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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자본주의와 노동 그리고 자기찾기

사회적 신용의 붕괴, 사기꾼이나 강도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by 격암(강국진) 2011. 1. 24.

11.1.24

요즘 세상은 신용사회입니다. 금본위제도 없는 지금 돈의 총합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신용의 총합입니다.  우리가 쓰고 받는 돈이란 결국 어음이나 채권같은 것이니까요. 이런 신용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로 말해지는 것이 폰지 사기범인데 있지도 않은 사업모델을 있다고 말하고 돈을 빌리고 다시 남의 돈을 빌려서 처음 투자자에게 수익을 안겨줍니다. 그렇게 해서 신용이 허공에서 창출되는 것이죠. 이렇게 더 큰 신용을 바탕으로 더 많은 투자자를 모으고 더 많은 신용이 창출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엄청난 양의 돈이 창출됩니다. 사람들은 기뻐하면서 흥청망청 돈을 씁니다. 그러다가 진실이 알려지는 순간 그 엄청난 신용이 즉 그 돈이  순식간에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이죠. 

 

정도의 문제일 뿐 일반적인 사업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입니다. 사기와 양심적인 사업활동간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사업이 성공했을 때 그 열매는 내가 다먹고 그게 실패하면 그 위험부담은 다른 사람들이 다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가르켜 유능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결국 다르게 말하면 사업이 망해도 나는 안 망하도록 해놓은 다음 있지도 않은 사업모델에 주변사람들이 투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사업에 대한 양심적이고 사실적 설명을 하냐 안하냐가 핵심이겠습니다만 이 부분은 회색지대입니다. 투자유치하고 돈빌리면서 내 사업 사실 망할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으며 자기가 꿈꾸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말하자면 광고를 하는 사람이 이 제품 사실은 별로 안좋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것이죠. 물론 우리는 그래서 투자는 투자한 사람의 책임이다라는 말로 정리해 버릴 수 있으며 이것도 분명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사기범에게 사기를 당해도 그건 완전히 사기당한 사람의 잘못이 되겠죠. 

 

최근 저는 한 마음 약한 사람의 한탄을 들어주었습니다. 개인적이라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제가 그 한탄속에서 느낀 것은 경제문제에만 피라미드 사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상적 사회관계에서의 피라미드 사기가 더욱 심각합니다. 사법제도도 없는 무법지대라고 말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돕고 믿으며 살기때문에 원숭이보다 잘 사는것입니다. 혼자의 힘으로 알몸으로 야생에 팽겨쳐지면 대부분의 현대인은 생존도 못합니다. 돈이라는 것을 발명하고 사회적 협동을 극대화 시킨것은 인간의 큰 발명중의 하나입니다만 인간사이의 정이나 사회관계로의 의무와 권한도 말하자면 신용이고 돈입니다. 돈이란 가치를 교환하는 수단이고 정이나 사회관계로의 의무도 그러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분명 인간은 포유류로서 댓가를 바라지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부모자식관계의 예를 따지고 관례를 만드는 것은 어느정도 서로 다른 세대가 협력하고 그래서 모두 잘살게 만드는 시스템을 도입한 면도 있습니다. 한국이 극빈국가에서 이만큼이라도 잘살게 된 것에서도 유교적 가족문화가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슨일이든 해야 한다고 믿고 실천하는 게 모든 민족에서 당연한게 아닙니다. 다른 가난한 나라는 그게 안됩니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교육을 못받고 노동의 질이 열악하니까 발전이 안되지요. 우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3류 5류일때도 국민들은 열심히 자식교육시켜서 노동의질이 국가의 경제수준을 압도하니까 나라가 부유해 지는 것입니다. 흔히 선전할 때 박정희가 어쩌고 정주영의 결단이 어쩌고 하지만 그들이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나 에콰도르에 가서 똑같은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결과는 같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들이 무리한 것도 해내는 능력이 있으니까 한국에 기적적 경제성장이 있는 것이고 그 바탕에는 가족간의 세대간의 신뢰가 있는 것이며 그 바탕에는 유교적 문화가 만들어낸 의무와 권한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극빈국 국가라고 부모가 자식 생각 안하겠습니까. 문화가 다른 것입니다. 물론 그와 같은 문화가 극빈국가를 지금정도로 만들어줄수는 있지만 과연 여기서 선진국으로 변해가는것에 충분한가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회관계를 맺습니다. 부모와 자식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스승과 제자로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선배와 후배로 고용자와 피고용자로 친구로 동네 아는 형과 동생으로 말입니다. 그런 관계들은 흔히 이익과는 무관한 것으로 파악되고 강조되며 그것은 그것대로 옳은 것이며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만 또한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세상 좀 살아본 사람은 아주 잘압니다. 

