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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더 이상 찾지 않는다.

by 격암(강국진) 2010. 10. 13.

2010.10.13

 

찾는 것을 중단하라는 말은 내가 아니라도 여러사람이 많이 한 말이다. 그러나 더이상 찾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소중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진짜 가치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찾아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법정의 무소유같은 말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버리고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이것도 중요한 요령이다. 마음에 잘 담아둘 가치가 있다. 그러나 물론 궁극적으로는 이런 말들을 무슨 주문처럼 쥐고 있다고 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들도 흘려보내야 한다. 이런 말들도 가지지 말아야 하고 이런 말들 안에서 진리건 행복이건 찾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말을 하지만 나라고 해서 돈이 전혀 없어도 살수 있고 상상하기 조차 기분나쁜 삶의 불행이 나를 닥쳐 온다면 고통을 느끼지 않을리는 없다. 칼로 찌르면 아파할 것이고 장거리 달리기를 하거나 일주일정도의 과로만 해도 나의 마음은 무거워 질것이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찾아 헤매며 예쁜 여자가 나를 유혹하고 명성이나 지위가 나를 유혹한다. 부끄럽지만 수련이 부족한 탓이다. 

 

찾지 않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산중의 돌처럼 그저 우두커니 아무것도 안하고 살아가는 것인가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사계절 따라 낙엽지고 눈내리는 것만 봐도 삶이 지루하지 않고 행복에 넘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당장 밥도 먹을 돈이 없는 사람이 빌게이츠 같은 부자가 되면 돈관리가 힘들지 않겠냐고 걱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지기 전에 버려야 할것이 너무 많다. 우리 마음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넘어서는 일만해도 할일이 너무 많다. 우리는 여러가지 인간관계와 애증으로 세상에 얽혀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고자 해도 우리는 그렇게 할수가 없다. 

 

가진 재산을 전부 기부해 버린다던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자리에 앉아서 말도 안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자이며 가장 많은 것을 하는 사람일수가 있다. 재산을 버리면서 나는 재산을 기부한 사람이라는 명성을 노리고 있을 수가 있다. 그 재산이 어떤 일을 하는가에 애착을 가지고 정신이 빠져 있을 수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불의에 당하는데 가만히 있는 사람은 가장 큰 위선을 '행'하고 있는 것이며 남들이 위선적으로 세상에 타협하고 굴종할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도 가장 큰 일을 행하는 것이다. 세상돈과 지식을 다가지고 있어도 집착하지 않으면 무소유인것이다. 

 

찾지 않고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이순간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잘 되새김해서 소화시키고 내 인생을 돌아보고 삭히지 못하고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고 이렇게 저렇게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여러 인연을 좋게 좋게 풀어가는 일이며 가진것에 애착하지 말되 더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가진 것을 잃지나 말고 이미 가진것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만 나의 경우는 30년이 넘어걸렸다. 그러니 이미 나는 이런 저런 해야 할 숙제를 잔뜩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다행히 운이 좋아 더 많은 숙제가 나를 짓누르지 않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해야할 인생의 숙제들을 하나둘씩 풀어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풀어나가서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 진다는 것은 아마 한참이나 뒤의 일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특히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너무나 자유로워져서 돌처럼 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이 세상에는 물론 나보다 운이 훨씬 좋은 사람들도 많다. 단지 돈이 많거나 굉장한 집안에서 태어나서가 아니라 스스로는 고민도 없었고 잘 알지 못하면서도 환경에 따라 운이 좋아서 특별히 숙제를 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는 물론 나보다 훨씬 운나쁜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인생은 너무나 많은 숙제를 가지고 있어서 언제까지 그 숙제만 하고 있어야 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고기는 물고기, 학은 학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을 뿐, 입장을 바꿀 수는 없고 누가 나를 구원해 주지도 않고 내가 누구를 구원해 줄 수도 없다. 굳이 뭐가 있다면 나라도 좀더 괜찮은 사람이 되서 그 사람의 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진리나 행복이 마음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책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므로 그런 수단이 필요할 때만 읽으면 된다. 그런데 실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난 후에 나는 전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게 된 후에 책을 더 많이 읽게 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이 그렇다. 

