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13
미국 맨하탄에 있었을때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이 20세기초에 비교해서 실질적으로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볼 수도 있다는 기사를 봤다. 생활수준이란 물가처럼, 아니 물가이상으로 정의에 따른 애매함이 있을 수 있는 말이므로 이런 기사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까지 기억나는 것을 보면 기사의 내용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바 그 기사의 핵심적 내용은 이렇다. 예전에는 가족내부에서 사적으로 해결되던 것이 대량생산되는 상품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질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엄마의 파이, 아빠가 수리하고 관리하는 집은 사라지고 슈퍼마켓의 싸구려 파이, 닭장같은 아파트가 그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의구심이 들지 모른다. 물론 수제 음식이 좋겠지만 대량생산되는 것,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이 가격대비로 훨씬 훌룡하지 않은가? 아파트가 편하고 좋지 않은가 관리하기 힘든 집이 뭐가 좋은가. 생활수준이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내가 살던 맨하탄에서 나는 그것을 느꼈다. 영국은 더하지만 맨하탄에는 50년쯤 된 건물이 흔하다. 그 건물들은 수리해서 쓰기도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낡아서 사실 시끄럽고 난방은 비효율적이며 공간배치 같은 것도 낭비가 많다. 그런데 나는 왜 거기에 살고 있었을까? 그건 주거비가 엄청나게 비싼 맨하탄에서 그나마 그곳이 싼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그 싼 아파트는 왜 생겨났을까? 바로 건물이 낡아지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여기서나 나는 이 논의에 한가지 원칙 즉 자본주의하에서 봉급에 대한 시장원리의 원칙을 첨부하고 싶다. 내가 말하는 봉급에 대한 시장원리란 간단한 것이다. 100만원주면 그 일을 해줄 사람이 있다면 봉급은 100만원이 된다는 것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고용주나 회사는 돈을 더벌기 바라니까 100만원만 주면 그 일을 해줄 사람이 있다면 100만원이 보수가 된다. 더 줄 이유가 없다. 최저임금같은 기준이 있지만 그것만 넘기면 된다. 그런데 100만원이면 그 일을 해주겠다는 사람은 뭘 근거로 그렇게 하는 것일까. 만약 100만원을 받아서는 생계유지가 안된다면 그렇게 할수가 없다. 생계유지가 된다면? 그럼 경쟁의 원칙에 따라 누군가가 그 돈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생계유지에 중요한 한 부분이 바로 주거비다.
앞의 이야기와 이걸 하나로 뭉쳐보자. 질은 저질이지만 아파트와 식료품등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중에 싼 것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그럼 수입이 떨어진다. 그 저질의 생필품으로 어쨌든 생존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질의 식품, 저질의 의류, 저질의 집이 나오면 그에 맞춰서 수입이 줄고 사람들의 생활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미국의 다른 곳에서보다 월급이 세다. 왜냐면 워낙 생활비가 비싸서 그 월급을 안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뉴욕에 그나마 낡고 저질이라서 월세가 싼 아파트가 없었다면 그 월급은 더더욱 높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니까 그렇다.
이건 일종의 역설이다. 싼 아파트는 저소득층의 지출을 줄여주는 고마운 존재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싼 아파트가 지출뿐만 아니라 수입도 줄인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생활수준의 하락뿐이다. 이런 효과를 싸구려 효과라고 불러보자. 싸구려 음식, 싸구려 아파트가 나오기 전에 비하면 많은 것들이 더 싸졌다. 질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교할 수 없이 값싸게 많은 것을 구할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결과 말하자면 훨씬 저질의 장소에서 살고, 훨씬 저질의 음식을 먹고, 훨씬 저질의 제품들을 소비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가 되었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서 느끼는 것중의 하나가 이 싸구려 효과다. 미국에는 싸구려가 참 많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쓰지 않을 것같은 낡은 가전모델을 미국에서는 많이 쓴다. 미국의 평균소득이 한국보다 높기때문에 미국이 부유하다고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음식도 미국에는 아주 풍부하다. 칼로리만 생각하면 미국에선 굶어죽을 일이 없다. 워낙 음식이 넘친다. 하지만 그 음식이 대개 싸구려다. 미국에선 가난한 사람이 뚱뚱하다. 이는 이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싸구려 효과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기술과 산업발전으로 편리해진 것, 생활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싸구려 효과가 뭔가의 이유로 훨씬 커지면 산업은 발전하고 나라는 부자가 되는데 돌아보면 오히려 생활의 질은 엉망이 되어 싸구려 옷, 싸구려 음식, 싸구려 거주에 살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많은 고층 아파트들을 이미 건설했다. 그 아파트들은 재건축도 안될만큼 높기 때문에 싸구려 주거지로 변해갈 운명을 가지고 있다. 당장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고 해도 엄청나게 지어서 아파트 단지 아닌곳이 없다시피한 서울의 풍경을 보면 과연 20년쯤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세기에는 힘들어도 못배운 노동자들이 자기 자식들을 하나도 아니고 몇이나 대학에 보내서 교육시키고 전문직종으로 취업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요즘은 어떤가. 그게 안된다. 요즘 대학생들은 한가했던 20세기의 대학생들을 부러워 할 것이다. 그때는 그때나름의 시대의 아픔이 있었지만 분명 학생들은 나름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요즘은 일찌감치 알바와 취업공부만 바쁘지 않은가?
많은 학생들은 부모가 학비를 내줄 수 없어서 학비를 융자내서 다닌다. 닭장같은 고시촌방이라고 해도 싸구려 월세방에 살면서 출퇴근 하는게 가능하면 딱 그렇게 사는 사람이 생존가능한 수준에서 월급은 고정된다. 더 줄 이유가 없다. 그 돈이면 생존가능하니 그 돈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이 시장에 있기 때문이다. 결혼할 돈이 없고 애를 키울 여유가 없어도 생존은 할 수가 있다. 그럼 딱 그 수준에서 보수가 결정된다. 결혼 안하고 애를 안 키워도 살아는 있을 수 있다. 싸구려 효과다.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나오면 지출이 주는 만큼 수입도 줄고 결국 생활의 질만 나빠진다.
누군가가 뭔가를 먹는 즐거움은 박탈되지만 천 원짜리 알약하나 먹으면 한 달동안 밥 안먹고 살 수 있는 알약을 개발한다면 어떨까. 식료품비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면 우리는 식료품비를 절약해서 부자가 될까? 싸구려효과 이론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실질 임금은 물가가 오르는데도 오르지 않고 결국 수입이 줄어서 많은 사람들이 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세상이 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싸구려 중국산 물건들이 한국에 대거 진출해서 우린 싸게 많은 것을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신 많은 경우 생활의 질은 떨어졌다. 싸구려 중국제품때문에 돈을 아꼈다고? 싸구려 효과를 생각하면 그건 꼭 그렇지 않다.
이런 악순환을 탈출하는 방법은 없을까? 쉽지는 않다. 기업가나 법인들은 투자대비 소득을 증가시키고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은 당연한거 아니냐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기꺼이 만원만 주면 신발을 하나 주겠다는데 당신은 십만원주고 구입할 것인가? 그러므로 세상이 정말 자본주의 원리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있다면 세상은 발전하면서 거꾸로 끔찍해 지는 길을 걷기 쉽다. 자본주의 논리를 넘어설 수 있어야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가 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생존만 가능하게 하는 저질 물건을 만들기가 더 쉬워졌다. 우리가 우리의 삶 그 자체를, 그 삶의 질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바쁘기만 할 뿐 점점 힘들게 살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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