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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과학기술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

by 격암(강국진) 2010. 7. 13.
우리는 오늘날 국력과 과학기술은 비례하며 따라서 한국도 과학 기술의 선진국, 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과연 이것은 가능한 것이며 가능하다면 어떤 댓가를 치뤄야 하는가. 뭐부터 해야 할까 하는 문제는 그렇게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것 같다. 그래서 그문제에 대해 한가지 더 글을 써보고자 한다. 

과학기술과 문화적 가치적 풍조와의 관계에 대해 나는 전에 두개의 글을 쓴적이 있다. 하나는 학자와 오타쿠라는 글이다. ( http://blog.daum.net/irepublic/7887584 ) 나는 여기서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학문을 하게 하라는 말을 했다. 또 하나는 과학과 기술은 다른것이다 라는 글이다. ( http://blog.daum.net/irepublic/7887656 ) 이글에서는 나는 돈을 위해서 과학발전을 논한다는 것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오늘날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거대화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도의 규모를 가진 나라가 과학기술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열심히 노력하면되지 불가능한게 뭐가 있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이세상에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해도 한국 사회는 그걸 위해 엄청난 댓가를 치뤄야 할것이며 나는 그 댓가를 치룰 용의가 한국 사회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설사 그럴 용의가 있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그게 바람직한지 조차 모르겠다. 

몇년전의 일이다. 나는 일본-한국-인도-중국의 신경과학자들이 모여서 여는 국제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거기서 마지막에 가서는 각 나라의 신경과학분야에 투자하는 돈을 비교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은 다른 모든 나라들보다 투자금액이 형편없이 작았다. 일본에 비교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아. 그러니까 우리도 돈을 더 투자하자는 말인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하다. 한국 경제의 규모는 일본경제의 7분의 1쯤으로 말해진다. 

그러니까 여기에 중대한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국가대 국가단위로 '국력'을 비교한다. 그러니까 일본보다 미국보다 중국보다 더 강대한 과학기술을 가진 나라 뭐 이런 것을 꿈꾸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적어도 진지하게 이문제를 생각해 본적이 없는 일반인들은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런날이 올까도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반세기 안에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일본이나 중국이나 미국의 규모와 비슷해지는 날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그냥 절대로 오지 않는다라고 쓸까도 했지만 절대라는 것은 없으므로 약간 단서를 붙였을 뿐이다. 

이말은 경제규모로 보았을때 한국국민은 만약 나라대 나라로 국력비교하듯 과학기술비교할 생각이라면 엄청난 규모의 국가재정을 과학기술에 퍼부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과학선진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차이가 나는 것은 돈뿐이 아니다. 더 차이가 나는것은 이미 투자해 놓은 것 즉 역사와 인력이다. 미국에는 세계의 과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과학의 언어는 이미 영어다. 

이정도만 써도 사실 국가대 국가로 비교해서 과학기술의 선진국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가는 분명해 졌으리라고 본다. 사실 한국이 게놈프로젝트를 수행한다던가 LHC같은 하드론 입자가속기 같은 것을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진국도 돈이 없어서 국제적으로 모여서 그걸 할 정도로 돈이 많이 든다. 신경과학분야도 돈이 많이 드는데 그 돈은 미국의 경우 의료제약산업이 미국에 존재하고 국민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돈을 투자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알츠하이머 연구를 수행한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불가능하다. 

좋다. 국가간의 경계선을 의식하면서 과학기술선진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세계 과학계와 교류하면서 그 일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부분이다. 이것도 만만치 않다. 또 어려워도 노력하자로 빠지지 말자. 문제는 뭘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한국의 대학들에서 영어로 강의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자체의 문화를 미국식으로 바꾸겠다면서 대학조직뿐만 아니라 차마시는 시간에 이르기까지 미국것을 따라하겠다는 시도가 이뤄진다. 이런 시도가 이뤄지는 배경에는 바로 국제과학 사회와 융합되려는 노력이 있다. 독자적으로 뭘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으니까 국제적인 프로젝트에 일원으로 참여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동질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외국에서 보기에 아 이곳은 미국대학이랑 차이가 없군요라고 말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시도는 미국것이라면 끝없이 높게 평가하는 풍조를 만든다. 미국박사학위는 국내박사학위보다 더더욱 큰 가치를 가진것이고 미국이라면 이렇게 한다던가 하는 식의 말이 나오면 그걸로 논의가 끝이다. 

