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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처리의 사회적 중요성.

by 격암(강국진) 2010. 4. 22.

머릿말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이러한 목표가 완벽히 이룩될수 있는 것은 오직 개개인이 자기성찰을 통해서 각자의 사고의 높이를 높여나갈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이 불완전한 세계에서 그러한 세계로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수 있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 


나는 그것이 우리사회가 정보라는 것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정보를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하는가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정보처리의 불합리성이 만들어 내는 문제들


먼저 정보처리의 불합리성은 쓸모없는 혼란을 만든다. 예를 들어 4대강개발에 대한 논쟁을 보자. 모든일에는 찬반이 있을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보고 있으면 아주 기본적인 환경영향이나 경제평가 같은 것에서 조차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렇게 해서 논의는 더이상 대화의 수준이 아니라 무슨 종교적 신앙의 수준으로 가고 만다. 우리 사회가 교육, 국방, 복지등 여러방면에서 겪는 문제는 비 전문화와 비 합리주의의 문제가 상당부분을 차지 한다. 사람들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른다. 권력과 돈에 무관한 전문가를 찾기 힘들다. 기본적 사실이 흔들리니 대화가 되지 않는다.


정보처리의 비효율성은 확실한 사실들을 논하는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것에만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믿어서 신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막는다. 즉 논리와 사실들로 확실한 결과를 내놓을수 없는 상황에서도 효율적 정보처리능력이 만들어 내는 신뢰와 투명성 향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안심하고 살게 해줄수 있는 것이다. 


소위 사회적 기득권들은 정보를 독점하려고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보를 독점할때만이 그들의 이득을 극대화 할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 재벌의 회사운용문제, 사학재단의 운영문제등 여러가지 문제에서 핵심적인 것은 정보의 독점이다. 언론을 자본이 지배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물론 이러한 이유때문이며 타락한 언론과의 싸움이 지난 10년간 진보진영에 있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것은 또한 산업기반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지적 재산권이 높게 평가받지 못하고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이득을 취해서 벤쳐사업같은 것이 잘되지 않는 것의 배후에도 꼭같은 문제가 있다. 


왜 정보처리는 불합리해 지는가.


나는 한국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독과점의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이 지리적으로나 인구적으로 작고 폐쇄된 나라라는 것 그리고 한국의 문화가 여러가지로 단절을 만들고 패거리를 만들어 혈연, 지연등 여러가지 통로를 통해 공사구분이 안되는 상황을 만들기 쉬운 면이 있다는 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문화에서는 친족에 대한 의리는 사회적 의무위에 있다는 정서가 있다. 자기 자식이나 삼촌이 나쁜 짓을 해도 그것을 고발하지 못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라는 식의 정서가 있는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는 너무도 쉽게 부자지간과 형제지간의 인연으로 묶여지고 사람들은 의리에 묶이고 만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잘나가는사람,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서로 얽혀서 폐쇄적 사회망을 이루기 극히 쉽다. 이것은 특별히 법을 어기지 않아도 이런 사회망속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을 소수의 사람들이 착취하는 구조를 쉽게 만들어 낸다. 큰 회사들의 사장들은 대부분 서로 친인척 관계로 얽히고 정가의 유명인들은 대부분 한두다리 건너면 친인척관계나 동창관계로 얽힌다. 이럴때 이런 사회망속에 연결점이 없는 서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여기에 전달될수 있을까? 설사 그렇지 못한 사람이 서민의 대표로 국회나 청와대에 진출한다고 해도 공고한 인맥에 포섭되거나 패배당하게 되기 쉬울 것이다. 


어느 나라나 어떤 기준으로건 상류층과 중하류층이 있고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은 있지만 나라가 충분히 크고 투명하다면 기득권층이 모두 한덩어리가 되지 않고 서로 경쟁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으로 말하면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 워렌버핏 같은 모든 부자들이 하나의 당을 지지하는 형국인 것이다. 정보처리의 불합리성은 이 폐쇄성에서 나온다.  


