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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케이, 노무현 그리고 세대론

by 격암(강국진) 2010. 12. 20.

오늘은 슈퍼스타 케이 이야기와 정치 개혁 문제에 대해 두서없이 몇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존박인가, 아내가 이 사람노래 잘한다면서 틀어주는데 노래 잘하더군요. 그러다가 슈퍼스타케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 가요계에 문외한이고 슈퍼스타케이도 보지 않았지만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건 케이블 방송인 슈퍼스타 케이가 어떤 점이 좋아서 성공했는가가 아니다. 왜 그런 기획을 한 사람, 왜 그런 데 참여한 출연자가 초라한 위상을 가진 케이블에 참여했는가 이다. 

 

결국 주류의 독과점이 판치는 가운데 대중이 원하는 것을 줄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체계적으로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특정 음악만 방송을 타고 특정 출연자들이 담함해서 판을 짜는 세상이기 때문에 케이블이라는 어떤 한쪽 구석에 구멍이 생기자 인재가 모이는거 아닌가. 실제로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슈퍼스타 케이 진행자도 메이저방송에서 독립했다가 별볼일 없어져서 케이블로 간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류 방송이 슈퍼스타 케이를 흉내내면 인기가 있는가. 그러기 어려울것이다. 왜냐면 그런 포맷이 성공하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가 주류에 있기 때문이다. 저는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국민경선 이야기를 했습니다. 노무현이 국민경선으로 스타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한나라당에서 우리도 할수 있다고 나서면 옳은 것인가. 아니다. 성공도 못할뿐더러 자살이 된다. 

 

왜냐면 노무현은 노무현이기 때문에 그의 성공이 드라마가 된것이고 더 많은 대중노출이 있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지만 한나라당 사람들의 경우 직접적 대인접촉에 의한 방식이 아니라 공중파 방송같은 곳에서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면 안되는 사람들이란 것이죠. 그 사람들이 모여서 경선을 해봐야 소외받던 인재의 성공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되지도 않을 뿐더러 객관성을 결여한 사고방식으로 꽉찬 한나라당 분위기에서 공중파를 탈수록 대중의 분노만 사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세훈도 이명박도 유효한 선거전략은 직접적 대중노출 줄이기입니다. 토론회에 참석안하는 것이죠. 홍보전문가가 만들어준 광고나 사진만 내보내고 그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가를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죠.  

 

슈퍼스타케이의 성공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두번째는 과연 슈퍼스타케이의 성공은 절반이 아니라 완결형이 될수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다는 점에서는 이미 성공한걸로 압니다. 그러나 진짜 성공은 거기서 1등한 사람들이 실제로 가수생활에서 성공하더라는 것을 보여줘야 진짜 성공이 되는것이죠. 왜냐면 그렇게 될때 사람들은 그것을 성공으로 가는 길로 인식하고 다시 그길을 가려고 할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는데 먼저 국민의 문제가 있습니다. 슈퍼스타 케이는 좋아했지만 정작 누굴 좋아하니 라고 물어보면 그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허각이라고 하는 우승자는 스타성이 떨어진다면서 인기가 없다고 아내가 말하더군요. 어떤 문맥에서는 누군가에게 지지를 보내면서 다른 문맥으로 가면 전혀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결과없는 자유란 무의미합니다. 선택은 항상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소녀시대나 이효리에 유감은 없습니다만 그런 가수로 채워지는 가요판을 비판하면서 정작 그런 가수들만 소비한다면 앞뒤가 안맞는거 아니겠습니까.

 

두번째는 당선된 사람들이 성공할수 있는 새로운 생존 방식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기성의 판매루트는 주류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에서 허각이나 존박을 무시한다고 하더군요. 그들입장에서는 허각이나 존박이 뜨면 바로 케이블 띄워주기가 됩니다. 음반계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몇년전부터 불법 음원은 철저히 단속되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음원판매와 컨서트로 생존이 가능하다면 주류방송이 무시해도 뜨거나 주류방송이 무시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수가 있습니다. 과연 존박이나 허각의 능력이 충분한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모르지만 말입니다. 

 

다시 노무현으로 돌아갑시다. 문제는 똑같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뽑아는 놓고 도대체 그런 사람을 국민들이 정말 좋아하냐는 겁니다. 입으로는 달콤한 걸 좋아하면서 짭쪼름한 음식이 좋다는 생각에 그런 걸 주문하고 음식나오면 왜 달지 않냐고 불평하는 그런 모순이 노무현시대에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죠. 국민들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수 있지만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또하나는 노무현스타일의 정치는 과연 생존가능한 것이었는가 하는점입니다. 저는 그렇지 못했다고 봅니다. 노무현은 대단한 사람이었는데도 그렇습니다. 환경적 변화가 없다면 노무현스타일로 하면서 노무현보다 못한 제2의 노무현은 더욱 생존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장점이건 단점이건 노무현은 외로웠죠. 노무현은 시대와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지지층은 제대로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고 당선되자 흩어지거나 개혁을 지탱할 힘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의 한계인지 이나라 지식인의 한계인지, 국민의 한계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입니다.  이제 다시 노무현의 길을 걸을 사람이 있을 것인가는 좀 비관적입니다. 짧게 정리하자면 국민으로부터 지목받고 당선되고 돌아가시는데 6-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것이 정치인 노무현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죽울 길은 사람들이 싫어하겠죠. 그러나 모든일은 평균적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니까 또 어떤 사람이 있을수도 있지요. 

