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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낭비된 시간

by 격암(강국진) 2010. 8. 4.

돌아보면 나는 많은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날마다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과연 낭비된 시간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나는 나의 블로그에 글을 쓴다. 이건 시간낭비가 아닐까? 전자오락을 하거나 만화를 보는 것은 시간낭비인가? 어려운 전공책이나 논문이나 신문이나 인문학책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닌가? 

 

나는 어떤 기괴한 논리를 펴려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 와서 직장의 일을 성실히 하고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운동을 하고 좋은 책을 읽는 시간들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문득문득 다시 과연 이러한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한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이다. 

 

사람이 산중에 앉아서 바위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평생을 제 자리에서 살다가 죽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낭비된 것일까?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러가지 명성을 얻고 여러가지 쾌락을 누리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 생활은 낭비되지 않은 인생이란 말인가? 

 

시간낭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약용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정약용선생은 귀양살이를 하면서 비로소 자신은 자기를 붙잡을 수가 있었다고 말한다. 자기라는 놈은 너무나 달아나기를 잘해서 미인을 보거나 명예를 높이는 일을 보면 끊없이 도망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급제해보겠다고 뛰어다니고 조정에 나아가 뭘 해보겠다고 뛰어다니며 정신없었지만 그는 귀양살이를 하러와서 한군데에 머물고서야 비로소 자기를 잡을 수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자기를 잡는다는 것의 의미를 세세히 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말속에는 느껴지는 것이 있다. 우리가 '당연한' 것 안에서 빨리 빨리 살아봐야 때로는 인생전체가 낭비된 듯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 개인으로 말한다면 이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에게 답하는 글을 쓰는 동안 물질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얻은 것은 없다. 아마 잃은것도 있을 것이다. 내적인 생각을 공개한다는 것은 언제나 적으나 크나 어떤 위험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지인들이 와서 내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에 대한 사적인 정보를 얻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면서도 나는 블로그를 쓰고 출판되지도 않을 것을 책모양으로 정리하고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첫번째 독자로서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내 자신이 첫번째 독자로 쓰는 것이다. 즉 나도 궁금해서 쓴다. 예를 들어 이글은 과연 낭비된 시간이란 무엇인가가 스스로 궁금해서 쓰고 있다. 잡문이라고 해도 한권정도의 분량을 쓴다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의 소모가 요구된다. 가치판단에 대한 연작에세이를 쓰고 다듬으면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걸 써두지 않고 잊어버리면 평생 후회가 될것같다고. 그래서 썼다. 먼훗날 내가 쓴글들을 읽어보면서 겨우 이걸 쓰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는가하고 생각하지도 모른다. 이렇게 처박혀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을 위해 시간을 썼는가 하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낭비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쓰지 않았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의미에서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유한하다. 내 직업적 경력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이 유한하듯이 아내와의 시간, 어린 아이들과의 시간도 무한정있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언제나 젊지 않으며 아이들은 자라면 떠날 것이다. 훗날의 아내와 훗날의 자식들도 물론 그나름대로의 가치와 존재감을 가질테지만 그들은 결코 지금의 아내와 지금의 아이들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망가진 유년기는 성공한 중년기로 대체될 수 없다. 가버린 것은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 

 

소중한 시간들이다.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충실하게 보낸 유년기나 청년기란 무엇일까. 열심히 일한 것? 열심히 논 것? 둘다를 다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답이 되는 것같지 않다.

 

그러고 보면 낭비된 시간 혹은 충실하게 보낸 시간이 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어떤 것이건 간에 이 질문의 한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분은 혹시 시간을 낭비하는 고양이나 개 혹은 바위나 나무를 아는가? 해변가에서 한가롭게 누워있는 거북이게 다가가 너는 왜 이렇게 시간낭비를 하고 있냐고 묻는 사람을 아는가? 세상의 수많은 불가사리중에서 충실한 시간을 보낸 불가사리와 시간을 낭비해버린 불가사리를 구분할수 있는가? 산중턱에 서서 세상을 보며 꼼짝도 앉고 살아가는 소나무에게 너의 시간은 온통 낭비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아마 죄수일 것이다. 그 사람은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 형기를 보내고 있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형기가 줄어든다. 군복무를 하는 남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군복무는 답답하지만 때로는 알차고 고민없는 생활이 된다. 군복무를 하지 않을때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내면 그것은 낭비한 하루였다. 그러나 군복무를 하는 동안은 그저 하루가 가면 그것만큼 나는 해낸것이 있다. 하루분의 병역을 마친것이다. 거기에는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에 대한 해방감이 있다.  

 

인간만이 시간을 낭비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현대인들이 그런 것같다. 옛날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이웃들과 함께 농사짓고 결혼하고 아이낳고 살던 시대에는 시간을 낭비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물론 힘겨운 농사일이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시대는 변화가 적은 시대였다. 즉 작년과 올해가 10년전과 지금이 똑같다고 해도 아무도 그 10년을 '낭비된'시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시간은 24절기가 반복되듯이 순환되었고 매년 같은 때가 오면 같은 것을 즐기고 살아갈 뿐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는 말을 끊없이 듣는다. 공부해라, 책읽어라. 일해라, 운동해라, 가정에 충실해라. 생각하라, 성장하라, 어제와 같아서는 안된다, 난 하루에 3시간밖에 자지 않고 산다, 밥먹을때와 버스타는 짜투리 시간도 활용해야 한다 등등. 옛날이라고 해서 비슷한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날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로 세상이 가득차 있다. 

 

욕심이 없거나 야망이 없으면 시간은 시간으로 남고 욕심이 크고 야망이 높으면 모든 시간은 다 낭비되고 있는 시간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욕심을 내고 야망을 가지는 것은 인간 뿐이기 때문에 그리고 과거에 비하면 오늘날의 인간들이 훨씬 야망에 불타기때문에 시간낭비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는 것같다. 

 

이렇게 보면 뒤집어서 질문하는 것이 가능하다. 야망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야망때문에 인생을 통째로 보내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부를수 없는 것일까. 내가 일찌기 내적인 모순을 느끼고 세상을 혼란되게 느낀 것은 가치의 문제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시간의 문제도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우리는 뭘하며 살아야 하는가. 내가 가치판단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쓰지 않으면 훗날 후회할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능하면 노년에 이르르고 보니 인생전체가 낭비된 것으로 생각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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