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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뿌리

by 격암(강국진) 2010. 12. 2.

제가 한국의 진보세력에 대해 뭘 우려하는가는 평소의 저의 글들속에서 들어나는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점에 대해 한번 더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진보세력이라고 한들 사람은 여러가지니까 한뭉텅이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한국의 진보세력은 한마디로 말해 자기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이는 한국의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한국의 보수도 자기가 없지요. 그래서 한국의 정치판에는 사실 주체성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은 그래서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것이고 탁월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분은 객관성이나 보편성을 잊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항상 자기를 잊지 않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노력하셨는데 이것도 결국 보면 외세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한반도의 한민족이 서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구조부터 없애야 한다는 생각인것 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탈권위적 민주주의를 보급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단순히 민주주의로 말할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국의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그래야 한다는 믿음을 표방한 것입니다.

 

흔히 민주화 세력이나 진보세력이라고 말해지는 사람들이 노무현 같을 것으로 생각하면 저는 큰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으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본인도 알지 못하는 철학의 문제입니다. 독재를 주장하면서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이 되기란 매우 쉬운 것이며 실은 한국의 현실에서는 그러지 않기가 더 힘듭니다.

 

보수가 말하는 독재를 이해하기는 쉽습니다. 그들은 인적 독재를 주장하곤합니다. 위대한 지도자밑에서 -누가 위대한가는 자기들 맘대로 정하는것입니다만- 다른 사람은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회지요. 

 

그럼 이걸 비판하는 진보세력은 민주세력인가.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지적독재를 추구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독재를 추구한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이 독재는 대개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옳은것이라는 명제에 의해서 행해집니다. 문제는 옳은 것이란 가치있는 것이며 가치란 논리를 넘어서는 것이란 점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밀어내버리고 쉽게 기계적 합리주의로 빠진다는 것입니다.

 

보수가 권위적이라고 합니다만 사실 진보도 대개 권위적입니다. 그들은 어떤 복지국가가 옳다는 권위, 마르크스같은 인물이 옳다는 권위를 내세웁니다. 즉 그들에게는 올바른 사회라는 것이 법전에 씌여진 모델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올바른 사회란 이러저런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하면 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악이란 이러한 시스템변화를 이기심때문에 막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것도 독재입니다. 사회과학공부모임 진보모임 대부분이 실은 독재적 집단입니다. 여러분들이 경험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민주를 이야기하는 집단이 곰곰히 생각해보면 김일성을 모시는 집단처럼 대개는 독재가 아니었는지. 대개는 그 독재의 최고층에 있는 사람이 독재를 원하지 않아도 독재가 되는데 이는 세상을 보는 시각에서 한가지가 완전히 빠져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많이 듣는 이야기고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전혀 추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자세입니다.  자기를 강조하지 못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고 자기를 강조한다는 것의 핵심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지라고 말하는 것으로 지적독재의 문제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진리는 저기 객관적으로 있다고 하면 우리 중에 가장 눈밝은 이가 말하는게 진리니까 나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저 그사람의 말만 들으면 되는 겁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논의는 상당히 복잡하고 원하면 통계라던가 하는 사실적 증거들로 얼마든지 복잡하게 만들 수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제일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말고는 내가 뭘 좀 잘 몰랐겠지 하는 태도가 됩니다.

 

이건 수학문제를 푸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수학문제는 결코 민주적으로 푸는게 아닙니다. 그걸 못푸는 백만명보다 그걸 푸는 한명의 천재가 옳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세상이 수학문제풀기같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풀이에 참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답은 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백배 천배 빨리 푸는데 뭐하러 잘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써서 에너지를 낭비합니까. 

 

민주주의란 다수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세상문제가 논리로만 된다면 지적독재가 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내놓는 옹색한 오해입니다. 행복한 사회만들기가 만약 요리같은 것이라면 단순 다수결이란 누구는 솥안에 된장찌게 재료를 던지고 누구는 솥안에 피자재료를 누구는 솥안에 단팥죽 재료를 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결과는 쓰레기인것이죠. 그렇게 되지않도록 지적인 설계를 한다고 말하면 다시 지적독재로 가는 겁니다. 민주주의의 기반은 공감대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바가 있어야 쓰레기가 되지 않는 것이죠. 

 

대책없는 다문화주의가 위험한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서로 많은 문화적 차이를 가진 집단이 각자의 정체성에 대한 정립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하나로 묶어낼 공감대도 없이 섞이면 비극이 생겨날수 밖에 없습니다. 각자 쓰레기를 만든다고 서로를 박해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치는 내마음에 있는 것이고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공감하는 가운데 하나의 집단으로서 공동으로 느끼는 것이 우리의 가치입니다. 이것은 논리문제 이전에 있는 것이며 이 점이 사소한 점으로 여겨지면 진보적인간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재앙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이 점을 깨닫고 있는 사람을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지적인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입니다. 양명학에서는 안다는 것과 행하는 것이 같다고 하지요. 이 점을 안다는 것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뜻인데 이 점을 안다고 말하면서 말과 행동과 생각을 보면 딴판인 사람들만 한국에 가득한 것입니다. 그럼 그건 아는게 아닙니다. 아이스크림의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알지 논리로 아는게 아닙니다.

 

지적독재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자칭 진보가 가져오는 재앙은 공동체 파괴입니다. 입으로는 공동체를 만들자고 하면서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공동체는 가치로 만들어 지는 것인데 이것은 논리 이전의 형이상학이고 물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물론적이고 논리만 따지며 진리는 저기 객관적으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공동체 만들기도 무슨 프라모델 만들기 설명서처럼 이런저런 순서를 따르면 만들어 진다고 착각합니다. 독일에 스위스에 프랑스에 이런저런 제도가 있다, 우리도 투쟁해서 그걸 도입만 하면 공동체가 팍팍 자라날 것이다는 식입니다. 객관성만 강조합니다. 엉터리 과학자나 엔지니어처럼 행동합니다.

 

공동체만들기는 사랑에 빠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전제하에서 시스템도 이야기되고 논리도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미친 사람들이 어쩌니 저쩌니 합니다. 

 

아마 지금 내 말도 이해못하는 사람들이 보면 전부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할겁니다. 이것이 한국의 진보세력의 문제입니다. 아니 실은 한국사람들의 문제지요. 세상에는 어차피 여러가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어떤 사람을 보고 환호하고 지지하는가에 따라 그중 어떤 사람들이 세상에서 주목을 받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대개 위에서 말한 인적독재나 지적독재를 믿습니다. 자기가 소중하다는 것을 제대로 생각해 본적도 배워본적도 없습니다. 이는 주자학이 넘쳐난 조선시대, 남의 지배를 받는 식민시대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가 소중하다는 한줄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적어도 저 개인적으로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세간에서 말하는 이기주의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하는 질문의 답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일단 되새기게 되면 아주 많은 것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해방하지 못하고 노예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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