이렇게 해봐야 한국의 대학은 결국 다 미국의 삼류대학이 될뿐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금보다 더더욱 상황이 나빠질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한국에서 공부잘하는 학생들이 서울대 안가고 미국의 대학에 바로 가려고 한다고 한다. 전에도 우수한 학부생들이 미국에 유학갔지만 한국 대학원의 공동화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유학가서 공부하려고 한다. 미국에서 학위받으면 한국으로 오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대학에 돈은 전보다 더 많이 투자하는데 왜 이렇게 될까. 

한마디로 한국은 애플이 아이폰을 만드니까 우리도 만들어 보겠다면서 조잡한 짝퉁 아이폰을 만들어 팔려고 하는 중소기업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누가 짝퉁을 사는가. 중소기업은 나름의 빈틈을 찾아서 자기를 특화시켜야 살길이 열린다. 자기 정체성, 자기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수 있다.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을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노력은 한국대학을 완전히 죽이는 짓이다. 

쓰다보니까 개혁을 반대하고 보수적으로 변화하지 말고 살던대로 살자고 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는데 반드시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변하는 것에도 순서가 있고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강남에 아파트 사두면 부자된다는 이야기듣고 몰려가서 투자하는 개미들처럼 되서는 안된다. 

사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쉽지 않은 처지에 있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문화적 차이가 있다. 사실 한국 사회가 미국이나 유럽사회와 동질성을 획득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릴것이다. 이것은 미국인교수가 한국에 정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 유럽연합이 뭉치듯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과 긴밀한 협력을 할수 있는가 그도 마땅치 않다. 중국도 일본도 한국이 일대일을 말하기에는 한국이 너무 작으며 역사적인 감정문제도 있다. 즉 한중일간의 신뢰문제가 선결되지 않는한 협력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적어도 이공계의 경우 미국 유학박사로 가득하며 일본이나 중국에서 학위하고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한중일간의 협력의 현위치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럼 한국이 과학기술의 선진국이 되려고 하면 뭐 부터 해야 하는가. 그 첫번째는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키우는 것이다. 이게 없으면 절대 한국과학기술 발전못하며 한국출신의 과학자 엔지니어는 불행하다. 이게 뭔가. 이건 그냥 돈이나 명예나 직업따위에 상관없이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며 즐기는 문화적 공동체다. 나는 학자들과 오타쿠라는 글에서 상당부분 이문제를 논했다. 그냥 즐겁게 과학하고 기술할수 있는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게 놔두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위해서는 우선 가치관적 공감대의 확산이 필요하다.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비슷하게 보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지금은 과학이나 기술하면 무조건 돈 이야기한다. 이게 과학과 기술을 죽이는 짓이다. 명동에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이 얼마나 훌룡하냐하면 돈을 현대자동차만큼 번다. 이렇게 말하면 이게 진정한 의미의 종교가 번성하는데 도움이 될까. 한국 만화가가 얼마나 훌룡하냐 하면 일본에서 돈을 이러저러하게 번다라고 말하면 한국에서 만화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까. 사랑앞에서 돈이야기하면 오히려 사랑을 모욕하게 된다. 왜 과학인가 왜 기술인가에 대한 철학적 깊이가 필요하다. 철학하지 못하는 사회속에서 큰 이공계 학생은 큰일하기 어렵다. 가치적 판단이 크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그 학문적 공동체를 넘어서 한국 사회전체가 학문의 가치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너무 당연하지 않냐고 싶게 말하지 말라. 내가 보기엔 한국 사회에는 지식이나 합리적 사고따위는 아무 쓸데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너무나 많다. 4대강 개발 같은 것에 대한 토론회를 한번 보라. 천안함 조사 발표같은 것을 한번보라. 과연 합리적 사고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정말 양심적으로 사실만을 말하는 사회인가? 애초에 어차피 돈이나 권력이 더 중요한 거라면 왜 학문을 위해 돈과 권력이 양보해야 하는가. 그런 사회에서 왜 학문이 발전하겠는가. 

