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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우리들의 보통 영웅

by 격암(강국진) 2013. 7. 22.

예전에 한국에서 황비홍이란 홍콩영화가 크게 인기가 있었다. 이연걸이 나오는 황비홍에서 주인공이 악당들을 멋지게 무찌르는 장면을 신나고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왕가위 감독이 송혜교도 출연시켰던 일대종사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도 그런 영화다. 브루스 리의 스승으로 유명한 엽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도 여러가지 슈퍼영웅이 등장해서 무술을 선보인다.

 

 

하지만 사실 무술의 고수가 등장한다는 설정이 있을 뿐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서양의 엑스맨이나 스파이더맨같은 영화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만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한껏 대단한 무술의 고수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영화가 단순히 거짓말은 아니라는 정당화를 해볼 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사실 허무하다. 현실에서는 인간의 육체가 내는 힘은 총칼을 당하지못하고, 한사람이 내는 힘은 고작해야 몇명을 당해내지 못한다.

 

나는 중국영화가 단순히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황비홍과 일대종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현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현실의 어떤 면을 어떻게 반영했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협소설에서 나오는 무공의 요결이란 곰곰히 읽어보면 싸우는 무술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의 수련의 이야기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천하무적의 무공이란 결국 천하무적의 이데올로기나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로 해석하자면 한 사람이 천사람 만사람을 당해낸다는 무공의 이야기도 완전히 엉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상의 인물들은 한 개인의 힘으로 보자면야 황비홍에 나오는 이연걸같지 않지만 그들은 분명 수만 수백만 나아가 수억의 운명을 바꾸는 힘을 발휘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문제는 항상 현재가 문제다. 황비홍도 그렇고 일대종사도 그렇고 이런 류의 영화는 일제를 대표로 하는 외세에 저항하고 중국인으로서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듯한 메세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서 무술영웅이 등장하는 그런 영화들은 과거에 대한 픽션이 되면서 동시에 현실의 모순에 대한 대안이 된다. 즉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의 문제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답안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현재에 대한 것이다. 만약 어떤 이야기가 현재와 어떠한 연결고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거기서 의미도 재미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황비홍류의 영화의 문제라면 문제는 현실의 문제를 비현실적 영웅의 출현으로 해결하려는 메세지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들은 비인간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 비하면 너무도 불완전하고 미약한 보통의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힘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중국은 수억명의 사람들을 오랬동안 같이 살게한 저력을 가진 나라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말도 하고 싶다. 그 수억명의 사람들은 대부분 무식하고 극빈에 시달리는 어리석은 백성이었다고. 중국은 결국 깨어있는 시민으로 이룩된 사회를 유지했던 경험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영화를 봐도 내가 느끼는 것은 그들은 아직도 삼국지류의 특별한 영웅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대부분 교육받은 사람들이다. 글자도 모르던 과거와는 다르다. 인터넷 같은 것을 통해 정보가 급속도로 퍼지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아직도 이런 고리타분한 영웅의 이야기는 너무 시대에 뒤진 것이며 우리의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자칫 독재만 불러오기 쉽다.

 

그에 비하면 헐리우드의 슈퍼영웅이 한걸음은 더 나아가고 있다. 슈퍼맨도 배트맨도 스파이더맨도 거기에 등장하는 것은 외로운 개인이다. 그들은 비록 슈퍼영웅이라서 뛰어난 힘을 가졌지만 그 힘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윤리적 갈등도 하는 그런 영웅이다. 그들은 무술고수보다 더 뛰어난 힘을 가졌지만 그래도 어떤 면에서 대중에 더 가까이 내려와 있다. 그들은 완벽무결한 인간에서는 그래도 한걸음정도는 내려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도 보통 인간의 시대를 이야기하기는 이르다. 

 

나에게 친근감을 주는 것, 그리고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한국의 영웅이다. 한국의 영웅은 한마디로 전통적 의미에서 영웅이 아니다. 아주 찌질하다. 괴물을 기억하는가. 괴물에 나오는 괴물과 맞서 싸우는 가족은 모두 찌질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아주 평범한 시민들이고 어떤 슈퍼파워도 없고 엄청난 인격자도 아니다.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형사를 보면 그는 거의 부패경찰에 가깝다. 그런 그가 살인사건을 만나서 그걸 해결하려고 아둥바둥거리게 된다.

 

한국의 영웅은 그럼 왜 싸우는가. 그놈의 정때문에, 쪽팔리니까. 찌질한 인생이고 뭐하나 가진 것은 없지만 정은 외면할 수 없다. 자랑할 만한 인생은 아니지만 이런 건 못참겠다 싶으면 쪽팔려서 싸운다. 그게 아주 중요하다. 대단한 대의 명분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고, 완벽한 인간이었던 것도 아니다. 챙피해서 싸우는게 아니라 쪽팔려서 싸운다. 즉 우리라는 잘난 것없는 인간의 바닥을 보고, 도저히 더 나갈 수 없어서 싸우기 시작한다. 그것이 한국의 영웅의 공식이다.

 

한국영화에서 중국식이나 미국식으로 영웅을 만들어서 성공한 적이 있던가. 나는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한국의 대중은 현명하게도 좋은 답을 보는 눈을 알고 있는 것같다.

 

영화속 세상도 엉망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문제투성이다. 영화에서 영웅을 찾는 것은 그런 현실적 욕망의 표현이다. 서양도 반지의 제왕에서 완벽하지 않은 프로도가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그리지만 왠지 겉멋이 빠지지 않은 것같다. 역시 세상의 왕은 미국이다라는 식의 선민의식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새로나온 슈퍼맨 영화 맨오브스틸의 주인공도 너무 멋있다. 배나오고 못생긴 송강호가 대표하는 한국식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 가보면 1박2일같은 프로그램이나 러닝맨, 그들과 비슷한 예능프로가 인기다. 그들도 보통 인간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내가 말한 영웅의 문제와 이어져있다. 비록 인기연예인이 나오지만 그들은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서 아둥바둥 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은 폼내고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그냥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신을 이야기하는 대신, 신을 그림에 그리는 대신, 노동자를 그리고 노동자를 소설로 쓸때 우리는 그것을 문화적 혁명으로 말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현실의 우리는 송강호에 가깝다. 몸매는 엉망이고 얼굴도 그저 그렇고 종종 법도 어기고 윤리도 외면한다. 그러나 우리가 최후의 쪽팔림을 잊지 않는다면 세상에 희망은 있는거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의 영웅이 좋다. 하긴 기껏 답 잘내놓고 태왕사신기나 주몽식으로 변질도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한국도 뭐가 답인지 확신은 없는 것같기는 하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영웅이 누구인지 잊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결국 가장 감동적인 한류의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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