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도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권위주의적인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촌지를 받는 선생님이 인성교육을 시키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다. 참된 교육은 학교와 사회를, 선생님과 학생을 쪼개서 다른 규칙을 만들지 않는다.
40명의 학생이 같은 책을 보고 같은 것을 외우는 교육의 반복은 아이들의 사회성을 말살한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도 같은 것을 공부한다는 것을 알며 오로지 다른 사람을 경쟁에서 이김으로서만 성취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존 듀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먼 미래를 위해-진급이나, 진학이나, 시험통과- 공부하는 것을 배운다. 그들은 지금을 위해 살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사는데 익숙해 진다. 그런데 그 미래의 목표는 실은 개인적 이기심의 충족에 불과한 것으로 협동과 사회적 융화는 무시된다.
우리는 학교가 좋은 판단력을 길러주는가를 살펴야 한다. 지식을 얻는 것은 결코 판단력을 길러주지 않는다. 좋은 판단력은 감수성을 요구한다. 선택의 결과에 대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는 이런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존 듀이)
존 듀위의 Moral Principles in Education을 읽었다. 1909년에 미국 학교 교육 개혁을 위해 말한 내용이 마치 2010년의 한국 교육현실을 말하는 듯한 인상. 기본이 망각되도 한참 망각되었다는 증거다.
세상에는 시대와 단절된 세대가 있다. 그들은 인터넷의 성장시대에 마침 컴퓨터를 배우기에는 너무 굳어진 세대다. 그들은 그야말로 컴맹세대로 시대의 흐름을 쫒아가지 못했다. 이들에게 아이패드같은 기계는 금속활자의 보급같은 것일수 있다.
일본에서는 비빔밥과 갈비가 대중화된지 오래다. 매뉴얼화를 통해 음식을 개발하는 면이나 일본의 국제적 지명도가 한국을 앞선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음식문화를 빼앗길 위험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열심히 콘크리트 공사만 한다.
막걸리에 대한 다큐를 봤다. 일본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곳도 있었다. 적어도 그 다큐에서 보여준 곳을 비교하면 일본의 공장은 너무나 깨끗하며 장인정신이 있는 반면 한국은 그런게 보이지 않았다. 닌텐도 부러워하지 말고 뭘 가졌는지나 자각하라.
한국은 이제 한복이 거의 사라졌다. 명절도 거의 퇴색되어 분위기가 나질않는다. 일본의 마쯔리는 일본풍이며 차이나타운은 물론 중국식이다. 우리는 우리것을 다없애고 관광진흥하자면서 차이나타운 만들자고 한다. 일본친구들에게 어디를 추천해야 할지 민망하다.내것이 없는데 남의 것만있는 곳이 관광이 될리가 있나.
이름이 알려진다는 것은 대개는 과대망상에 빠지는 길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허접함을 끊임없이 지적당하는 일이 된다. 성인들은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으나 그들 중에는 책안쓰고 죽은 후에 유명해진 경우가 많다. 살아서 이름이 알려지는건 위험하다.
김대중이 노벨상을 타고 선거에 이겼던 것은 그가 그일을 하기전에는 기적이었고 하고 나니 별게 아닌 일처럼 되었다. 노무현이 이회창을 이긴일은 하기전에는 농담거리도 안되는 기적이었고 하고나니 별거 아닌일이 되었다.
세간에는 이런 저런 비판이 많지만 자기반성에 근거하지 않은 비판이 대부분인 것같다. 때로 열광적인 지지자가 가장 큰 난관이 된다. 우리의 힘은 무한합니다라고 하면서 이룰수 있는것부터 행하지 않고 턱도 없는 꿈에 에너지를 낭비시키기 때문이다.
정치의 근간은 철학과 문화이다. 정신적 문화적 공감대가 없는 정치집단이란 제 아무리 잘 포장해도 결국은 이권을 위해 뭉친 이익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자치의 시대, 문화를 꽃피워야 할 시대에 정신과 문화는 어디로 가고 콘크리트만 나부끼니 . . .
지난밤에는 윤오영을 다시 읽었습니다. 요즘 현란한 지식을 자랑하는 필자는 많으나 자기것으로 단단히 흡수한 뒤에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기는 없고 유행만 따라가는 빈껍질 지식인은 심난한 밤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은 흔히 경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수들도 학생들도 경쟁시키고 심사하고 탈락시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을 3배수쯤으로 비정규직으로 뽑은 다음 그 활동을 심사해서 탈락시키자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의 권위주의는 일본에서 온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일본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서로를 부를때는 대개 무슨무슨 상아니면 무슨 선생이다. 한국인들의 모임에 가면 다들 직위나 학위 불러주느라 정신이 없다. 부동산 거품이상으로 체면거품이 한국에는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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