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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사랑의 기술

by 격암(강국진) 2010. 10. 8.

2010.10.8

 

감성의 시대님이 사랑이나 정이 뭐냐고 방명록에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뭔지 몇줄 써볼까 합니다. 

 

사랑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사실 애초에 왜 사랑이 뭔지 논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항상 질문 그 자체가 어느 정도 답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의 형식은 답을 전제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묻는다는 것은 뭔지는 잘 몰라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세계를 둘러보면 보통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들이 매우 혼란스러운 데다가 몇몇 사람들은 자기나름의 사랑의 정의를 만들어 그것을 설명하는데 그것도 어떤 특정한 문맥을 벗어나면 혼란을 더하는 면이 있습니다. 저 역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얼마간 가치판단에 대한 에세이에서 몇마디 쓰기는 했습니다만 그것도 지금보면 어쩔 수 없어서 즉 따로 이름 붙일 것이 마땅치 않아서 사랑이라고 불렀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글에서 쓰고자 하는바는 어떤 철학적 숙고나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정의라기 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사랑을 위한 기술입니다. 즉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는가를 말함으로서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사랑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련하고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수련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며 저역시 날마다 수련하는 느낌으로 살고 있고 수련은 평생 계속되는 것이므로 이것은 저자신을 위한 메뉴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차차 쓰겠습니다만 오늘날 사랑은 매우 힘든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가장 사랑하기 쉬운 것부터 보고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일하고 대체불가능한 경험을 주는 대상을 접촉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일단 상업화되고, 통상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일상에서 주는 것, 반복되고 지루한 것,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 내가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그런 것들은 이미 나에게 어떤 선입견이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이나 계획에 의해 접촉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우연히 만나진 것에서 우리는 사랑의 작지만 위대한 싹을 봅니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충동적으로 내려서 충동적으로 걸어들어가서 예기치 않게 발견한 오솔길이나 작은 거리가 그럴 수 있습니다. 집 뒤편을 우연히 들여다 보았더니 거기에 피어있는 들국화를 발견했다 그 들국화 한송이가 그럴 수 있습니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공원이나 펜션이 그럴수 있습니다. 

 

쇼윈도우안에 있으며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은 우리에게 이게 비싼 것이라던가 싼 것이라는 선입견을 주게 됩니다. 또한 그것은 대개는 수없는 복제가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내 친구도 똑같은 것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유일한 것이 아닙니다. 나만의 체험을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길을 가다가 비가 와서 우연히 뛰어들어간 까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왔고 그렇게 시작된 누군가와의 대화가 즐거운 추억을 남겼다면 나는 여기서 복제품의 냄새를 잊게 됩니다. 그것은 대체불가능하고 유일한 경험입니다. 그 까페는 객관적으로 보아 특별히 좋을 것도 없는 곳일 수 있지만 대체불가능하고 유일한 느낌을 준 그 추억은 그 장소를 사랑스러운 곳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것은 우리에게 신비스러워 보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궁금하게 여깁니다. 우리가 우리가 그것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암묵적으로 마음속에 그려놓은 세계에 대한 그림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며 그래서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나는 뭔가가 대체 불가능한 것이 되고 특별한 것이어야만 사랑을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보기 나름에 따라 다 지루하게 반복되어지는 것인 동시에 어느 하나도 다른 것에 의해 대체 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러가지 개념과 이름을 배우고 뭔가를 반복적으로 경험해서 금방 모든 것을 대체 가능한 것, 지루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 사실 어떤 사과도 똑같은 사과가 없는데 우리가 그것을 사과라고 부르는 순간 이 사과 한개는 저 사과 한 개와 같은 것이 되고 서로 교환가능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수많은 개념들이 이런 일을 하는데 오늘날에는 두가지 강력한 힘이 이런 일을 가속화 시키는 것같습니다. 그 두 가지 힘이란 시장이고 과학입니다. 

 

