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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가족모임이란 재미없는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11. 12. 12.

2011.12.12

철마다 명절이 오면 저를 짜증나게 하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명절때문에 시달리는 주부들에 대한 기사들입니다. 명절이 여자들에게 쉽다고 생각해서 그런 기사를 짜증나하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때만 되면 마치 복사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내용으로 천편일률적으로 써대는 그 기사들은 어쩌면 그저 명절따위 없고 가족모임따위 안하는게 좋아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그 말을 못해서 자꾸 돌려말하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큰 문제가 한국 사람들은 놀 줄을 모르고 놀 환경은 어떤 면에서 더 나빠져가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합니다. 저같이 놀 줄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렇다는 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권장할만하지 않으나 실상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명절풍경은 이렇습니다. 방마다 가득찬 사람들, 아이들은 종종 흥분해서 시끄럽게 굴고 한쪽에서는 열심히 음식을 만드느라 바쁩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면 한쪽의 남자들은 모여서 그 소음속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티브이 앞에 드러누워 이따금 먹을 것을 먹고 술을 먹고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지내고 하루가 가면 이제 서둘러 자기 집으로 먹을 것을 좀 챙겨서 떠나고 다 떠나고 나면 산처럼 남은 뒤치닥거리에 할머니는 울상을 짓습니다. 

 

많은 가족 모임은 일종의 의무방어전입니다. 즉 이왕 모이는 것 즐겁게 모이겠다는 노력이 없습니다. 그저 늘상 어머니가 밥상차려 오니까 그런가 싶을 뿐 그게 얼마나 힘들고 돈이 들며 무엇보다 다들 즐거운 가하는 점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바쁜 사람들이 재미없는 것은 둘째치고 실상 먹고 마시며 가족모임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표면적으로 즐거워하는 척하는 일이 많을 뿐 번잡하고 뻔한 이야기만 나누는 모임이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말하자면 모두가 꾹참고 얼굴을 한번 본후 아 그래도 얼굴을 봤으니 의무는 다했다는 생각에 위안을 받으며 하루 종일 놀은것 같은데 실상 한구석의 마음은 하루종일 일하고 참기만 한 것처럼 하루가 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명절이나 가족모임은 응당 이럴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마음속에 받아들인 다음에 그 안에서 남자가 일을 하네 안하네 따져봐야 그것은 어쩌면 중요하지만 사소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가족모임은 재미있을 수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다면 너도 나도 그걸 위해 자원봉사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그럼 재미있는 가족모임이란 것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게 문제겠습니다. 

 

1, 사람 자체가 재미없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한국 사람 특히 한국 남자들이 재미없다는 것이 원인입니다. 이 증상의 절정을 달리는 분들은 할아버지들입니다. 이 분들은 도통 잡담이란걸 할 줄 모릅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 할아버지들도 아들딸들이나 손자앞에 가면 말을 못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부랄친구들 정도하고만 격의없이 재미있게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가족모임에서 가장 윗자리에 앉으시는 이분들이 이런 자세가 되면 일단 어려움이 좀 생기게 되는 것이죠.

 

아 그럼 할아버지만 그런가. 사실 그 아들들도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들도 어느정도는 그렇습니다만 정도의 심한 정도는 남자가 훨씬 심합니다. 한국남자들 불쌍합니다. 대부분은 전혀 파티형인간이 아닙니다. 한국의 직장생활문화가 만들어내는 폐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자나오는 술집이 여전히 한국에는 즐비합니다. 가족모임이 아니더라도 한국남자들의 유흥문화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자들은 파전 몇조각 놓고 떠들라고 하면 남자들보다는 훨씬 이런 저런 재미있는 잡담으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명절때 대개 여자들은 일하느라 바쁘죠. 이런 걸 보면 가족모임에서 분위기 좋게 만들려고 하면 차라리 남자들이 요리하고 여자들이 음식 받아먹는 쪽이 좋을 것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는데요. 그건 바로 펜션에 가거나 하는 식으로 야외로 가서 바베큐를 하는 경우죠. 통상 그런 경우는 남자들이 불을 붙이고 고기를 굽고 합니다. 남자들은 차라리 일하면서 몇마디씩할때 더 대화가 잘 풀리고 여자들이 자리에 앉아있으면 그래도 남자들보다는 분위기를 더 화기애애하게 잡아둡니다.