 

마지막으로 소위 386정치인들에 대해 한마디써보겠습니다. 저는 이글에서 쓰고 있는 문맥으로 봤을때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은 세대간의 힘겨루기의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세대론을 말할때는 개개인은 무시됩니다. 따라서 이건 그 연령대의 모든 사람이 그랬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하고 싶습니다. 이건 이런 측면도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인구분포를 보면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항아리 모양의 중심쯤 되는 사람들이 바로 7-80년에 대학에 들어간 세대입니다. 전후 베이비 붐이 만들어낸 세대이기도 하며 일제시대에 교육받은 적이 없는 그들의 부모와는 달리 해방이후 대학교육까지 받은 세대입니다. 

 

여기서는 편의상 이 386세대를 민주화세대, 그들의 부모세대를 전후세대 요즘 젊은이들을 88만원세대라고 불러보겠습니다. 민주화세대는 숫자가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부모세대가 만든 사회질서에 절망합니다. 또한 이들은 체질적으로 서양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 문화적으로 전후세대와 다릅니다. 문화가 다를때 그들은 현실에 더욱 절망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이 들고 일어섭니다. 

 

제가 보기엔 이들이 자신들의 문화대로 세상을 바꾸겠다면서 세력을 이룬것이 바로 오늘날의 진보와 민주화 세력입니다. 이들중 다수는 비주류적인 모험적인 삶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살게 됩니다. 영화감독이라던가 정치인이라던가 출판업이라던가 하는 것이죠. 공무원이나 대기업 셀러리맨으로 가서 안정적으로 살 능력도 되고 그러고도 싶었던 사람들인데 민주화 운동의 혼돈속에서 그런 코스에서 멀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엔 그게 이들이 진보로 민주화세력으로 뿌리박는 힘이 됩니다. 

 

그런데 민주화세대 혹은 진보는 사실 전후세대와 싸웠을뿐 제대로돤 자기 문화와 철학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난 서구가 좋아라면서 락큰롤 가수 흉내내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후세대가 만들어내는 현실이 워낙 후진적이었을때 민주화세대의 비전은 충분했습니다만 그걸로 선진국을 이룰만큼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몫을 사회로 부터 받을 만큼의 정치력을 발휘합니다. 

 

이제 민주화세대도 중장년으로 접어드는 사회의 기득권세력이 되었습니다. 88만원세대는 전후세대는 물론 민주화세대에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전후세대는 보수라는 이름으로 민주화세대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갈라 내가 옳으니 니가 그르니하며 싸우지만 실은 이 두집단의 문화는 모두 후진적인데가 있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교수는 젊은 세대들에게 왜 진보편 안드냐고 너희들은 틀려먹었다고 욕을 하지만 실은 전후세대가 완전히 몰락하고 민주화세대가 완전집권하는 세상이 와도 과연 88만원세대가 행복해 질지는 알수없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신세대를 서로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진보와 보수가 싸우기 때문에 대접받는 것이지 한쪽이 망가지면 88만원세대는 바로 값어치가 떨어질수 있습니다. 

 

보수를 편드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오늘날 사회의 중견관리층으로 88만원세대의 바로 위에서 사회의 손과발이되어 그들을 88만원세대로 만드는 것은 바로 민주화세대입니다. 꼬박꼬박 선배니 부장님이니 교수님이니 하는 존칭 받아가면서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민주화세대입니다. 

 

민주화세대는 전후세대의 부모님으로부터는 많은 것을 받아서 혜택을 누리지만 88만원세대에게는 물려주는 것이 없는 소비성 세대이기도 합니다. 입으로 페미니즘을 말하는 40대 부부가 늙은 노모를 가정부나 보모처럼 부리면서 자신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자식들은 돈으로 쳐발라 학원이며 캠프며 하는 쪽으로 돌리는 모습은 흔합니다. 그들은 부모로 부터 결혼할때 막대한 돈을 받기도 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자식세대에게 전후세대가 해준일을 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철학적 깊이가 없기는 민주화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일관성이 없는 것이죠. 

 

하지만 숫자적으로 전후세대를 능가하던 민주화세대와는 달리 88만원세대는 숫자적으로도 민주화세대보다 열세입니다. 따라서 사회적 개혁이 세대간 갈등이라는 형식으로 진척되어져 갈때 그들의 성공가능성은 없습니다. 가능한개혁은 나이를 지워버린 동지로 뭉치는 개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훨씬 독립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의 개혁이며 노무현이 보여준 문화와 연결되는 면이 있습니다. 노무현이 핵심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사람들을 뭉칠수 있는 깊이있는 문화가 탄생할때 그 집단이 개혁을 성공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노무현은 문화집단을 뒤에 가지지 못했으므로 좌초했습니다. 받쳐주는 힘이 없었달까요. 

 

이글에서는 슈퍼스타케이에서 노무현으로 그리고 세대론으로 이야기를 옮겼습니다만 기본적 관점은 일관됩니다. 누군가가 성공하는 이유를 더더욱 깊게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보통 말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있을수 있습니다. 정치사회적으로 말할때 진짜 중요한 것은 문화적으로 결합된 집단입니다. 같은 세대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에 하나의 문화집단으로 뭉쳐지기 쉽습니다. 만약 세대를 넘어선 집단이 탄생된다면 그것은 그들을 이어주는 미디어가 있을때 가능할것입니다. 네티즌이 하나의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 그런 것이죠. 그러나 단순히 네티즌이라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아보입니다. 뭐가 더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또다른 곳에서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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