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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유시민의 도봉구민회관 강연을 보고

by 격암(강국진) 2010. 8. 31.

8월 25에 유시민이 도봉구민회관에서 진보정치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동영상으로 보았는데 매우 유익한 강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강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동영상을 보고 싶은 사람은 http://www.handypia.org/mbstop/movie/914344 를 참조하라.) 저로서는 이강연이 단순히 지적 만족을 시켜주거나 재미있는 강연이라는 점을 넘어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강연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강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먼저 이 글서두에서 이미 좋은 강연이었다는 점을 밝혀두었거니와 저는 유시민을 아주 훌룡한 정치인으로 좋은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비판과 평가라는 이유로 대부분 유시민을 평가절하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내용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은 그런 좋은 평가위의 비판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이 강연은 몇가지 아주 중대한 주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먼저 강연은 진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3가지 이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진보정치가 뭔지, 권력기구로서의 국가가 이것을 어떻게 실행할것인지를 논하기 위해 국가라는게 뭔가에 대한 이론들을 역시 3가지 소개합니다. 진보와 국가를 이렇게 소개하고 정리한뒤에 유시민은 스스로 선행국가론이라고 이름붙인 국가의 정의를 이야기하고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진보정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선행국가론이 뭔가를 설명한 끝에 유시민의 강연은 진보의 통합과 연대가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오늘날의 한국은 언제나 그랬기는 했지만 어떤 의미로는 유래없는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래의 집권세력이 이름을 바꿔가며 집권해 오다가 결국 아이엠에프라는 초유의 경제적 난국후에 민주화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 줍니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10년이 있었습니다만 이것도 역시 그다지 장기집권이 되지 못하고, 국민에게도 진보세력에게도 큰 비판을 받으면서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것입니다. 


문제는 불과 몇년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한국정치가 재앙적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들이 결코 박정희의 재림이 될수도 없고 김대중, 노무현을 넘어설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점입니다. 외교, 경제, 환경, 인권, 부패, 한반도 평화등 거의 국가 전영역에서 놀라울정도의 퇴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을 유래없는 혼란이라고 하는 이유는 현 대통령이 인기가 없는 것이 사실이면서도 그렇다고 딱히 대안이 떠오르고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길을 잃은 모양입니다. 혹자는 더욱 좌파적 정권을 세워야 한다고 하고 혹자는 김대중, 노무현의 정통성을 잇는 것을 말하며, 혹자는 그냥 반한나라당 연대면 충분하다고 하고 혹자는 박근혜같은 다른 얼굴을 내세운 한나라당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혼란가운데 출마를 한것은 아니지만 다가올 대통령선거에 나가거나 적어도 영향력은 행사할수 있다고 생각되는 정치인인 유시민이 진보란 무엇이고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범 진보, 민주세력의 연대를 어떻게 말하는가하는 것은 귀기울여 들어보지 않을수 없는 일입니다. 


유시민 강연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는 선행국가론이란 국가는 공동체의 선을 행하는 존재라는 나름의 정의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럼 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나오게 되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1987년의 헌법이 인정한 덕목을 실천하는 것을 선으로 삼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1987년의 헌법이 말하는 7개의 공동체의 선의 덕목 -자유, 평등, 정의, 평화, 환경, 사회적 안전과 인권-을 조목조목 말하면서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일인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국가가 해야 할일인지를 설명합니다. 이는 형식상 마치 대선 공약발표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 강연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유시민이 정의나 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몇달전에 진보에게는 영혼이 없다 ( http://blog.daum.net/irepublic/7887805 ) 라는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이글의 핵심은 진보정치가 사람들을 포용할수 있는 알맹이가 되는 형이상학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법따지고 논리따져서 공동체가 탄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글에서 유시민이 참여정부의 성격에 대해 논한 것을 예로 든뒤 저는 참여정부에서 어떤 철학적 분열 즉 애매한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연결이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어설픈 연합이 그 철학적 가치관적 근원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어설픈 연결이라는 것은 경제자유주의에 근거하는 FTA처럼 그 둘이 충돌할때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나타납니다. 설득이 안되죠. 그러므로 많은 진보주의자는 참여정부에게 우리가 속았다라고 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윤리학, 선, 정의를 말했다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혼이되고 구심력이 되는 점에 대해 유시민이 좀더 신경쓰기 시작했다는 의미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강연만을 놓고 볼때 그 진전이 결정적인 것인지, 진보의 연대가 일어나고 대안이 될수 있는 집단을 탄생시킬 정도의 것인지는 좋게 말해도 알수 없다고 정도밖에는 할수 없겠습니다. 