 

핵심은 남자가 여자보다 못하다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내가 좀 재미없다는 것을 자각하는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디어가 있어도 결국 재미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재미없는 사람이란 아주 예측가능한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재미없는 사람이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주변의 도움도 많이 필요합니다. 재미없다는 건 이런 저런 많은 일에 관심사가 있어서 대화를 나눌 수 없기 때문이고 결국 관심사가 극히 좁거나 관심따위는 거의 없는 기계같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사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문제입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 활력이 아무래도 떨어지면 이런 쪽으로 흘러가기 더 쉽습니다. 그래서 세상일에 모두 관심이 많은 어린애들이 노인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보약이 됩니다. 감정적 자극이 너무 없으면 우울증이 되고 말기 때문이죠. 

 

2, 노력 자체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재미없기만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종종 가족모임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볼 수가 없다고 체념하는 일이 많은 것같습니다. 재미없는데도 바꾸질 않습니다. 저는 외국에 살기때문에 여름마다 한국에 들어가곤 하는데요. 그때면 자연스레 형제들 가족이 모여서 가족모임을 가지게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임은 제가 위에서 쓴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졸라서 제가 들어가면 수영장이 딸린 펜션에 가는 것으로 전통을 바꿨습니다. 몇년간은 저항이 있었으나 이제는 아이들도 여름이면 온가족이 그런데 가는 것이 가족의 전통이 된 것으로 기억하고 그걸 기대할 정도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펜션에 가라는 것이 물론 유일한 답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펜션으로 가족 여행을 가보면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남자들이 그래도 좀 더 일을 하게 됩니다. 수영장이 딸린 펜션으로 가면 아이들을 보내놓으면 그것으로 아이들때문에 일어나는 소동은 거의 해결됩니다. 아이들로부터 약간 해방된 어른들은 좋은 풍경속에서 좀 더 쉽게 파티분위기를 가지게 됩니다. 이정도면 재미없는 사람도 조금은 달라질 환경이 주어진 셈입니다.

 

당일치기로 온가족이 가까운 산에 가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는 날은 부모님과 이천에 있는 산의 약수터길을 걸은 날이었습니다. 부모님 사시는 곳이 수원이라 멀지도 않았고 운동을 하고 산림욕을 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처가에 갈 때는 장모님과 처형과 함께 우리부부가 야간 콘서트에 간적도 있었습니다. 모처럼 시내로 나가서 호프집에도 가고 콘서트 구경도 했다면서 다들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집에 있는 건 나쁜 가. 집에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항상은 아니더라도 종종 뭔가를 해야 합니다. 가족 모임이 있으면 아무래도 아이들이 많이 모입니다. 그걸 니들끼리 알아서 놀라고 하기보다 이런 저런 게임을 하는 쪽이 좋습니다. 아내는 예전에 자기 집안에서는 명절때 가족모임이 있으면 공연이 있기도 했다는 군요. 고스톱도 나쁘지는 않지만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되기에는 미흡면이 있고 돈이 관련되면 아무래도 문제의 소지가 좀 있을 수 있죠. 

 

그게 무엇이든 모임을 재미있는 것으로 하려는 노력이 없는 가운데 모임을 가지면 그 모임은 그저 꾹참아야 하는 고통이 되기마련입니다. 남자가 고통이 크건 여자가 고통이 크건 중요한 건 누가 고통을 겪나 이전에 이왕하는 가족모임을 좀 개선해 보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관습과 선입견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입니다. 갑자기 가족모임이 180도 달라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답은 그저 가족모임같은거 쓸데없고 고통스럽기만 하니 관두자는 것이 될것입니다. 이게 진짜 답이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맺는 말

 

옛날에 사람들이 시골에서 살던 때는 평상시 맛있는거 잘 못먹으니 음식만 산처럼 만들어 놓아도 잔치기분은 얼마든지 생겼을 것입니다. 더구나 중요한 건 그게 좁은 아파트도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집 마당이나 집주변에서 놀 것을 찾을 수 있으니 펜션에 놀러간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족모임은 3대가 모이면 상당한 숫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말하자면 파티나 행사입니다. 그리고 파티나 행사에는 주최자가 있어야 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하다면 이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미 나이드셔서 주최자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부모님들이 그저 관습적으로 행사를 열게 됩니다. 그러면 대개는 재미없는 것이죠. 모든 가족모임을 일종의 재미있는 행사라고 생각하고 주최자를 생각하고 고민하여 준비한다면 훨씬 알찬 모임이 될것입니다. 

 

오늘날은 우리가 사는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하던대로만 하다보면 어느새 모이는게 시간낭비고 의무가 되버리고 말 것입니다. 새시대에는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가족모임이란게 원래 재미없는거라고 체념하지 말고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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