시장에서는 돈이 모든 가치의 평가 기준이 됩니다. 만원짜리 물건들은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단순해 지는 겁니다. 물건만 그런게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상품처럼 취급되는가 하는 것은 결혼정보회사에서 사람을 분류하는 것에서 잘 나타납니다. 사람이 등급이 매겨지고 나면 같은 등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서로 대체가능한 상품처럼 취급됩니다. 이 사람이 안된다면 저 사람으로 바꿔줄 수 있다는 식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등급을 매기기 위한 이런 저런 조건들 그러니까 외모, 신체 사이즈, 직업, 재산등등의 정보를 알게 되면 아직 한번도 안만나본 그 사람에 대해 거의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비슷한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10억짜리 아파트도 모두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집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같은 값의 집이라면 서로 교환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니다. 우리는 가보지도 않은 집에 대해 이미 지루해 할 정도로 알겠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과학도 그렇죠. 과학은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지만 과학의 힘에 압도된 사람들은 과학적 논리가 어떻게 남용되는지 오히려 모릅니다. 과학에 의해 -과학의 의미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의미없는 똑같은 많은 경험중의 하나로 착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의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고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의미를 찾아 헤매는 것이 그런 것중의 하나죠. 마치 시험관 속의 소금결정이나 염산을 가지고 실험을 하듯 우리는 사랑이라는 놈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관찰을 해서 그게 뭔지 알아내려는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현대사회가 이것들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시장에서 소비자이고 생산자이며 학교에서는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 학생입니다. 소비하고 생산하며 지식을 삼키기 바쁜 것이 현대인입니다. 그래서 어느새 우리가 뭔가를 사랑해서 선택하는 일이 드물어 집니다. 우리 자신이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복잡한 시스템안에서 이런저런 공포와 압력과 뒤틀어진 정보와 교육, 일상에 중독된 나아닌 나가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는 '나'를 찾을수 없습니다. 그건 마치 수학공식같은 것을 반복해서 적용하고 있는 기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위해서는 수련과 그런 세상에 대한 저항이 필요한 것이죠. 그 중요한 일부가 바로 예측하고 판단하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천천히 사는 것이고 다 알겠다는 태도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쉬운 상대가 바로 우연히 만난 작은 것들이죠. 이 경우 우리가 그 대상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예측하고, 판단하고, 알고 있는 지식과 개념으로 그것을 잡으려는 것을 중단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그 상대를 향해 진짜 시선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직접 느끼는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오랜동안 쓰질 않아서 퇴화되어 있는 관계를 맺고 의미를 느끼는 그 부분을 말입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란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가 선생님으로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작문숙제를 내주는데 주제가 미국에 대한 에세이라던가 캔자스 시티에 대한 에세이라는 식이면 아무것도 써지질 않는 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점점 더 주제의 범위를 줄입니다. 중앙로라던가 중앙로에 있는 은행의 정문이라던가, 그 정문을 이루는 첫번째 벽돌 같은 것으로 범위를 점점 줄여서 에세이의 주제로 삼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던 어느 순간 그 학생의 태도는 폭발적으로 변합니다. 이제까지는 한 줄도 쓰지 못하던 학생이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는 것이죠.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합니다. 그 이유는 일반적인 개념에 대한 것은 이미 세상에서 여러번 다뤄진것이고 그 학생은 그런 지식의 권위에 눌려있는 상태라서 그녀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뭔가를 쓰려고 하면 이미 그것은 당연하고 누구나 아는 것이라 쓸만한 것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엄지손가락 뒷면처럼 매우 작고 좁은 주제로 접근해가자 어느 순간 이제 명백히 이세상 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없었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그 학생은 이제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글을 쓸 수 있게 된것입니다. 

 

이렇게 대상을 직접보는 것을 수련하다보면 이제 우리는 일상적으로 보던 것 안에서도 우리가 보지 못하던 중요한 것을 보게 됩니다. 대상들이 훨씬 더 입체적이고 풍요롭게 보이는 것이죠. 우리가 어떤 선입견을 가질 때는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민감성을 늘리는데 실패합니다. 그리고나면 오히려 그 경험이 더더욱 그 방향으로의 민감성을 줄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경험이 많을수록 좋은게 아니라는 것이죠. 경험이 오히려 우리를 더 바보로 만듭니다. 우리 내부의 선입견을 더 강화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극이 없는 바깥세상이 아니라 내 내부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의 상태는 한쪽 팔에서 감각이 전혀 없어서 그쪽팔에서 아무 느낌이 오질않는데도 자신이 불구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와 비슷합니다. 그 감각을 살리려면 일상에서 벗어난 수련이 필요한 것이죠. 

 

사랑은 그 대상과 내가 연결되어져 있는 하나라는 느낌입니다. 꽃이던 거리던, 찻집이던 기차던, 직업이던 옷이던 연결을 만들어 내는게 아니라 그 연결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상대를 교환가능한 것으로 파악할때 우리는 그 연결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심지어는 자기자신과의 연결도 잊어버립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부르는 개념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자지간, 부부지간, 애인관계, 친구관계, 직장동료관계등등 많은 관계가 있고 그에 따르는 의무와 권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보면 영원한 혼자고 어떻게 보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져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개념으로 파악한 인간들과의 관계는 우리가 가슴으로 느끼는 연결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이름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며 우리는 만나지도 않고 헤어지지도 않습니다. 다만 자기 가슴, 자기 느낌으로 느끼는게 아니라 어떤 학습된 것으로 느끼지 않도록 자기에 대한 청소를 충실히 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물론 현실적으로 사회적 규약을 따르는 것이 좋지요. 절대는 아니지만 대개는 편리한 것이니까요.

 

숭산선사는 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내가 당신에게 묻고 당신이 나에게 묻는것이라고 답했다고 들었습니다. 서로에게 관심이 있으니까 묻겠지요. 스스로 상대방에 대한 무지를 느끼니까 묻고 귀기울여 듣겠지요. 무지를 느낀다는 것은 상대방을 기성품으로 인식하지 않을때 지속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급속도로 상대방에 대한 흥미는 감소하고 상대방에게 말할 것도 들을것도 없어집니다. 세상에 대한 무지를 느끼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는 수련이 필요합니다. 판단하고 예측하는 것을 멈추고 계획없는 여행이라도 떠나보는 것이 우리의 사랑을 할수 있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그 능력을 수련하는 것이 바로 사랑을 하는 기술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다시 한번 사랑의 본질이 상대방과 나와의 유일하고 대체불가능한 연결을 느끼는 것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랑 이야기에 운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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