정보처리 향상과 기술의 관계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현실은 어떻게 극복될수가 있을까. 나는 여기에는 투명성과 공사구분을 확실하게 하는 문화를 지키는 집단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더 많은 국민들을 포섭하는 것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집단이 한국에 집단으로서 제대로존재하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져 있어 온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즉 문제는 단순히 극소수 기득권의 문화만이 아니다. 한국을 지배하는 전반적 문화 자체가 문제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 몇몇 사람들이 새로운 기득권으로 정치권 경제권에 편입되어도 사회적 변화는 거의 볼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한국의 현실을 크게 바꾼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우선 새로운 문화가 싹트는 민주적인 공간이었다. 현실사회속의 지위나 나이를 초월해서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인터넷은 사회속에서 뿔뿔히 흘어져 있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이어줄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즉 문화적 소수자들이 주류문화의 소비자들에게 둘러쌓여 고립되는 것을 막아줄수가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 핸드폰의 보급들은 그 인과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한국 사회의 투명성 제고의 역사와 방향을 나란히 한다. 기성언론의 들의 허위를 밝혀줄뿐만 아니라 사회적 단결을 만들어 내는 장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촛불집회가 시발된 곳이 온라인이라는 점, 그리고 다음의 아고라가 국회에서 거론된다는 점등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트위터와 아이패드가 보여주는 가능성


이런 전자통신이 만들어 낸 영향력은 트위터나 아이패드같은 기계의 등장으로 보다 커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트위터 같은 서비스는 자본과 저질 사용자의 공격으로 부터 보다 안전한 소통을 보장해 준다. 즉 자본을 가진 사람이 정보의 소통을 막기가 보다 어렵고 소위 인터넷 알바로 불리는 게시판 도배꾼이 사람들의 논의를 저질적 감정싸움으로 만들기 보다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낸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은 국내의 자본이 아니라 국제적 시장을 통해서 움직이는 애플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좀 서글픈일이기는 하지만 국내의 독과점 세력이 그 통로를 막기 어려운 상황을 제시한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이 열어주는 오픈 어플리케션 공간은 자본이 인터넷을 지배하는 것을 무력화시키는 또다른 통로가 될수 있으며 컨텐츠를 만들고 배포하는 사람들에게 수익의 기회를 제공할수 있다. 예를들어 네이버나 다음이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인터넷은 그간 극심한 자본의 탄압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을 백만명이 해도 그런 의지가 실질적인 힘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네이버가 뉴스 편집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다음이 아고라나 블로그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대중의 의사는 허무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이러한 현실이 보다 발달된 전자통신 서비스가 확산됨에 따라 뒤집어질 가능성이 보이고 있고 이때문에 국내의 포털, 통신 사업자들이 당황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참여 민주주의의 문제


정보처리에 대해 나는 참여정부를 지지하던 다수의 사람들이 종종 암묵적으로 믿었던 민주주의는 다수결원칙이다라는 명제에 대해 언급을 하고 싶다. 참여정부 내내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당시에 소위 참여정치의 이상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진성당원제 문제로 불거졌으며 결과적으로 당시의 여권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문제였다. 


이 참여 정치의 이념의 기반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가정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보다 바람직한 민주주의는 다수의 사람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할때 이룩되며 그것이 인터넷 기술의 발달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참여정치의 정신에서 핵심을 취해야 할것은 투명성이지 참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효율성을 생각하면 일정규모이상의 집단에서 전문화가 일어나는 것은 피할수 없으며 따라서 되도록 많은 사안에 직접적으로 대중이 다수결로 참여하는 것은 중우정치가 되기 쉽다. 실질적으로는 대중에게 인기있는 정치인의 독재가 되는 것인데 왜냐면 대중은 그 정치인을 신뢰하고 있을 뿐 자세한 세부사항을 점검할 능력도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대중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누구도 모든 사안에 참여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결정에 참여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민주주의에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민주주의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요한 수단중에는 새로이 가능해진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권력적으로 재정적으로 분리되어 견제의 수단이 될수 있는 감사기구 혹은 방송언론 기구가 존재하는 것을 포함하게 될것이다.  


맺는말


이상의 내용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자유로이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하면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위해 필요조건들에 불과하다. 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개혁의 가치, 새로운 문화의 핵심적 가치를 정립하고 그것을 생활속에서 구현해내는 문화운동, 철학적 고찰, 그것에 기반한 정책의 개발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내용들이 필수적으로 고려될때만 한국 사회는 변화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것이 실패해도 이런 내용들에 진전이 있다면 우리는 큰 한걸음을 걷게 될것이고 이런 한 변화가 좌절될때 한국사회는 끝없는 좌절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개혁은 반드시 좌절될 것이다. 투명성과 신뢰성확보는 핵심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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