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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미디어와 분류의 오류 1

by 격암(강국진) 2010. 6. 11.

2010.6.11

전에 흑백논리와 백분율논리라는 글에서 거친 분류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예를 들어 http://blog.daum.net/irepublic/7887599  를 보라. 이것은  http://blog.daum.net/irepublic/7887587  를 포함하고 있다. )

 

오늘은 빨라지고 폭넓어져가는 미디어와 복잡하고 다양해져가는 사회에서 이 분류의 오류가 무슨일을 하는지를 한번 다시 생각하고 정리해 볼까 한다. 우선 분류(classification)가 어떤 일을 하는지 생각해 보기 위해 아래의 그림을 보자. 

 

 

위의 그림은 잘못된 분류라는 것이 어떤 일을 하는 가를 설명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아마도 위와 아래의 두개의 그래프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의 그림은 천천히 변하는 곡선이며 아래의 그림은 상중하 세개의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는 직선그래프다. 각각의 구간은 위 그래프의 값의 평균을 나타낸다. 나는 분류라는 것이 위의 그래프에서 보이는 실수를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위의 그래프인데 아래의 그래프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위의 그래프에서 보여지는 오류만큼의 단순한 오류는 잘 저지르지 않는다 (혹은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위의 그래프는 실제 세계와 두가지가 크게 다르다. 이 두가지 차이점이 우리로 하여금 커다란 오류를 쉽사리 만들어 내게 한다. 

 

첫번째는 현실세계는 위의 그래프처럼 1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공학쪽으로 공부를 조금만 해보았다면 공학에 있어서 복잡한 대상들을 분류하는 문제가 공학적 난제라는 것을 알것이다. 여러가지 음성신호가 존재한다던가 여러가지로 손으로 씌여진 글자라던가 여러가지 특성을 지닌 고객들이 있다고 하자. 이것들을 분류하고 싶다. 이것을 어떻게 해낼 수가 있는가. 이런 문제는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경제적으로 말해 우리나라에는 서민층, 중산층, 부유층이 있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정치적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구분될까 라고 하는데 우리는 좌파와 우파가 있다라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말이 정말 옳을까? 중산층이란 존재하는가? 좌파란 존재하는가? 물론 어떤 정의에 따르면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정의는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현실의 여러가지 대상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분류를 하는데 분명히 그것들은, 예를 들어 사람은, 1차원적인 존재가 아니다. 현실의 존재는 무한히 다양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다면적인 존재다. 무한운운을 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1차원적으로 그려질 존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류를 한다. 그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분류하기 좋아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물학적인 특징이다. 즉 분류가 저절로 일어나 버린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의미없어 보이는 점들의 집합들을 이어서 어떤 그림들을 떠올린다. 하늘의 여러가지 별자리들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 진것이다. 심리학 테스트에서는 이상한 물감그림을 보고 뭐가 떠오르는가를 질문하기도 한다. 

 

그 분류는 그나마 종류가 아주 다양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대개 한번에 7개까지만을 잘 외울 수 있다고 한다. 즉 전화번호가 7-8개의 숫자가 아니고 주민등록번호처럼 길다면 우리는 남에게 숫자를 듣고 단번에 잘 외울 수가 없다. 그래서 인지 우리는 보통 세상을 단순하게 나눈다. 이분법이나 3분법이 흔하다. 좌파나 우파고 상류층, 중산층, 서민층이다. 우등생, 보통학생, 열등생이다. 세상은 산과 바다와 들과 강으로 이뤄져 있다. 도시가 있으면 시골이 있다. 빨주노초파람보로 무지개 색깔도 7개로 나눈다. 실제로는 물론 무한개의 빛이 그 안에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우리의 관념조각들로 채워넣는데 그 조각들은 대개 몇종류가 안된다. 현실은 물론 몇종류가 있는게 아니라 무한히 많은 종류라고 할 수 있는 연속체로 존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는 -이것은 공학문제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차이에 대한 정의다. 여기 두사람과 두 고릴라가 있다. 우리가 두개의 집단으로 이걸 나눈다고 할 때 당신은 아마도 인간집단 하나 고릴라 집단 하나로 나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인간은 고릴라와 다르다라는 말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두사람이 한쌍의 남녀이고 두 고릴라도 그렇다고 할때 성별로 나뉜다면 -어떤 사람들은 기분이 나쁠지 모르나- 남자는 수컷 고릴라와 한 짝이 될것이고 여자는 암컷 고릴라와 한 짝이 될 것이다. 

 

즉 분류를 하자면 우리는 어떤 차이가 중요하고 어떤 차이는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음성인식을 한다고 하자. 왜 어떤 소리들은 바로 들리고 어떤 소리들은 보로 들릴까. 소리들간의 어떤 차이가 바와 보로 들리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우리는 그걸 이해하고 그 차이를 기준으로 소리를 나눠야 음성인식을 제대로 하는 기계를 만들 수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하필이면 이러저러한 기준을 도입하고 그걸 통해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본 후에 사람들을 분류할까. 그것이 당연한 것일까. 두사람의 월급차이가 3백만원이 난다면 엄청난 차이일지 모른다. 그러나 월급이 백만원인 사람이나 4백만원인 사람이나 빌게이츠나 이건희같은 엄청난 부자들이 보면 다 똑같은 사람일 것이다. 다 서민이고 월급쟁이다. 과연 우리는 월급 3백만원의 차이를 큰 것으로 봐야 할까 작은 것으로 봐야 할까?  나를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등장하는 이 차이에 대한 정의는 얼마나 깊은 근거를 가진 것일까. 백만원짜리 음식은 3천원짜리 짜장면보다 3백 3십 3배 맛있을까? 

 

이렇게 여러가지 측면을 가진 대상을 분류하는 작업의 어려움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쉽사리 세상을 몇개의 단어로 나눠서 이건 저거고 저건 이거라고 말하는것에 대해 무리함이 있음이 조금은 느껴질지 모른다. 도대체 이름을 붙이고 나누고 부장이고 선배고 교수고 학생이고 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중산층이란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나 실은 진짜 문제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내가 이글에 미디어의 문제를 등장시킨 이유다. 이것에 대해서는 글이 길어지므로 다음 글에서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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