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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크리슈나 무르티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

by 격암(강국진) 2010. 3. 25.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책은 내게 있어서 위안을 삼기에 좋은 책인것 같다. 강연을 녹취해서 만들었다는 책이어선지 읽어보면 그냥 친절한 할아버지가 옆에서 줄줄이 떠들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차한잔을 마시면서 이따금 그 할아버지에게 맞장구를 쳐주며 쉬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이 이것이다라고 쓰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는 일단 어떤 권위, 어떤 형상화, 어떤 지식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안다는 것은 지식이고 내가 누구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지식이다. 그런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볼때 세상을 그대로 볼수가 있다. 


지식은 항상 어떤 개념에 근거하고 그 개념들이 짜맞춰져서 어떤 이데올로기나 더 복잡한 개념이 된다. 그리고 그런 지식들은 마치 자동차나 선풍기처럼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매우 강력하며 편리하다. 


매우 강력하며 편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빠져들고 이제 그것 자체가 현실인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식들을 떨쳐버리고 일어날수가 없게 된다. 마치 자동차를 너무 많이 타서 다리가 약해진 사람이 이제는 그저 몇백미터의 거리도 굳이 차를 타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상은 이보다 더 심하다. 우리는 거의 다리가 퇴화되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돌처럼 굳어있고 우리는 선입견과 습관으로 가득차 있다. 미인이라는 것은 이러저러한 것으로 형식이 있다. 무슨 스타일의 옷, 생활습관, 직업으로 우리를 가득채운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습관, 개념을 우리에게서 떼어내고 나면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느낀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특히 직업이라는 것이 그러한데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서로를 만나면 뭐하시는 분이냐고 묻는다. 그거면 그를 잘 알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업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스스로의 존재의미가 사라진다고 느낀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인간과 개인에 대해 이야기 하며 우리는 결코 개인이 아니라 어디나 존재하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나를 이 책상위에 존재하는 육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 육신에 갇혀 버리게 된다. 그 육신은 마치 이 세상 모든것이 사라져도 혼자 존재할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생명이란 그런것이 아니다. 생명이란 풍선같은것이다. 풍선의 안에도 바깥에도 공기가 있다. 풍선이 이러저러하게 생긴것은 안의 공기 이상으로 바깥의 공기 때문이다. 우리가 풍선주변에 동그랗게 테두리를 그리고 그안에 있는것이 풍선이라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 풍선을 우주공간에 가져간다면 그 풍선은 터져버린다. 주변이 진공이기 때문이다. 풍선은 안과 바깥의 균형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나라는 인간역시 내가 이 육신에 가지고 있는 것 이상으로 바깥 것들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다. 정신적인 것은 물론 육신도 그렇다. 나는 살아있기에 끊임없이 물질을 외부와 교환한다. 물을 마시고 배설을 하고 어제 먹은 삼겹살의 지방은 내몸의 어딘가에 붙어서 이제 음식에서 내 육체의 일부로 변했을 것이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 다음에 오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 할아버지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너는 아는가. 나와 저 강아지, 저 숲, 저 하늘은 정말 다른가. 전쟁없고 비극없는 세상은 논리로 오지 않는다. 논리이전의 하나됨을 알때 우리는 제대로 평화롭게 살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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