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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인사동, 대학로, 진정한 문화.

by 격암(강국진) 2010. 8. 2.

10.8.2

이번에 인사동과 대학로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친지방문차 한국을 짧게 방문했는데 인사동과 대학로에서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사동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던 아내는 흥분된 목소리로 인사동이 참 좋아졌다면서 와서 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사동에 도착해서 거리의 사진을 몇장찍고 가게들을 둘러보면서 아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맘은 금새 인사동의 오늘날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인사동에서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한 민속주점에서 동동주와 파전을 시켜먹으면서 술을 마셨습니다. 민속주점을 가면 대학시절이 생각나기 때문에 외국 생활을 많이 한 저같은 사람은 서양식 주점보다 민속주점이 더 맘에 들게 됩니다. 민속주점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여러가지가 퓨전식으로 이뤄진 곳이었습니다. 라면을 서비스로 준다던지 중식과 일식 안주도 있고 사진을 찍어 벽을 장식하는 등 그 옛날의 민속주점처럼 '전통'만 말하는 주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학로는 그 형식이 뭐가 되건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지는 거리였습니다. 반면에 인사동거리는 내실은 없고 겉멋에만 빠진 사람이나 물정 모르는 외국인을 상대하기 위한 거리로 느껴졌습니다. 이런 차이가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대학로는 실제로 한국인 소비자들을 보고 경쟁하는 거리인 반면 인사동은 한국 문화에 대한 물정에 어두운 외국인이나 이제 한국문화에 대해 이방인이 되어 한국문화를 구경거리로 삼는 현대한국인들을 위한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한복도 입지 않고 자개물건도 쓰지 않으며 한국적인 것에 대해 그다지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흥미삼아 가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즐기는 사람이 없는 문화라는 말은 마치 뜨거운 얼음처럼 자기 모순적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문화지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그건 고작해야 유물이나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장 조선시대적이라고 해서 우리 문화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문화란 요즘 인기 좋다는 파닭, 스타크레프트, 촛불집회 이런게 우리 문화입니다. 

 

제 느낌을 좀 둘러서 표현하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스텐레스 그릇에 총각김치를 썰어넣고 밥을 넣습니다. 그리고 고추장도 넣거나 해서 비비면 그게 참 맛이 좋습니다. 이게 문화의 정수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문화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찬밥과 김치는 그리 구하기 어렵지도 않으니 그걸로 맛을 즐길수 있다면 정말 좋은 문화인것입니다. 

 

일본에는 오차즈께라는 것이 있습니다. 결국 밥에 약간의 고명을 넣고 찻물을 부어 말아먹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요리는 그 안에서 노력함에 따라 고급요리가 될수도있습니다만 그 정수는 쉽고 간단하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시인처럼 시를 쓸수는 없지만 달밤에 평상에 나가 앉거나 베란다에가서 달을 노래한 시인의 시한수를 읽어볼 수 있다면 그것이 훌룡한 문화입니다. 왜냐면 단순히 달아래의 애잔한 연인의 이야기를 생각하거나 선비의 풍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달을 더욱 다르게 즐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우리는 좀더 행복해 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일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행복이란 깊은 내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싸구려 자극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마약이나 불량식품이 그러하듯 결국 우리를 파멸시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훌룡한 문화는 간단해 보여도 그안에 깊은 내실이 있습니다. 흔한 김치조각이라지만 그 김치맛은 오랜 세월 한국인들이 발전시켜온 것입니다. 그 깊은 내실을 쉽고 간단히 즐기는 것이 좋은 문화입니다. 저는 반드시 아주 비싼 돈을 들이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금관이라던가 거대한 동상이나 건축물이 문화가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의 의미와 내실이 그안에 있다면 그것도 훌룡한 문화입니다. 

 

그러나 실은 자기는 마음속으로 그걸 좋아하지도 않고 어떤 깊은 공감도 느끼지 못하면서 이해도 없으면서 장사속만 생각하는 것은 전통적인 것이든 서구적인 것이든 좋은 문화라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그건 내실이 없는 싸구려 불량식품, 마약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복입고 판소리한다고 좋은 한국문화상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서양것을 그럴듯하게 베낀다고 해도 좋은 문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는 이런 의미에서 가짜가 참 많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착도 없으면서 비싼 돈을 주고 집을 사서 집을 자랑의 도구나 투기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집만 그렇습니까? 차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학벌도 그렇습니다. 둘러보면 세상에 가짜만 가득합니다. 