 

내가 어떤 진리를 책에서 찾으려고 할 때는 도서관가득히 있는 책들, 세상의 책들이 내가 해야 할 숙제처럼 보였다. 그 숙제의 양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질렸고 그래서 오히려 나는 책을 읽기가 두려웠다. 어떤 때는 남들이 찬양하는 어렵고 두꺼운 책을 들었다가 억지로 진도를 나가면서 이 안에 진리가 있을텐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재미로 읽는다. 세상 모든 책들이 나죽을때까지 굳이 읽지 않아도 엄청난 일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만 고금의 세상사람들은 뭐라고 썼는가 흥미가 돌아서 책을 뒤적인다. 책을 뒤적이면 전보다 오히려 훨씬 이해가 잘된다. 나의 관점이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진리를 알고 나는 모른다는 관점이 아니라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탐험한다는 느낌으로 책을 보니 오히려 이해가 더 잘된다. 더 이상 찾지 않을때 책이건 세상이건 더 흥미있고 재미가 있어진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고 몇년전에 갑자기 어려운 책들을 너무 많이 읽는다라고 평했는데 어려운 책들을 읽고 싶어했던 것은 그보다 전이고 너무 많이 읽는다라는 평이 나왔던것은 그저 내가 놀고 있었을 때였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 이렇다.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독서를 돕는다. 만화책을 볼때 우리의 심정이 그렇지 않은가. 만화책을 의무로, 진리를 찾기 위해 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독서란 가벼운 대화거나 연장통 뒤지기다. 대화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독일어를 못하는데 상대방이 독일어로 하고 있거나 상대방이 충분히 쉽게 이야기 하지 않았거나 그냥 내가 어떤 일에 좀 무지해서다. 그 안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고 너무 애처로워 할일도 없다. 영원히 놓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진리는 그렇게 수가 많지 않다. 다른 책에서 다른 모습으로 또 만나게 된다. 

 

더 이상찾지 않으면 뭘 하는가. 어떤 의미로 인생을 수선한다. 어리석었을때 저질러 놓은 것을 뒷처리 한다. 우리는 살면서 직업을 선택하고 저축도 하고 빚도 만든다. 결혼해서 가족을 만들기도 하고 술만 먹느라고 술병을 얻기도 한다. 배워두면 당연히 좋았을 일을 생각도 안하고 안배워 둔 것도 있다. 

 

더 이상 찾지 않으면 뭘하는가. 아침에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해서 몸을 좋게 만든다. 아이들 공부를 돌봐주고 아내나 아이들이 사는데 지루한 점은 없는지 고민은 없는 것인지 살핀다. 저녁에는 설거지라도 열심히 하고 사색을 하거나 글쓰기를 해서 머리속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낸다. 부모님은 잘지내고 계신지 자주 자주 확인하고 기왕에 가지고 있는 직업과 재산으로 무리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큰 재난은 피할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고 나와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챙기고 피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더 복잡한 삶을 살아가게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틈틈히 세상에 진 빚도 갚을 방법을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는 초등학생들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들은 것과 똑같지 않은가. 그렇다. 똑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혀 다르다. 누가 뭘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과 다만 지금 이순간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다보니 돌아보면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더라라는 것과는 결과가 전혀 다르다. 양질의 삶을 사는 것은 무슨 프로그램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 

 

행복과 진리는 마음에 있다. 그러나 이 문장안에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비운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위, 찾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의 마음안에 진리가 있다. 그렇게 해서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오면 알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찾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다.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 우리를 속박하고 있던 것들, 실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허상이었을 뿐이다. 

 

더 이상 찾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짐을 내려놓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것이다. 그것은 외로운 어린 고아가 집을 찾은 것같은 느낌이고 산의 정상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드디어 푸른 하늘이 보이는 곳에 다다른 느낌이다. 그곳에 다다르면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 사람들이 그곳에 다다른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그곳이란게 없으니까 그렇다. 우리는 그곳에 도착해서 다만 더이상 어디로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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