여기에서 몇가지 점에 저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의 강의가 진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가지는 기왕에 국가를 공동체의 선을 행하는 조직으로 말했으면서도 그 공동체가 한국사회라는 특정공동체의 선인가 하는 데에는 고민이 없으며 더더구나 결국에는 이미 성문화되어 씌여진 1987년의 헌법으로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들이 왜 문제가 되는가 하는 것이 제가 쓰는 이 글의 핵심이며 나아가 진보의 연대가 왜 번번히 실패해 왔으며 이런 식으로는 앞으로도 실패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정의를 묻고 정의를 세우고 그걸 활용하는 이 방식은 바로 과학적 수학적 사고입니다. 과학적 수학적 사고는 엄밀한 정의를 도입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더욱 커다란 논리적 구조물을 쌓아올립니다. 유시민은 매우 논리적 사고를 잘 하는 사람이므로 그의 강연은 이런 논리적 구조가 매우 깨끗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고의 장점과 한계가 가장 잘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번 질문을 던져봅시다. 우리는 왜 진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까요? 우리가 지금 이순간 이자리에서 뭘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고 진보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정의를 고려하고 하나를 정하면 진보는 이제 글자위에 고정화되고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우리가 왜인지 그게 뭔지는 잘모르지만 진보가 좋다고 느낀다고 해봅시다. 이럴때 진보라는 것은 우리가 이순간, 이자리에서 뭘해야 옳은가 뭘해야 좋은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름이고 관념이며 수단입니다. 그런데 진보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를 도입하면 수단과 목적이 뒤집어 지기 쉽습니다. 이제 진보란 좋은것인데 진보란 이러저러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는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가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정의를 고려할수 있으며 특정한 정의 즉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말할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대개 그렇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과학적 수학적 사고는 단지 정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정의를 조합하고 변형시키면서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때문입니다. 말이란 엄밀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이데올로기의 폐해를 말해도 그에 해당하는 변명은 언제나 쉽게 만들어 집니다. 무엇보다 거대한 구조물이 되고만 과학적 사고의 결과물 앞에서 그걸 모두 포기하고 다시 기초부터 쌓아올리자는 제안과 논쟁은 날마다 거대한 아파트를 지었다가 다시 부셨다가 하자는 것과 같은, 상이 부러지도록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 놓은 요리에서 나는 시금치는 안먹으니 시금치는 전부빼라고 말하는 것같은 그런 요구가 됩니다. 결국 많은 에너지와 혼동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거부됩니다. 


이것은 유시민의 악덕이 아닙니다. 실은 한국의 지식인의 대부분이 겪는 문제이며 오히려 유시민의 경우는 논리적 구조물을 아주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쌓아올리기 때문에 그 악이 적게 발현되는 예에 속합니다. 다른 진보적 지식인은 대개 훨씬 더 심합니다. 그들은 도저히 알아들을수도 없이 복잡한 논리적 구조물을 만들어 쏟아내서는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지적해야 할지 알수도 없게되고 그런대로 고정이 되어서는 결국 아주 지엽말단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사실에 대한 논쟁으로 에너지와 시간을 모두 소모시켜 버리고 맙니다. 결국은 합리주의를 가장한 지적독재가 횡횡하는 시스템이 됩니다. 자기 자신도 문제를 느껴도 그걸 포기하고 다시 새로운 시스템으로 나아갈 엄두를 못냅니다. 


이것이 바로 정인보가 1933년에 양명학연론에서 조선의 주자학자들을 비판하면서 말한 그것입니다. ( http://blog.daum.net/irepublic/7887906 ) 정인보가 지적한 문제가 아직도 극복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조선시대가 결코 주자학이외의 학문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끝없이 분열하여 싸우게 된 것처럼 오늘날의 진보주의자들을 분열하게 만듭니다. 