 

저는 10억쯤 하는 차를 타고다닌다고 다 속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그런 차가 가지는 어떤 점에 대한 애점이 있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비싼차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건 가짜문화입니다. 그저 유명한 외국인들이 이거 탄다더라 하면 비싼 돈을 내는 그런 소비죠.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결국은 이름값입니다. 사람들은 대학이란 공간에서 우리는 뭘 배워야 하는가, 뭘 배웠는가에 따라 내실을 생각하지 않는 듯 합니다. 서울대는 서울대다운 교육을 해서 서울대가 아니라 그저 여태까지 공부잘하는 사람이 들어가던 학교여서 서울대입니다. 저는 서울대교육을 여기서 비판하려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실을 따지지 않고 그저 브랜드만 보는 풍조가 계속된다면 대학교육의 내실도 좋아지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건 사는 사람이 질을 보지도 않고 명품브랜드면 무조건 좋아하고 아무리 좋아도 그 상표가 없으면 무시한다면 누가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까. 

 

돈과 시간이 썩어나도록 남아나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지도 못한 사람들이 가짜에 매달려 사는 모습은 매우 안타까운 풍경입니다. 여기 죽기전에 단한끼만 선택해서 먹을수 있는 사형수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사형수가 진짜로 다시 먹고 싶은 것은 고향에서 먹었던 어묵인데 남들이 포아그라 같은 프랑스요리가 좋다고 하더라는 말을 듣고 맛도 모르면서 그걸 시킨다면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BMW와 아반테 혹은 마티즈의 차이는 많은 사람에게는 거의 없습니다. 적어도 그 가격만큼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공짜로 탄다면야 BMW를 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만 마티즈면 충분히 행복할수 있는 사람이 BMW탈돈을 벌기위해 뼈빠지게 노력해서 BMW를 타는 것은 뭐하는 것일까요. BMW 탈만한 사람은 왜 다 BMW를 타야 할까요. 워랜버핏같은 세계적인 부자도 일본 토요타를 몰고 다닌다고 합니다.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가짜문화입니다. 

 

모든 방면에서 그렇게 살기는 어렵지만은 진짜란 스스로의 느낌과 생각을 정성스럽게 표현낸 내실이 있는 것이 진짜입니다. 길거리를 걷는 아가씨들의 옷들을 봅니다. 핫팬티를 입었다고 나쁘다고 말하고 한복을 입었다고 좋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들에게서 어떤 싸구려 복제품의 냄새를 진하게 느낍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소에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입는 옷을 입고 나가서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에 빠져드는 것이 전부인듯한 그런 느낌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기 보다는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같습니다. 즉 흉내내고 싶다는 욕망조차 자기의 것이 아닌것 처럼 느껴집니다. 남들이 이렇게 한다고 하니까 그거에 신경쓰느라 양복입고 비싼 드레스를 사고 돈을 씁니다. 초라한 결혼식을 하면 체면이 구긴다고 해서 자기 1년치 월급쯤 되는 돈을 마구 펑펑 쓰는 일도 많습니다. 온갖 체면문제가 사람들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다 잡아먹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속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김구선생님처럼 옷을 입고 그런 안경을 쓴다고 해서 체 게바라를 가슴에 박고 다닌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니 겉모습만 베끼려는 풍조는 가짜인간만 양산해 냅니다. 거기서 저는 마치 비싼 커피전문점에서 비싼 기자재를 들여놓고 비싼 커피를 쓰되 커피를 만드는 사람은 커피를 좋아하지도 커피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그런 상황이 연상됩니다. 바로 가짜 문화, 관광객용 문화 입니다. 성형열풍도 이런 가운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겉이 같아지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이죠. 세상에 가득한 판박이 미인중의 하나로 소비되는 처지가 되도 상관없다는 것이죠. 

 

돌아오는 길에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문화 체험관을 공항에서 보았습니다. 그 자체가 나쁠 것은 없지만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입맛이 매우 씁니다. 남대문은 불타고 난개발로 옛모습을 가진 것은 다 지워버립니다. 지역의 축제는 그야말로 장사속인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즉 그 지역민이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스스로 좋아하서 하는 축제가 아닙니다. 물건 팔아먹자고 하는 축제지요. 이것도 가짜문화입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이 한국문화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종종 너무 바쁘고 너무 삶에 시달리고 경쟁에 시달리고 돈을 많이 버느라 좋아하는게 없습니다. 돈과 출세에 대한 열정말고는 다 사라진것 같습니다. 잘보지 않던 티브이를 이번에 가서 보니 여전히 드라마속의 인간들은 돈이나 권력이나 유명세를 위해 아둥바둥하는 모습만 나옵니다. 

 

좋아하는 것이 거의 없는데 문화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문화가 없다는 것은 행복도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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