 

이명박이나 유시민이나 박근혜나 이건희같은 사람하고 어릴적 옆집 살면서 친해져서 전화하면 뭐든지 대답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과연 이 사람의 친분이 이익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오히려 반대죠. 사회관계를 잘맺어야 세상을 쉽게 산다면서 사교법, 처세술을 가르치는 책도 세상에 많습니다. 

 

사회관계의 피라미드 사기란 이런 것입니다. 적당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해 허풍을 쳐서 신용을 창출하는 것이죠. 아들이 어머니에게 허풍을 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허풍을 치고 친구가 친구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상사가 직장부하직원에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데에는 두가지 방식이 흔히 쓰입니다. 하나는 단기적으로 실제로 신용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아들을 보면서 부모는 이 아들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부모의 인생에 미치는 위험도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친근하게 구는 직장상사를 보면서 부하직원은 이 사람이 내 인생에 미치는 위험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이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하나는 없는데 있는 척하는 것입니다. 비싼 옷이나 큰 아파트나 큰 자동차로 나는 언제나 신용을 돌려줄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인체 합니다. 그렇게 보이도록 만드는 법이 처세술의 하나로 널리 가르쳐집니다. 검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사장이되면 그 타이틀로 실제보다 더 많은 신용을 창출합니다. '한끗발 차이'로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슈퍼맨이 된 것처럼 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두사람밖에 없다면 서로 좀 허풍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 아주 많은 사람이 있고 그래서 관계와 관계를 타고 신용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허풍으로 만들어낸 신용은 부동산거품이 그렇고 폰지사기가 그렇듯이 실제로 돈으로 능력으로 만들어 집니다. 이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저 사람에게 연결해서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저 사람은 내가 그 신용을 언젠가는 돌려줄 수 있을 것을 믿기 때문에 나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죠. 

 

이 일이 반복되면 결국 카드돌려막기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한끗발 차이'가 불고 불어서 실제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일도 일상적으로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관계맺고 신용을 끌어다쓰는 것 자체를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가치는 허공에서 창출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마구 신용을 끌어다 쓴다는 것은 이 사회 어딘가에서는 신용을 빌려주기만 하고 언제가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는 말없고 착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가 자식이 출세하면 갚을거라고 생각하면서 희생하는 부모님이 그런 분이며 교수나 학생이 혹은 상사나 부하직원 중에 저 사람이 이렇게 내가 도와주면 잊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부모세대를 보면서 설마 우리 부모세대가 잔뜩 빚내서 자기들끼리 잘먹고 우리보고 갚으라고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자식세대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와 그런 사람들에게서 빌려오는 빚으로 잘나가면서 자신이 대단해서 잘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결국 무슨일이 벌어질까요. 파국이 오는 것이죠. 바로 사회적 신용의 붕괴입니다. 뉴스같은데서 패륜적 행위를 한 무슨 무슨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모 유산을 빼앗자고 필리핀에 부모를 버리고 오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것이죠. 상사를 믿고 살았지만 결국 배신당했다더라, 그 교수가 학생에게 당했다더라 그 학생이 교수에게 당했다더라, 요즘 거지는 뒷골목에서 벤츠탄다더라, 식당들중에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사람 하나도 없다더라 ... 끝이 없습니다. 결국 악성중에 악성 신용을 끌어다 쓴 사람들이 파국을 일으키면 은행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은행에서 인출사태가 벌어지듯이 신용의 붕괴는 더욱 촉진됩니다. 

 

남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그저 모여만 있는 것은 사회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로 신용하고 살아야 사회인 것이죠. 한국 사람이 있다고 한국 사회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서로 신용하면서 살아야 한국 사회라는게 실존하는 것이죠. 사회적 신용의 붕괴는 한국사회자체의 붕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슨 뻥들을 그렇게 많이 치면서 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좀 잘나가는 사람에게 줄대서 로또맞듯이 공짜로 잘나가보려는 심리는 왜 그리 높은지 모르겠습니다. 한없이 자기를 부풀리려고 하고 그게 안되면 다른 사람을 누르려고 하고 서로 서로 회장님, 사모님, 박사님, 사장님하고 호칭 인플레를 만들어 뻥튀기를 합니다. 한껏 가슴을 부풀려서 자신을 크게 보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넘어가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기에 책임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티브이속의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이야기가 세상에 굴러다닙니다. 

 

그 안에 있으면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라는 생각에 그게 잘 안보입니다만 한걸음 떨어져서, 조용한 산속에 가거나 바다를 보면서 자연을 보고 좀 머리를 식히고서 세상을 보면 지옥과 천국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무슨 거룩한 인격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들어간 허풍의 얼마간만 빼내도 자기도 편하고 남도 편하고 모두가 훨씬 편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마음 약한 사람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기꾼이나 강도가 따로 있는게 아니구나 하고. 물론 무모하게 남을 믿는 사람도 문제지만 자기가 무슨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허공에서 신용을 꺼내다가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더더욱 문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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