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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사람들, 사람들

한 물리학교수의 죽음과 기억 그리고 애도

by 격암(강국진) 2010. 2. 25.

2010.2.25

아침에 자리에 앉으니 한 물리학교수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국내 초전도체의 권위자이며 2006년에 한국과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오랜동안 포항공대에 재직했으며 작년에 그의 모교인 서강대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을 그 기사를 통해 알게되었다.  

 

나는 학부시절 그에게 양자역학을 배웠고 실험물리를 수강했다. 나는 포항공대에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다녔고 포항공대는 처음시작할 때만 해도 정말 작은 학교였기에 분위기는 가족적이었다. 물리학학부의 정원이 20명밖에 되지 않았고 처음에는 대학원생도 없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내가 포항공대에 입학하던 해 포항공대 물리학과에는 1,2 학년밖에 없어서 단지 40명의 학생밖에는 없었고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다. 따라서 내가 그와 절친한 사이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부고는 그저 흘려듣기에는 너무 무거운 기사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항상 열정에 차있었으며 단순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인 사람이랄까. 라켓볼을 좋아했고 농구도 좋아해서 학생들과 잘 어울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에게는 항상 어떤 비장함이 흘렀던 것 같다. 나에게는 할 일이 있다는 비장함이 열심히 학생들과 어울리고 있을 때도 그의 몸 어딘가에는 있었던 느낌이다. 

 

어느 학문이나 연구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벽을 느끼지 않을 도리는 없겠지만 나는 20세기말에 물리학을 전공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생물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물리학은 20세기에 걸쳐 가장 주목받았던 학문이다. 세기의 천재들이 뛰어들었고 인간문명을 가장 앞에서 선도하던 학문이다. 오랜동안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인재들이 엄청난 수가 뛰어들어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20세기에 과학자의 수가 얼마나 늘어났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물리학분야에서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를 알수 있다. 이미 나와서 축적되어 있는 이론과 실험을 한 분야에서 쫒아가는 것도 정말 힘겹다. 게다가 한국 같은 곳에서 고립되어 공부하면서 말이다. 

 

그는 공부욕심이 굉장히 많았다. 그가 남긴 유서에 나는 물리학을 사랑했다라고 써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분명 사실이다. 그는 항상 바빴다. 자기가 잘하는 것만 이야기하고 도전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이미 아는 것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교수가 아니라 계속 열정적으로 공부를 하던 교수였다. 그는 권위적이지 않았고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교묘히 숨기려고 들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가 모르는 것에 지치지 않고 돌진 하는 그런 교수였다. 

 

언젠가 학과사무실에서 그가 유럽의 학회에서 자기 연구실의 학생에게 보낸 엽서를 읽게 된적이 있다. 그는 그 학회의 분위기가 아주 열정적이고 바쁜 일정이었다는 것, 그가 연구에 대해 가지는 열의는 더더욱 다져진다는 것을 써서 보냈었다. 나는 그 엽서에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좋은 연구를 하려는 각오를 계속해서 다짐하는 그런 교수였다. 

 

나는 그의 행동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여러가지 그럴듯한 심리적 설명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열정에 차있고 권위적이지 않았던 한 교수, 물리학을 치열하게 사랑했던 한 교수가 사라졌다는 말에 애도를 표하는 것에 멈추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했고 그를 잃어버린 것을 매우 애통해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성익교수님,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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