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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가장 어두워보였을 때

by 격암(강국진) 2011. 1. 6.

오늘은 한국이 가장 어두워보였을때라는 제목으로 제 개인적 회고를 해볼까 합니다. 근래들어 한국이 가장 어두워보였을때는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을때였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씨가 당선되는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나 저는 개인적으로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 대해 큰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명박씨는 워낙에 흠결이 많아서 절대로 대선과정에서 낙마할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일일이 기억나지도 않습니다만 이회창씨가 병역문제로 흔들렸던 것을 생각하면 이명박의 흠결은 너무나도 많았기에 한국 사회가 그래도 저런 사실들을 덮고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저를 눈살찌부리게 했던 것은 이명박의 위장전입이나 가족들을 위장취업시켰던 일, 불법선거 증인을 도피시키던 일같은 자잘한 (?) 일들이었습니다. 민족주의던 공산주의던 자유시장주의던 어떤 주의에 몰입된 인간은 그자체로 위험합니다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와 철학이라는 게 좋던 나쁘던 있기 때문에 사회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의 처방이 옳지는 않다고 해도 전체 사회를 위한 처방이란걸 가지고 있고 그 처방의 중요성을 믿어 일관되게 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과거행적을 보면 정말 아무리 봐도 출세욕이외에는 아무런 특징이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봉사심이 있다는 사람이 최상층 부자이면서 보험금같은걸 아껴서 내는게 말이 되겠습니까? 따라서 이런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뭐하나 들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모두가 자신의 출세를 위한 변명에 불과하며 추호의 일관성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이 미군천하면 미국만세요 일본천하면 일본만세를 부를 것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적어도 한국 사회가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야할것인가에 대해 생각이 틀리다는 차원보다 이전의 것입니다. 생각이 틀리면 큰 도둑이 됩니다. 큰 도둑이라면 적어도 생각이 틀릴뿐 나름의 생각이라도 있다고 할수 있고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라도 할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구국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동의는 안해도 이해는 할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명박은 거기도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더군요. 그런것에 비하면 작은 것입니다만 서프라이즈라는 토론사이트의 작은 행동들도 기억에 남는 일이 되었습니다. 대선이 끝나기전의 일입니다만 정동영을 지지한다는 말이나 심지어 이회창 연대론이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것에도 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 비하면 정동영이나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저에게 충격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프라이즈라는 사이트는 하루아침에 생긴것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적 일관성을 가져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틀렸으니 문을 닫겠다는 말이 나올망정 거기서 정동영 지지발언이나 이회창 연대론이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죠. 조갑제가 어느날 갑자기 민주노동당 만세나 노무현 유시민 만세를 부른다면 나는 조갑제씨를 지금보다 더욱 싫어하게 될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면 입을 다물어야죠. 뒷선으로 물러나 침묵해야 합니다. 자신이 한번 엄청나게 틀렸었다면 생각이 달라진 후에는 겸허하게 뒤로 가야죠. 물론 서프라이즈의 중요성을 길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비일관적인 태도가 이명박이 당선되는 사회분위기와 더불어 모두가 기회주의적이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어떤 무게를 싣지 않는 가벼운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 저를 더더욱 침울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경제현실이 어떻다던가 한국의 과학기술수준이 어떻다던가 하는 것이전에 저는 한국사회의 어떤 근본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업하던 사람들이 알고보니 사기꾼이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느낌, 사랑하던 부모님이 알고보니 파렴치한 사기꾼이나 연쇄살인마였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느낌이었달까요. 과연 이런 사람들이 행복한 나라에 살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저는 한국 사회에 대한 말을 삼가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희망의 불씨를 당기다 돌아가시는 것을 멀리서 듣고 보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잃어버리고 뒤이어 자연사하신것이긴 하지만 김대중대통령마저 잃어버린 것은 큰 아픔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저 개인적으로도 한국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남긴 것도 그분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돌아가시면서 말이죠. 


