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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나를 지키는 말들.

by 격암(강국진) 2010. 3. 10.

우리는 분주히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획득하여 소유한다. 책을 통해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서 지식과 기술을 얻는 것은 물론 직업을 가지고 가족을 가지고 사회적 관계망을 가지는 것들이 모두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획득하여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것들, 사실과 논리들, 물질들, 사회적 위치와 돈들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유형의 것들의 홍수속에서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는 미아가 되고 불안에 쫒기며 그저 누군가를 흉내내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는데 많은 경우 그 사람도 다른 사람을 불안한 느낌에 막연히 흉내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무도 답을 모르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흉내내며 사이비종교, 다단계 판매, 투기적 경제활동 같은 것에 쉽사리 빠져드는 사람도 많다. 마음의 평화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는 결정의 순간에서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느낄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남이 공부하는 것을 나도 공부하고, 남이 입는 것을 나도 입으며, 남처럼 진학하고 취업하고 남처럼 연애하고 남처럼 가정을 꾸미고 남처럼 가족을 이뤄나간다. 그러나 신문이나 인터넷 같은 매체를 통해 세상을 볼때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이며 혼란에 쳐해있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불안은 끊이질 않는다. 

 

우리에게는 중심이 필요하다. 하나의 촛불이나 등불이 방안을 밝히듯 그렇게 가치와 윤리의 중심이 되어줄 중심이 있어야 삶을 살아갈수 있다. 그 중심은 앞에서 말한 유형의 것들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의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논리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구축하고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느껴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혼란스런 도시의 소음과 지나치게 존재감이 큰 주변사람들을 떠나서 넓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가거나 깊은 산속에 들어간다면 혹은 봄빛이 따스한 날 논두렁이 보이는 넓은 벌판에 가서 햇볕을 쪼이며 벌판이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진게 없다고 느낀다. 

 

적어도 그 순간은 내가 원해서건 그렇지 않건 나에게 덕지덕지 붙어서 가득 나를 덮고 있는 유형의 것들을 모두 벗어던진 순간이다. 자연을 자연으로만 보고 있다면 그 자연은 나와 어떤 단순한 유형의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신비하고 충만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자연을 쾌락의 장소인 리조트로 생각하거나 투자의 대상인 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산도 바다도 들도 햇볕도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어떤 관습적 윤리나 가치를 초월해 있으면서 편안하게 존재한다. 그런 것을 느낄 때 우리는 동시에 우리의 내부에서도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유형적이고 인위적인 것들에 시달려서 잊혀진, 그래서 종종 매우 연약하고 지쳐있고 상처입은 듯한 뭔가를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산이나 바다나 빛나는 들판이나 봄비가 내린 숲의 잔디와 어떤 동질감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산이고 바다고 들판이고 봄비다. 우리는 시공속에 절대적으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으로 열려있고 섞이고 변하는 존재다. 우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실은 이런 의미로는 모든 것이 생명체다. 

 

우리는 이 하나를 얻어야 한다. 그럴때 가치를 느낄 수 있고 해야할 일을 알 수가 있으며 아무 일없이도 편안하게 존재할 수가 있다. 천년이 지나도 만년이 지나도 바다는 그대로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로 분주하며 어떤 일로 상처입고 불안해하고 있는가. 

 

동서고금의 현인들, 성인들의 글을 읽고 과학이며 기술적 지식을 쌓고 세계를 둘러보며 우리와 다른 사회들에 대한 역사공부 사회공부를 하고 무수한 지식을 쌓지만 그것은 하나가 없으면 모래성에 불과하다. 하나가 없으면 하나로 관통될 수가 없다. 바닷가의 모래보다 더 무수한 사실들의 집합에서 필요하고 소중한 사실을 골라내는 가치의 눈과 등불이 필요하다. 

 

공자님 말씀을 천번을 외우고 부처님말씀을 천번을 외우고 예수님말씀을 천번을 외워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안에서 공자를 보고 부처를 보고 예수를 보기 전에는 말이다. 포도 한알을 먹고 느껴지는 그 맛을 천권의 책으로 여러가지로 표현을 한들 번잡하고 혼란 스럽기만 할뿐이다. 포도는 그냥거기에 있는데 포도에 대한 묘사로 평생을 보내고 말면 포도맛에 대한 전문가는 될 수 있을지언정 평생 포도맛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유형의 것들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나 유형의 것 이전에 무형의 것, 마음의 등불, 나자신, 이런 것이 있음을 잊으면 유형의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오히려 많이 가지고 있을 수록 마음의 시름만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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