그는 일본의 수상 하토야마 유키오가 쓴 글을 읽고 감탄과 두려움 그리고 부러움을 느낀 이야기를 쓴다. 일본의 수상은 우애라는 추상적 가치를 정치적 이념으로 들고 나왔는데 얼핏듣기에 추상적이기만 하지만 그래도 일국의 수상이면 이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커다란 나무 밑이라야 많은 사람이 쉴수 있는 것처럼 천박한 사고방식의 지도자가 존재하는 나라에는 비극이 끊일날이 없다. 우리 대통령은 왜 이리 폼이 안나냐고 그는 푸념한다. 


위선에 대해서 말할때 그는 단지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1987년 이후 20여년의 시간이 훌렀다. 그때 앞장섰던 사람들,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이 어쨌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그저 자기들도 다 한자리 해먹은 사람이 되버린거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주로 한자리 해먹은 상징적인 인물을 거론하지만 나는 사실 나자신을 포함해서 87년 전후로 청장년을 보낸 사람들이 스스로 얼마나 양심적이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할때 눈감고 그저 자신의 성공과 돈에 몰두했는가. 그들은 한국의 교육이 일그러지고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솟아오르고 할때 한자락끼지 않았던가? 그들은 한국 사회를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들수 있었던 기회에서 게으르고 몸을 사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이제 중학생들이나 고등학생도 끼는 촛불집회가 한국에서일어난다. 은근슬쩍 거기에 끼는 것만으로 과연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할수 있을까? 40살 이상이 된 한국 사람들은 모두 기성세대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한국 사회가 지금 이렇게 되어 있는 것에 책임을 전부 피할수 없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평등해 지는 것에 촛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인재 양성은 두번째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주장은 사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데 보충설명을 곁들이면 그가 말하는 것이 옳다. 즉 인재양성을 위해서라도 외고와 과고같은 이상한 학교는 없애고 학생들에게 상식을 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종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인재양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란 말하자면 특수목적용 차량처럼 특수한 목적에는 뛰어난 성능을 보이지만 뒤집으면 그 목적이외에는 오히려 보통 차량보다 못한 그런 차량 같을수 있다. 이것은 특히 그 전문화가 심할수록 그런데 우리나라의 외고나 과고를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강유원이 지적하는데로 외고나와서 영어는 잘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뿐이다. 과학, 세계사, 역사등에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과연 인재일까? 과고도 마찬가지다. 과학이라는 주제에 압축해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면 인문적인 교육은 어떨까. 그쪽으로는 오히려 바보되는거 아닐까? 그런 반편짜리를 양산해놓고 인재양성이라고 부를수가 있을까? 


그런데 이런 반편교육이 입시때문에 일반화되고 특수목적고의 설립으로 더더욱 심화되면 이게 무슨 인재양성인가. 민주주의사회를 위한 교육을 위해서도 인재양성을 위해서도 일단 폭넓은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는 엘리트 의식을 가진 자들, 그걸 거론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래서 자신이 인재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고3학생이 권장도서를 권하자 그에게 이런 목록을 주었다고 한다. 소공자, 파브루 곤충기, 대망, 그리고 적벽부다. 


그는 물론 그 학생이 아마도 기대하고 있었을 보다 어렵고 잘난체 하기 좋은 책을 권해줄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목록을 준것은 지식을 많이 가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니 자신의 인격형성에 기본이 되었던 기본적인 책을 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이책들을 여러번 읽었었고 이 책들이 자신의 인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나름대로 매우 솔직한 책소개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도 이해하지 못한 동서양의 고전을 추천하는데 그것보다는 훌룡하다. 


그가 말하는 아이들을위한 독서지침은 이렇다. 


문학, 역사, 과학등의 기본적인 영역에 대한 전집을 구비하라. 안읽는다고 구박하지 말고 다 구매해 두라. 


역사를 강조하라.


고급스런 문장에 대한 취향을 부모스스로도 함께 함양하라. 


 마지막으로 내가 읽은 강유원에 대한 내맘대로의 감상을 약간 더하며 글을 마친다. 강유원은 좀 괴상한 사람이다. 지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지식을 파고드는데 모든 걸 다 포기하는 형국이다. 그는 책이 인간 만들지 않는다고 단언하면서 책을 쓰고 책을 읽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 그가 권하는 도서목록을 보면 기가 죽는다. 그는 넓은 독서량을 자랑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언행에서 위선을 쉽게 발견할 지적 능력을 보이지만 불행히도 이런 것이 옳은 것이라는 간결한 답을 제시할 의도나 능력은 없는 것같다. 누군가가 길고 복잡한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을 기죽고 혼란스럽게 한뒤에 그런데 이런 이야기 다 쓸데없는 것이다라고 하면 듣는 사람들은 조금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그는 스스로 답나오는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을 그다지 행복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살고 있다. 많은 책을 번역하고 쓰고 있다. 책한권내고 짜릿한 세로토닌이든 아드레날린이든 뭔가의 분비를 느끼는 것 그것이 그가 세상을 사는 맛이다. 그가 생산해낸 것들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맑게 하리라 그는 믿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남루한 옷을 입고 작은 빗자루를 들고 넓고 넓은 도시를 청소하는 청소부같은 인상을 준다. 어디서 제대로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작은 빗자루로 온 도시가 청소되리라는 희망도 적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빗자루를 흔드는 만큼 세상은 맑아지고 깨끗해 진다는 것 그것이 그가 사는 보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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