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7
세상에는 불안하고 무서운 현실을 바꾸기위한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상은 오로지 좋은 사람들이 다수 있을 때만, 오로지 그들이 서로 연결되어있을 때만 좋아진다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첫걸음이며 나머지는 그것에 비하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정치적 리더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실제로 세상이 바뀔 정도의 상태라면, 즉 좋은 사람들이 다수 있고 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라면 정치가라는 것은 그저 부지런한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으며 성실하면 그만이지 머리가 좋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이 위대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원숭이 보다 잘사는 것은 인간들이 대단위 규모로 협동할 수 있기 때문이며 개개인의 능력은 사소한 것입니다.
그럼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그것은 누가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다른 사람에게 배우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이 뭔지는 자기가 고민하고 자기가 깨쳐야 하는 것이며 자기가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뭔가 대단한 일을 해서 세상 사람 다 구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외견하기에 반드시 완벽한 도덕군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앞에있는 것, 자기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가산을 모두 써가면서 사회활동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저 성실히 직장다니며 가정을 돌불 뿐이지만 반드시 누가 누구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사람들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생각하고 조금씩 자기 자리에서 자기 마음에 와닿는 것을 하고, 그리고 손을 뻣쳐서 다른 좋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금씩만 뭔가를 하는 것, 그것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만약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충분히 좋아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직 세상에 충분히 좋은 사람이 많지 않거나 좋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최근에 서울대 조국교수가 한겨례에 기사를 썼는데 그 칼럼의 핵심내용은 현재의 국회의원선거제도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니 정당비례대표를 많이 뽑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하자고 하더군요. 이 분의 의견은 논리적으로는 지당할지 모르나 저는 과연 그런 길이 우리 사회를 좋게 할런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런 변화는 국회가 정상적 기능을 할 때 그 기능을 조금 보정해 줄 때나 하는 것이지 근본적 변화가 요구될 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그런 변화를 어떻게 일으킵니까? 그게 작은 규모의 정당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뒤집으면 한나라당 같은 정당에게는 불리하다는 것인데 왜 그런 정당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권리를 양보하겠습니까? 그렇게 양보심이 넓다면 나라가 이렇게 시끄럽지도 않겠지요.
둘째로 탄핵후폭풍이나 아이엠에프같은 큰 격동을 만나 그런 변화를 가능하게 할 동력이 생겼다고 해도 과연 그런 변화가 만병통치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이야기를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에 대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이긴자가 권력을 독점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보다는 국민의 지지의사가 더욱 고르게 반영되는 내각책임제가 옳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그 나라 국민과 문화에 달린 것입니다. 선거해서 뽑힌 사람이 권력을 가지는 시스템은 책임의 소재가 비교적 분명해 집니다. 무슨 당의 무슨 후보가 서울시장했더니 서울시에 이런 일이 생기더라하면 그 후보가 책임의 소재지요. 반면에 정당이나 집단이 책임을 지는 경우는 언제나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나쁘지 않은데 소수 나쁜 사람들이 물을 흐렸다고 말할 수 있으며 우리는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비례대표제의 강화는 그걸 더더욱 많이 할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정말 깨끗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확립된 사회가 아니라면 국민의 의사를 고르게 반영하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성정당들이 자기들끼리 더욱 더 담합하는 사회가 됩니다. 책임소재가 더 애매해졌으니까요. 물론 자신들의 정당을 키워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럴 리가 없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답은 사람들 가슴 속에 있습니다.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과연 사람들이 책임지는 정치를 할것인지. 더더욱 책임 안지고 애매하게 굴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좋아질 것인지. 결국 변화에는 있기 힘든 큰 동력이 들고 그렇게 변해봐야 좋을지 안 좋을지 모르는 일이 되는 것인데 이걸 하겠다고 온갖 힘을 다 써버려 봐야 되는 것도 없고 보람도 없는 세월만 가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이 흔들리는 가운데에도 한국을 지켜온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노조들일까요? 정당들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촛불집회라는 형태로 집단행동을 보여준 국민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자기가 조직했다고 착각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조직된게 아니라 바로 제가 좋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매개로 행동에 나선 겁니다. 그들이 한국의 중심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한국이 그나마 이 정도 중심을 지키며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쿠데타이상의 폭거로 정권을 차지하고 더더욱 부패한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교육분야에서도 일제고사를 보거나 그 성적을 공개하거나 하는 일로 큰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 논란이 의미없거나 하지 말아야 하거나 일제고사를 보는 것이 좋거나 나쁘거나 하다는 것을 떠나 그 이전에 따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과연 교육이란 분야에 관련된 곳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교사는 좋은 사람인가, 학부형들은 좋은 사람들인가, 그들은 시스템이 어떻게 되었나를 따지기 전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촌지주고 부패하고 학교에서 억지부리고 학생들을 심정적으로는 포기한 선생들, 학부형들이넘치면서, 부끄러운 학부형, 존경할 수 없는 선생님들이 넘치면서 거기서 시스템이 이러저러하면 좋네 나쁘네 하면서 죽자사자 갈라져서 싸우는 것은 말이 안되니까요. 일제고사 보면서도 좋은 진보교육할 수 있습니다. 안 보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대학입시제도 지금대로 유지하면서도 좋은 인재길러낼 수 있습니다. 지금 제도가 좋다는 것도 그걸 바꾸지 말자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제도를 바꿔서 뭔가를 이룩한다는 생각에 빠져서는 안되고 제도란 실제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천천히 바꾸고 제도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보충해도 되며 그것은 언제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도를 자꾸 바꾸면 그걸 진보적으로 바꾸건 보수적으로 바꾸건 사실은 항상 기득권에게 유리합니다. 제도는 대개 바뀌면서 더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조일석에 모든 걸 바꾸면 피해가 너무 크니 기성시스템을 반영해서 예외를 두고 바꿔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제도적 구멍이 생깁니다. 그 구멍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기득권이고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기득권층입니다.
