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갈리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아래서 정치라는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변화가 있어야 하며 아직은 멀었지만 다음 대선에서 좀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같은 경험이라도 해석은 여러가지일수 있는데 살아가는 위치에 따라 경험도 제각각인 면이 있어서 더더욱 생각은 여러가지이겠지요. 저는 한국의 현실은 한국국민이 선택한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은 위대하기 때문에 어디에도 비교할수 없는 짧은 시간에 남들이 탈출하지 못했던 극빈국에서 탈출하여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어느정도의 민주국가도 만들고 세계적으로도 비교적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더 잘살수 -물질적으로던 정신적으로던-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위해서는 책을 읽고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얇팍한 이데올로기로 이러면 잘살게 된다라는 것을 넘어서 실질적 삶으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걸무시했을때 정치적 행위는 기름없는 차로 달려간다는 주장처럼 됩니다. 운전석에 앉아서 안달복달해봐야 절대 차는 앞으로 안간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노동자의 권익을 지킨다라는 구호아래 노조와 고용주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분명 필요하고 어느정도까지 옳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졌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귀족노조에 대한 비판이 생겨나고 있죠. 비정규직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고용주측의 문제이상으로 이념적으로 뭉친 노조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고용주가 잘해야 한다, 노조가 잘해야 한다를 논하기 전에 사람들을 고용주나 노동자로 분류하는 틀말고 다른 틀도 보고 느끼고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일정부분 고용주와 노동자를 선의 반대편에 놓는 것이 아니라 같은 테두리 안에 놓는 새로운 시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테두리는 본래가 임시적이고 무리한 것이지만 특히 그중의 하나의 테두리 하나의 분류에만 집착하는 것은 더더욱 나쁩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반성이 필요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회의하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런 성찰의 끝에서 비슷한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하나의 흐름이 생기고 그런 흐름이 있어야 진정한 변화는 옵니다. 물론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수 있는것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지 그저 손놓고 세상의 흐름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할일은 하되 결국 새사람이 있고서야 새정치가 있다는 것을 잊을수 없다는 것이죠. 뻔한 것같아도 기본을 잊고 어떤 편법, 어떤 기발한 생각이 세상을 좋게 할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일으키기가 워낙에 쉬워서 자주자주 되새김질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개혁당에서도 저는 이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당에는 당원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게 뿌리내리기도 전에 모두의 힘을 이리저리 당겨서 이런저런 일만하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들은 선의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선의로 세상을 망치는 것에 가깝습니다. 세상은 별로 좋아지지도 않고 상처입은 사람이 양산되고 빚을 끌어다 쓰고 나면 빚쟁이에게 쫒겨다니듯이 미래를 당겨서 코앞에다 써버린 결과는 좋아지지 않는것이죠. 우리 사회에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약합니다. 우리사회에서 말하는 진보의 삶이라는게 어떤건지 잘안보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함석헌씨를 생각해 봅시다. 함석헌씨에 대해 책을 조금읽어본 사람이면 총체적 인격으로서의 함석헌을 느끼게 됩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리영희씨도 그렇고 장일순씨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도 그렇습니다. 김구를 읽어도 그렇죠. 거기에는 논리이전에 인간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이러저러하게 살거라는 느낌이 오는 것이죠. 총체적 인격으로서의 이미지가 약하다는 것은 진보가 좁쌀같다는 것입니다. 깊이가 없다는 것이고 자기성찰의 정도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격조와 깊이란 고상한척 하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포용할수 있는 용량의 크기입니다. 바가지에다 물을 넣으면 넘치지만 대해는 많은 것을 품을수 있지요. 깊고 넓은 성찰이 아니면 결국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세상의 좁은 곳밖에 보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이세상에는 사악한 사람 사악하지 않은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오직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영향력과 권력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권력을 가지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기전에 더 많은 권력을 가진다면 그걸 감당할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사악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현정부를 내가 싫어하는 것은 유달리 성찰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고 칼을 휘두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의 깊이는 생각지 않으니 많은 사람에게 사악하게 보이는 것이죠. 그러므로 '책만' 읽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히 자기 거실에서 책을 읽는 것이 어떤 때는 가장 혁명적인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한판해주거나 아내와 오랜만에 나가서 데이트를 한번 한다던가 동네 어귀에 있는 나무에 물한번 주고 꽃을 한다발 사서 집에다 꽂아보는 행위가 가장 혁명적인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누굴 따라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생각하고 읽고 무엇보다 느껴서 보다 양질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고 지금 이순간 내가 해야할일이 뭔가를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그렇게 살려고 하는것이 가장 혁명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퍼져서 이웃간의 관계가 살아나고 공감대가 생기면 SSM문제가 사라지는 것이고 부모와 자식이 통하고 학부형과 선생님이 통하면 교육문제가 사라지는 것이며 그런 흐름위에서 자연스레 해야할일이 보일때 사회는 바뀌게 되는 것이죠. 만약 그런 깨달음이 없어서 사회적 비극이 생긴다면?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나 언제나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지 세상을 구하려면 나는 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건 건방지고 세상을 폄하하는 행위죠. 우리는 세상을 구할수 없습니다. 세상은 구원당할 대상이 아닙니다. 문성근씨같은 분이 민란운동을 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해야할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길 바랍니다. 저는 문성근씨가 아니니까 그분의 눈에서 보는것, 그분의 위치에서 느끼는 것은 모릅니다. 합주는 모두가 바이올린만 맡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는 징을 치고 누구는 피아노를 치는 것이죠. 그러나 제가 말한 문맥에서 볼때 거기에 깊이가 없습니다. 있는 것은 결국 반한나라당이라는 정체성 앞에서 뭉치자는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악은 한나라당이니까 그걸 무찌르기 위해서는 뭉치자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의미로 나라를 두개로 쪼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국사람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들에게는 공동체 의식을 기대할수 없는 것일까요?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정치, 쪼개지 않는 정치는 그런것일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있어야 하는 것중의 대표적인 것은 너도 나도 도덕적 반성을 하는 것입니다. 아 나는 나쁜 사람이었구나 하고 반성하라는게 아니라 도덕이란 뭔가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깊어지는 것이죠. 얼마전에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것은 아주 좋은 표시입니다. 법정스님이 돌아가시면서 법정의 에세이같은 것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아주 좋은 표시입니다. 사람들이 고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세상에 시끄러운게 무상급식문제인데요. 찬반을 떠나 이준구 교수의 글을 읽어보면 논의에는 격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잘알게 됩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0526.) 그래야 결론에 상관없이 부질없는 싸움이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래야 진짜 논의라는 것을 할수 있게 되는 것이죠. 개개인의 도덕적 반성이 트위터 같은 채널을 통해 소통될때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생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짜 진보가 탄생되는 것이죠. 그럼 지금은 어디에 우리는 와있는가.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는 것은 절대로 없을 것인가. 솔직히 지금같아서는 잘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노무현이 탄생한 대선에서도 누구도 노사모의 돌풍이나 개혁당의 탄생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걸 노무현이나 유시민 개인의 역량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착오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개인이 한국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사람이란게 이렇구나 하는 것을 재발견하게 된것이죠. 세상의 계곡이 되면 물은 저절로 모인다고 합니다. 물들을 원망하지 말고 깊이 있는 계곡이 되지 못한 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사람, 사람들이 있어야 진보가 있고 개혁이 있고 새정치가 있다는 것을, 세파나 이데올로기에 속지 않기 위해 자주자주 자기에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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