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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자본주의와 노동 그리고 자기찾기

돈이란 무엇인가.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는중에)

by 격암(강국진) 2010. 10. 4.

10.10.4

주말부터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좀 바빠져서 진도가 잘안나가고 있습니다만 칼폴라니의 책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책을 다읽고 생각을 정리하면 또 독후감을 쓸까 생각합니다만 한두가지 생각을 여기에 적어놓으려고 합니다. 

 

돈이란 무엇인가

 

돈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가지 물건과 노동을 빠르게 교환할수 있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꽃이며 언어입니다. 우리는 돈이 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이퍼 인플레이션 같은 엄청난 일이 벌어지면 돈이 휴지가 됩니다. 만퍼센트 1조배 인플레이션 같은 이야기는 돈이 휴지가 된다는 이야기지요. 그럼 돈이 뭔지 알기 어렵게 됩니다. 아는 것같지만 모르는게 돈이랄까요. 돈을 중앙은행에서 마구 찍어 낼수 있다면 돈이란 휴지입니다. 그저 종이에 인쇄를 했다는 의미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내가 휴지를 내고 물건을 받고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할 수 있겠습니까. 

 

돈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 처음에는 돈은 금이나 은같은 물건이었거나 혹은 그런 물건과 교환해 준다는 교환증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금화고 은화이며 또한 금본위제인 것이죠. 금본위제가 실시되던 시대에는 각 나라의 중앙은행은 자신들이 발행하는 돈값어치 만큼의 금을 비축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가지 질문이 여기서 발생합니다. 하나는 왜 금과 은이냐는 것 또하나는 지금은 금본위제가 무너졌는데 그럼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돈이 금이나 은이 아니고 물이라면 어떨까요? 그럼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은 시중에 돈이 넘쳐날 것이고 가뭄이 들면 돈이 아주 귀해질것입니다. 물이 돈으로 쓰이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그 가치가 일정하질 않다는 것입니다. 

 

가치! 이것은 너무나 친숙한 단어이면서 잊혀진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본래 가치의 척도인 것이죠. 사과 한상자가 만원이고 귤 한상자가 만원이라면 전에는 사과와 귤을 물물교환했는데 중간에 가치의 척도인 돈이 등장해서 사과 한상자를 만원과 바꾸고 만원이 다시 귤로 바뀌는 시스템이 된것이죠.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물건과 노동을 교환하기가 아주 손쉬워 집니다. 그래서 사회적 분업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거대한 자본주의문명이 발전하는 것이죠. 

 

돈의 문제점. 

 

그런데 사람이 시장에 매몰되면서 사람들은 돈이 뭔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돈이라는 것은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이라는 것, 즉 가치가 먼저고 돈이 나중이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가치에 기반하지 않은 가격은 거품이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여기 한송이 튤립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에서 이걸 10억이라고 말합니다. 백억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회의 사람들이 수요와 공급곡선이 어쩌니 하는 말만 떠들고 있다는 것은 바로 돈이 뭔지를 망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은 가치를 재는 척도중의 하나입니다. 실질가치가 없이 돈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질 못해서 자본주의가 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썩어가는 18평짜리 아파트를 십억이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자본주의의 실패입니다. 사람들이 돈이 뭔지를 망각했다는 뜻입니다.  

 

사실은 가치를 돈으로 나타내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돈은 1차원적인 것이고 거기에는 복잡한 질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숫자하나입니다. 반면에 본래의 가치라는 것은 굉장히 다면적인 것이며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가치가 생활의 중심이 되고 돈이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자본주의아래에서 사람들은 이제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가치가 있어서 높은 가격이 붙는다가 아니라 높은 가격이 붙어있으므로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죠. 더구나 같은 가격이면 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에 이르르면 개인적 인격의 말살이 일어납니다. 

 

여기 열심히 만든 의자가 하나있다고 해봅시다. '이 의자의 가치는 10만원'이라는 말은 과연 이 의자의 모든 가치를 다 나타내고 있는 걸까요? 엉터리로 만든 의자라도 그것이 장인생활 첫번째 작품이라면 그 장인에게는 무한한 가치를 가질지 모릅니다. 의자는 피곤한 사람에게는 더욱 소중한 물건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가치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다릅니다. 그런데 이 의자는 10만원이라고 하면 이 의자의 가치는 고정됩니다. 가격도 물론 시간에 따라 변합니다만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가격이 됩니다. 

 

내가 백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나는 높은 가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사고 방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해 이런 식으로 질문합니다. 연봉이 얼마래, 아파트는 얼마짜리 혹은 강남의 몇평? 차는 얼마짜리. 제 아무리 거지같아보이는 옷이나 자동차나 장신구도 거기에 십억하고 가격표가 떡 붙어있으면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그런 모습입니다. 사람이 월급 백만원에 싸구려 옷, 싸구려 집에 살고 있는데도 그것이 양질의 삶일 수 있다는 것은 납득 할 수 없습니다. 두집이 월급이 같고 사는 아파트의 가격도 같다면 그 두집의 삶의 질은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세부사항에 대해 질문이 없습니다. 아빠는 성격이 어떤지, 주말에는 그 집은 뭘하면서 보내는지, 집안 장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 집주변에는 채마밭이 있더라던지 없더라던지 같은 것은 삶의 질이나 가치와 무관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다시 금본위제로 돌아가봅시다. 이제는 금본위제도 없어졌습니다. 그럼 도대체 돈이란 무엇일까요? 돈이란 가치의 측정인데 그 가치는 누가 측정하는 것일까요? 이제 돈이라는 것은 그 사회에 있는 사람들이 합의한 신용가치의 총합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통 현실적이 되라는 말을 할때 항상 고려의 대상이 되는 돈이라는게 실은 매우 추상적인 신용가치라는 평가에 따라 창조되고 없어집니다. 

 

그런데 어떤 사회는 너무 작거나 사회가 불안하거나 그 사회가 건강하질 못해서 스스로 가치판단을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의 신용가치를 평가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세상에는 달러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돈의 가치는 달러와의 교환비율로 정해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의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라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세계사회가 미국사회의 정신적 건강함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유럽의 소국들의 돈들도 환전이 잘 만되는데 한국돈은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가 한국사회의 정신적 건강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제 금본위제도 아닌 시대에 투기바람이 불면 우 몰려가는 국민들만 있다면 그 사회는 자생적 경제를 운영할 능력이 없습니다. 항상 권위와 신용을 외국에서 빌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외국이 과연 낯선 우리의 것들을 높은 가치로 인정할까요? 이것은 스스로 식민지가 되는 길입니다. 실컷 일해서 돈좀 모았나 하면 미국에서 어깨한번 흔들면 돈이 전부 몰려나갑니다. 

 

좋은 세상은 오로지 한가지 방법만으로 만들어 집니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깨어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돈이 뭔지, 실체가 뭔지, 인생이 뭔지, 합리적이란게 뭔지, 교육이란게 뭔지,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남의 권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파고들어 배우고 깨달은 사람들이 좋은 세상의 바탕입니다. 어떤 천재하나 성인하나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돈이란 본래 가치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림자만 보고 살면 인생이 불안해 집니다. 가치를 붙잡고 살아야 인생이 안정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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