군대문제로 한국에는 이런 저런 특례법이 있었습니다. 학사특례, 석사특례, 박사특례, 유학생에 대한 법률, 그런거 자꾸 바꾸고 예외조항만들어서 좋아지는건 결국 기득권층 자녀밖에는 없습니다. 비교삼아 이스라엘의 경우를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남녀가리지 않고 고등학교졸업하면서 학력평가 시험보고 모두 군대갑니다. 거기도 예외는 있고 잡음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한국보다는 시스템이 간단해 보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 시스템이 더 좋다는 것도 아닙니다. 간단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사람들이 그걸 보완하는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겁니다. 복잡한 맞춤형 시스템 만들겠다고 해봐야 힘만들고 얻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결국 머리좋은 사람들이 자기만 살기좋은 세상을 만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좋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은 두가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좋은 사람이 뭔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 하나는 일종의 감수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길에 쓰러진 아이를 보면 일으켜 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좋은 풍경도 보고 운동도 해서 건강도 유지하고 자기 가족부터 가능하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좋은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것은 연락망을 짠다는 뜻보다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뜻이 강합니다. 무슨 집회에 참석하기 위한 연락망을 짠다거나 무슨 정당지지를 위한 집회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런 저런 정보를 나누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고 말하다가 인연이 되면 그런 걸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게 바자회가 될지도 모르고 그냥 좋아하는 음악 동영상을 가르쳐 주는 것이 될수도 있고, 좋은 책소개가 될 수도 있으며 자녀교육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맛있는 맛집정보나 술에 대한 정보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문화행사나 집회에 대한 정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집을 가꾸거나 텃밭을 가꾸는 것, 요리에 대한 것이거나 자전거 여행에 대한것, 공부에 대한 것, 자연에 대한 것, 이번에 가본 컨서트에 대한 것이나 아내와 오랜만에 나가 본 데이트에 대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걸 이야기하고 나누는 겁니다.
좋은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떤 힘을 행사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모이는 힘이 되는게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미 달성된 상태입니다. 좋은 사람이란 스스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행복을 지킬 힘은 모으면 더욱 커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파하면 좋은 일이 되기에 그렇게 하는 것뿐이지 우리가 조직되면 어떤 권력이 생기니까 그걸로 이 불행한 상황을 타파해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적으로 공허한것은 외부로 채울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들의 연결이 충분히 강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걸보고 우리도 저런 삶의 방식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세상이 기본적으로 충분히 좋다고 해도 그 안에서도 의견이 물론 갈립니다. 그렇게 의견이 갈린 사람들이 다른 정당에서 경쟁하고 논쟁할 수 있습니다. 즉 정상적 상황은 우리가 모두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가운데서 상대방의 선의를 믿는 수준에서 의견 차이를 두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우리쪽의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반대편은 그렇지 않으며 사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더더욱 어떤 사회시스템을 바꾸는 쪽으로 힘을 써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면 앞에서 말한대로 정치적 리더란 성실하고 우직하면 될뿐 그다지 대단한 능력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한 공무원이죠.
이것들은 뻔한 이야기지만 실로 많은 사람들이 뻔하다고 생각해서 쓰레기로 향기로운 진수성찬을 차릴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너도 나도 알게 모르게 어떤 이념, 어떤 시스템에 빠져서 이러저러한 법률, 이러저러한 사회적 개혁을 이루면 이러저러하게 사회가 조직되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걸 추구하는 가운데 더 많은 미움과 더 많은 욕심을 부풀리는 것같습니다. 그리고 더더욱 자기 자신을 내팽겨칩니다. 자기 내부를 들여다 보지 않고 그럼 나는 행복한가 하는 질문은 사라집니다.
그러면서 좋은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자기들이 다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사람은 스스로 되는 것이고 누가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어떻게 누가 좋은 세상을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이 순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자기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조금쯤 더 손을 뻣으려고 노력하는것, 그것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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