한국 사회에 대한 말을 삼가하고 있던 중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사이트에서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던져졌을때 제가 어떤 토론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어떤 질문을 내마음에 던진것이 되었고 직접적으로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결과적으로 후일 가치판단에 대한 연작에세이라는 것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이후의 일이긴 합니다만. 


저는 그 질문이 던진 생각속에서 두가지 키워드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독립적 사고를 하는 인간, 주체적 인간이고 또하나는 공동체정신입니다. 과연 한국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자신의 가치판단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하고 시간적으로 일관성을 가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려는 노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점을 이뤄보여주는 것이 거수기가 된 국회의원들입니다. 자신의 판단은 없고 결국 패거리 논리가 모든 것을 덮으니 합리주의건 자유주의건 민주주의건 모두 좌초하고 맙니다. 그런 배경에는 결국 패거리주의에 따라 국민들이 투표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국민이 몰려다니니 우리도 몰려다녀야 살아남는 다는 것이죠. 


독립적으로 사고하려면 자신이 가진 허상을 깨야 합니다. 자신의 상식, 자신의 문화를 근본부터 뒤져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자유로워질수 있는 것입니다. 가치판단에 대한 연작에세이가 근본뒤져보기라는 주제에 많이 관련된 것은 이때문입니다. 


또하나는 가치판단의 현실적 근거로서의 공동체의 실존입니다. 가치판단이라는 주제를 심각히 고민하면 민족이나 국가나 사회 공동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생각하게 됩니다만 현실적으로 사회적 선과악을 논하려면 우리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기준으로 말을 하고 있는가 과연 그런 공동체가 실제로 존재하는가를 따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가 실재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실존은 법의 테두리가 있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 안에 속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서로를 공동체의 일부로서 느끼고 그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강렬하게 믿을때만이 실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제정책, 복지정책, 사회정책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이야기할때는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공동체가 실존한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부분을 너무 쉽게 당연한 것으로 넘어갑니다. 마치 부품을 조립해서 차를 만드는 사람이 부품의 존재는 당연시 하면서 조립은 이리저리하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애초에 부품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럼 조립하는 기술이 제아무리 정밀해도 소용이 없으며 어떤 부품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계획을 짰기때문에 심각한 사고를 초래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를 발전시키는 근본적 원동력은 사랑입니다.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한국 공동체안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신경쓰고 하는 마음이 넘칠때 국가적 발전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을 뽑는 기준도 사실은 그 첫째가 사랑이되어야 합니다. 인간과 국가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다른 조건은 어찌되건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런 것을 망각합니다. 그래서 이명박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수 있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그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거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제가 언젠가 다른 곳에서도 한말입니다만 독립적 자아를 달성하지 못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위사상이란 놀고 먹는 일이라고 말하는 엉터리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회의 정체성, 한국 사회의 실존이 전제되지 않았는데 다문화주의, 세계와 친구가 되고 글로벌화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 엉터리입니다. 


물론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주체던 한국 사회라는 울타리던 다 넘어설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법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도덕적 타락만 가져옵니다. 살인범들이 쉽사리 프로이드 같은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사람을 죽인게 아니라 내 가난한 환경이 나에게 심어준 잠재의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운운 하는 변명을 쉽게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일이 일어납니다. 우선은 독립적 주체를 달성하고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실존을 굳건히 해야 그다음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가장 어두웠던 순간을 벗어났습니다. 객관적 현실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가 아니며 당장 몇년후가 좋아보여서가 아니라 뭐를 말하고 생각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보다 확고해 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어떻게 만들어 주거나 구원해 줄수 없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을 할뿐입니다. 제가 약간의 시간을 내서 쓰는 글들이 더더욱 한국시민들이 자기를 잃고 정신없게 만들도록 하려는 사람들, 한국 사회가 더더욱 그 실존을 잃어버리고 엉성한 자유주의나 보편주의로 빠져들어가게 만드는 사람들의 해악을 막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들도 대부분은 자기가 믿는대로 선의로 그러한 일을 하고 있을리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만 세상을 정말 살기 좋게 만드는 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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