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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거부한 김예슬을 생각한다.

by 격암(강국진) 2010. 3. 31.

명문교인 고대를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쓴 김예슬씨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하 존칭 생략). 이세상에는 워낙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특정한 누군가가 뭘했다는 것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엽기적 살인범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모든 인간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김예슬의 행동은 많은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으며 이는 이것이 김예슬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김예슬의 대자보 전문을 보면 김예슬이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학벌 피라미드 사업의 진실을 알아버린 것입니다. 


돌아보면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은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피라미드 사업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명하고 극명한 예는 부동산 투기입니다. 아파트를 사면 집값이 오른다 라는 아파트 불패의 신화를 믿고 수많은 사람들이 뼈빠지게 돈을 모아 돈을 빌려 아파트를 삽니다. 그 아파트의 진실된 가격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채 말입니다. 


그런데 피라미드 사업은 먼저 뛰어들어서 폭탄을 다음사람에게 넘기고 빠져나온 사람만이 돈을 법니다. 나중에 뛰어든 사람은 어느날 휴지로 변해버린 자신의 돈에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부동산으로 말하면 아파트 가격 거품붕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실은 자본주의 자체가 피라미드 사업인지 모릅니다. 산업화의 선발주자인 나라들은 다른 나라들을 유혹하고 강요해서 그들을 쫒아오게 만듭니다. 그 구조는 결국 고부가가치 제품을 선진국에서 만들고 후진국은 저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구조인데 다른 말로는 여유있게 생활하는 선진국의 삶은 그들의 상품을 사주는 후진국의 희생에 기초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후발주자는 더욱 후발주자인 나라들에게 같은 구조에 편입되라고 함으로서 '발전'할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 피라미드가 전세계를 채우고 나면 이젠 피라미드 바닥에서 문제가 생길테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학벌 피라미드라는 건 뭘까요. 그것은 명문학교를 졸업하면 그 학교의 졸업장이 많은 부와 명예와 즐거움을 준다는 신화입니다.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졸업장을 쥐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졸업장은 점점 더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해방이후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지식인이었는데 대학생도 흔해 지더니 요즘은 대학도 못나온 사람은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인것 처럼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해외어학연수나 유학이 흔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서울대나 연고대를 졸업해도 취업이 보장이 안됩니다. 그래서 석사를 따고 박사를 따는 사람이 늡니다. 해외에서 유명 학교의 분점을 내는 경우도 많이 생깁니다. 이제는 초중고부터 한해에 몇천만원씩 학비를 내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나는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예슬도 지적하듯이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취업이야 어찌되고 교육비가 어찌되건 배우는 것이 있다면야 그나마 위안을 얻을수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배우는 것도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큰 가르침이 대학에 없습니다. 실은 대학도 회사처럼 변해서 생존경쟁에 돌입한지 오래입니다. 입시학원과 비슷하게 변해갑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뭐에 쓰는 지도 모르는 잔기술만이 주로 존재합니다. 그 기술은 대개 취업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주지도 않으니 돈내서 빚지고 대학졸업해봐야 남는 것은 엄청난 적자뿐이라는 김예슬의 한탄은 과연 일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특정한 사람, 특정계층을 원망하고 책임을 물을수는 없습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데 대학의 발전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도 있고, 경제발전이 정체되는 문제도 있으며, 직업윤리와 삶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문화적 견해가 삐뚤어져 있는 것에도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따지고 보면 피라미드 사업의 본질은 사기고 남의 돈을 착취하고 부끄러워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욕심입니다. 교육피라미드 사업이라는 이 구조에서 분명히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상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넓은 눈으로 보면 사실 미안한 것이고 부끄러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례로 대학등록금은 왜 그리 비싸져야 합니까. 물론 사학재단들은 돈쓸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 돈은 왜 젊은 세대의 호주머니에서 전부 나와야 합니까. 


지난 정권에서 사학법개정을 둘러싸고 거의 나라가 뒤집어 질것처럼 싸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근본원인중의 하나는 사학재단의 운영을 투명화하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학재단은 진정한 사학재단이 아니라 엄청난 국고를 지원받는 곳인데도 말입니다. 


한국의 경제적 발전은 두말할것 없이 한국의 인력이 값에 비해 질이 좋았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위대하신 몇명의 기업가나 정치가가 이룬 일이 아닙니다. 한국처럼 문맹률이 낮고 부모가 자식교육에 희생하는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에 거의 근접한 나라로 성장하는 매우 드문 예중의 하나가 되었고 재벌그룹들이 한국에서 성장한 겁니다. 


삼성은 절반이상이 이미 외국인 소유입니다. 사람들은 삼성이 한국에 있는게 한국에 무슨 특혜를 주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특혜는 서로 주고 받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회사를 운영해서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다면 회사는 필연적으로 떠납니다.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회사를 운영하는게 수지맞는 장사였기 때문에 장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은 어떻게 교육문제에 기여합니까? 사학재단, 세상을 혼란시키는 비양심 언론들, 그리고 재벌들은 서로 서로 얽혀서 한국이라는 피라미드 사업장을 유지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도저히 젊은 세대가 희망을 가질수 없을정도로 상황이 나빠져도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까? 


한국의 부동산값 누가 이렇게 올려놓았습니까? 한국과 일본은 국민소득이 거의 3배차이나는데 부동산 가격은 체감상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 임금은 3배쯤 차이나는 것 같더군요. 등록금은 한국이 더 비싼 것같습니다. 여러가지 핑계를 댈수도 있고 시장의 법칙이 어쩌고 하면서 변명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라미드 사업장에서 돈버는 사람들이 양심에 물어야 할것입니다. 그런게 있다면 말입니다. 


피라미드가 붕괴하는 이유는 더 열심히 노력해서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는게 아니라 그 피라미드의 하부구조에 편입하기를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때문에 노동일 하는 부모님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공부할수 없었다는 김예슬의 지적은 욕심에서 눈을 뜬자의 독백입니다. 


나만 뒤쳐질까 싶어서 무리한 투기인줄 알면서 빚내서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이 한국에 가득하면 아파트 가격은 현실에 상관없이 올라갑니다. 그러나 진실한 삶이란 어때야 하는가, 이런 행위가 소리없이 어떤 피해자를 낳는가, 폭탄을 만들어 남에게 파는 것이 얼마나 비양심적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 투기의 피라미드는 붕괴합니다. 


학벌피라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이 가르치는게 없다면 대학을 거부할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는 대학에서 배운것을 신용할수 없다면 고등학생 뽑아다가 더 짧은 기간 회사내에서 교육시키는 게 옳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모두가 실질을 생각하고 인맥이니 욕심이니 하는 것을 버리면 거품이 사라지고 피라미드가 붕괴할것입니다. 어떤 시스템이건 보다 상식적이고 사기적이지 않은 시스템이 정착될것입니다. 


먼저 그 피라미드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김예슬은 욕심과 실질을 직시하기를 거부한 많은 다른 사람에 의해 짓밟힐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패자로 힘겨운 삶을 걸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가지는 확실한것 같습니다. 하나는 그렇게 했을때 욕심과 환상의 행진을 멈추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마음에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남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믿고 행동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김예슬은 진정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체적이지 못하면서 합리적인 것을 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합리적인 김예슬은 그녀의 호언대로 그냥 시스템에 순응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삶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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