나는 앞에서 즁소기업이 틈새를 찾는 노력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그런 틈새라는 것은 결국 다른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은 미국 사람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쪽에 투자하고 노력하고 남다른 결과를 내놓는 것이다. 똑같은 발상으로는 거대한 외국의 자본과 인력앞에서 우리는 무력할 뿐이다. 결국 여기에도 철학의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을 뽑고 업적을 평가하는 기준을 생각해 보자. 결국 서구의 잡지에 출간하는 수를 따지는 것이 가치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될때 우리는 달라질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만의 것을 찾을수 있을까?

스타크레프트의 인기로 프로스포츠리그라는 것을 만들고 그걸 즐기는 것은 미국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틈새는 이런 부분에서 열린다는 것이다. 한의학이나 유교적 이론을 현대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일따위는 어떨까. 한국어는 유독 색을 표현하는 말들이 다양한데 이것은 한국인의 뇌와 서양인의 뇌에서 어떤 차이가 있기 때문일까? 나의 한계로 당장 여기서 대단한 프로젝트를 내놓을수는 없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철학에서 나오는 가치판단 거기서 나오는 새로운 시각이 있어야 한다. 

물론 한국에서 하던 통상의 투자와 조직개편도 있어야 할것이다. 나는 반드시 영어교육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과학기술 집단이 자기를 잃어버리면 거기에는 돈만 남고 매력이 없다. 돈이라면 선진국이 훨씬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돈돈돈 하면서 과학과 기술을 추구하고 미국과 우리를 구별할수 없는 똑같은 집단으로 만들어 버리면 한국은 결코 과학기술의 선진국이 될수가 없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가치판단이다. 사회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그 전에 과학자 기술자 집단이 내부적인 문화적 반성이 있어야 한다. 즐기는 문화, 자발적인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로보트 만화를 보고 꿈꾸는 사람들, 우주여행의 꿈에 불타는 사람들, 과학적 천재들의 신화에 매료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어릴때 과학이나 공학을 생각하며 가슴두근 거렸던 바로 거기로 돌아가야 희망이있다. (꼭 첨부해 두고 싶은 말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그렇게 되는 것이상으로 과학자, 기술자가 나름의 순수성을 유지하는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하는 것은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 기술자가 즐기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한마디로 한국 과학 기술계는 재미가 없다. 대학도 연구소도 다 재미가 없다. 그저 노동과 경쟁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두뇌들은 유출되거나 과학과 기술분야에서 꿈을 접어 버린다. 어차피 큰 돈버는 것도 아닌데 재미도 없으면 왜 하겠는가.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  

우리사회는 진짜 철학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철학과에 계신분들을 전부 가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상당부분 그저 좁은 자기 전공에 빠져 있을뿐 학부생이나 일반인들에게 도움이 될 철학적 비전을 제시해주지는 못하는 것같다. 엉성하더라도 자기 철학과 자기 논리가 있어야 할터인데 그런 것이 없다. 따라서 정신적 지주가 없는 국민들은 일부는 교회나 성당으로 가고 일부는 절로 간다. 훌룡하신 성직자도 많겠지만 많은 성직자는 엉터리 무당과 다를바가 없어보이는데도 말이다. 그런 정신적 기반으로는 문화적 선두주자가 될수 없고 과학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본은 대학에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토해내라고 말한다. 대학이 철학에 관심이 없다. 그저 생각은 접어두고 열심히 손발을 놀리라고만 하는 느낌이다. 일반국민들은 정신적 기준이 흔들린다. 책이며 과학에 투자하기 보다는 종교에 더 많이 투자를 하는 것같다. 진정한 종교라면 애초에 큰돈이 들일이 없을터인데 말이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과학기술이 꽃필 것인가. 

아주 쉬운 기본을 기억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과학발전 어떻게 일어날수 있을까. 한국 사람들이 과학을 사랑하면 된다. 과학자들이 과학하기가 너무 즐거우면 저절로 신세대는 재미있고 보람찬 곳에 간다. 국민들은 왜 과학을 사랑하는가. 그건 매일의 일상에서, 삶의 철학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시당하고 권력에 눌리는 비합리성이 일상인 나라에서 합리주의나 논리가 높게 평가될리가 없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보지 않는 국민들이 과학의 가치를 깊게 느낄리기 없다. 이런건 전부 다빼고 남의 나라의 화려한 결실을 보면서 부족한 자원가지고 우리도 어떻게 저렇게 열매만 얻을수는 없을까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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