이 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로케트나 고성능 스포츠카처럼 정밀기계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이런 정밀기계를 만드는데 정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강력한 정밀기계는 대참사를 만들 뿐입니다. 정밀기계는 정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서로 의견이 다른 진보주의자들이 합쳐지지 못하는 것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미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근원적 문제는 그들이 나름대로 정밀기계를 만드는 기계공들이라는데 있습니다. 그들이 사안사안마다 가지는 의견은 거대한 정밀기계처럼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서로 얽혀 있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책을 읽고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꼼꼼하게 작은 것 하나라도 틀리지 않도록 훈련받았습니다. 길고 긴 수학계산을 하면서 중간에 부호 한두개 틀린다고 큰일 안날까요? 천만에 전체계산이 한번의 부호의 착오로 끝이 납니다. 정밀기계를 만드는 기계공들은 애초에 타협을 하지 않도록 교육받은 존재들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을 읽으면서 그런 훈련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공들은 서로 분열하고 양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만드는 기계공과 배를 만드는 기계공이 적당히 양보해서 날개달린 배를 만들어도 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사회를 일종의 기계, 논리적 구축물, 시스템으로 볼때 제대로된 합리론자들은 끝없이 싸우고 분열합니다. 하나가 틀린 놈은 다틀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품하나가 빠지나 백개가 빠지나 자동차는 안가기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노무현, 김대중과 이명박, 박정희를 구분하지 못하고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밑에서 작동하는 사고방식입니다. 


따라서 논리적 진보의 연대라는 것은 존재할수 없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되는 것은 그저 단순히 머리로 아는게 아니라 공동의 가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데서 오는 것이고 그럴때 행동의 통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명학에서 말하는 지행일치입니다. 


선을 행하는 국가를 말한 것은 매우 훌룡하지만 과학적 사고의 초극이 없이는 87년헌법을 말하는 선을 행하는 국가란 설사 그것이 혁명적 변화를 통해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금새 조선왕조5백년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걸핏하면 경국대전을 말하면서 조목조목 사소한 것까지 따지느라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모습을 보이는 주자학자들의 국가와 다를바가 없어지게 됩니다. 바로 망하는 나라입니다. 


과학도로서 말하는 여담입니다만 인문학자들은 일반언어의 엄밀성을 과신하는 면이 있습니다. 일반언어로 말하는 사회과학은 수학기호로 풀어내는 물리학과는 다릅니다. 엄밀의 엄밀을 기해봐야 매우 부정확합니다. 거기에 대부분 서구에서 만들고 일본학자들에 의해 번역되면서 만들어진 단어들로 펼쳐지는 논리적 언사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서구의 이론을 어설프게 이해한다는 것에 이르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겠지요.그걸로 복잡한 세상을 고정시켜서 풀어내는 일이란 나무로 백층짜리 건물짓는다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입다만 종종 사람들은 말에 빠지고 사실에 빠져서는 결국 기묘한 말을 잘하고, 재치있게 논지를 흐리는 사람들에게 빠져서 허우적대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더더더 멋진 시스템을 만들고 더더더 거대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앞에서 과학주의를 초극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그것입니다. 제아무리 착한 사람이 멋지게 만든다고 해도 거대한 시스템은 결국 인간을 비인간화할 뿐입니다. 점점 더 시스템에 능숙해진 사람들만 살만하고 나머지는 시스템에 갇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부자유스럽게 됩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자면서 인권보호를 위해 여러가지 끝없이 긴 예외조항을 둔 복잡한 법체계를 만들어 보호하고 보상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시스템을 뚫고 갈수 있는 법률가를 고용한 사람들만 혜택을 보고 대다수 사람들은 그 법의 정글에서 미아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스템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정의가 뭔지, 선이 뭔지에 대한 사색의 깊이가 있는 개인들이 단순한 시스템과 결합한 형태가 가장 이상적입니다. 모든 것을 시스템이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강력한 개입도 필요합니다. 그게 어떤 때인지 전부 논리로 설정해 두려고 하는 노력은 사람들을 부자유스럽게 합니다. 그러므로 윤리가 뭔지아는 다수의 대중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있고서야 그 공동체의 선을 이야기하고 선을 행할 힘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논리와 시스템이전에 존재하는 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쓸데없는 것을 마음에서 지우는 것입니다. 무차별한 관념의 해체가 아닙니다. 소통하면서 필요없는 관념을 해체하고 단순해지는게 필요합니다.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것이나 양명학에서 말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기독교적 전통을 제외한 서구문명이란 반쪽짜리이기 때문에 배금주의가 되고 기계적 사고가 될뿐입니다. 


유시민 강연을 이야기하다가 약간 더 나갔다고 생각되어 여기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윤리, 정신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 그리고 논리적 사고를 존중하고 합리주의를 높이 사되 그 한계도 아는 겸손한 정신이 진정한 합리주의라는 것을 강조하는 태도. 이런 것들이 전제되고 나서야 국민통합이나 새로운 사회개혁이나 논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사람이 한말이 믿음직 스럽지 않다면 적어도 주자학자들이 알맹이빠진 공부만 하다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정인보의 지적을 되새기는 시간이라도 가지는 것이 꼭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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