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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연예인, 철학자 그리고 진실

by 격암(강국진) 2011. 2. 5.

11.2.5

나는 별로 티브이의 광팬은 아니지만 나도 특별히 세상 사람들과 별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예쁜 여자연예인을 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드라마를 꽤 즐겁게 볼 때가 있다. 다만 별로 크게 집착하지 않으며 광팬들이 그러는 것처럼 아주 아주 열심히 보거나 혹은 심지어 물건을 사모으거나 팬으로 여기저기 쫒아다니는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보기엔 연예인들을 보고 즐기는 일이란 술이나 포르노나 불량식품처럼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때로 에이 뭐 다 잊고 이거나 하자라는 심정이 될 때가 있는데 그럴때 자신의 감각을 둔감하게 하고 자신과 세상을 잊어버리는 마취제 같은 역할을 한다. 먹음직스러운 삼겹살 구이를 보면 몸무게를 걱정할 때도 있지만 에이 내 혀를 한번 즐겁게 하고 방종하는 일쯤 봐줘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저지르게 되는 그런 일이랄까. 

 

욕망을 느낀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문제는 욕망이란게 도대체 뭐냐는 점이다. 그 욕망은 정말 나의 욕망일까. 먹음직스런 음식을 앞에 놓고 배까지 고프다면 한입 먹어보고픈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며 심지어 그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그것이 나쁜 일일리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것을 따르는 올바른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는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못한다. 배는 이미 부르고 혀는 어떨지 몰라도 몸의 여기저기는 이젠 그만 먹어도 되겠다 아니 더 먹으면 몸이 괴롭다라고 외치는데도 계속 먹어치우기 쉽상이며 일단 그것에 중독이 되면 이젠 섬세한 맛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고 마구 쓸어 넣듯이 음식을 입에 집어넣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일단 적정선을 넘으면 우리는 같은 정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더욱 많은 양의 자극을 주면 전과 같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배고플 때 먹은 한입의 음식이 주었던 그 만족감을 이제 배가 부르고 그걸 많이 먹어서 무뎌진 입에서 똑같은 만큼 느껴보고자 훨씬 많은 양을 마구 입에 쑤셔넣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종종 환경이 너무 좋다는 점도 있다. 자꾸 나를 유혹하는 음식들을 보게 되고 거실의 테이블위에 먹을 것이 잔뜩 쌓여있다면 유혹을 넘기기 어렵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그 환경안에서 항상 반쯤 마취된 사람처럼되어서 이젠 정상이 뭔지도 기억해 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술주정뱅이들만 있는 나라에서는 술에 깬 사람이란 개념이 뭔지가 기억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먹는 것을 예로 들었지만 모든 욕망에는 이런 속성이 있는 것같다. 그리고 우리는 적정한 선, 우리에게 필요한 정도에서 멈추지 못하기에 화를 불러오고 그 댓가를 치루게 되곤 한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연예인이 가진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연예인이란 실은 나와 아무 관련도 없는 존재로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 가상의 존재가 내게 의미를 가진 것처럼 반응하는것은 혼자서 꾸는 백일몽이다. 연예인들에게 광적으로 빠지는 사람들은 작은 방종에서 부터 시작해서 결국 그 쾌감과 만족감을 채우기위해 가진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광적으로 가져다 바치는 사람들이며 그 가운데서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싸구려 방송따위는 경멸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중에는 실은 자신도 또다른 종류의 연예인과 사랑에 빠져서 자신을 잃고 있으면서도 즉 광적인 연예인팬과 자신이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을 때에도 그런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정치적 연예인 혹은 지적 연예인을 숭배한다. 

 

그들은 대개 어떤 사람을 간접적으로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접촉하고 그들의 팬이 된다. 역사상의 인물이나 어디 멀리 있는 인물을 간접적으로 만나고 그들의 향취에 취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위인전을 읽고 고전을 읽겠으며 옛사람이 쓴 시나 수필을 읽겠는가. 

 

문제는 그런 만남이 주는 만족감과 욕망에 빠져드는 경우다. 그렇게 되고나면 사람들은 똑같이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그 사람이라는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소모하게 되고 만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자신이 좋아하고 숭배하는 어떤 지식인의 '참뜻'을 찾아헤맨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자세는 일단 그 지식인이 옳은 소리를 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감이 드는 이야기야 말할 것이 없고 이해가 가지 않거나 옳지 않아보이는 이야기도 그 사람은 옳은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맞는 말일텐데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지라는 생각에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 사람은 심정적으로 남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 자신이 천재도 아니고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19세기를 살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가볍게 망각되어진다. 

 

연예인이란 애초에 처음부터 자신을 상품으로 하는 사람들이지만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소비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소비되는 것은 슬픈일이다. 그들은 적어도 사람들이 진실, 진리를 알게 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요즘에는 지식인도 상품이 된지 오래고 부속품이 된지 오래다. 학문은 전문화되었으며 미디어가 발달하고 지식이 쌓여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젠 책이라도 왕창 팔고 대학의 교수같은 직함이라도 걸어야 지식인으로 행세할 수 있는 시대이며 지식인 혹은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 개인적 수양이나 수행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상품으로서의 의미가 커진 시대다. 많은 지식인들은 이젠 거대한 시스템의 영업사원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에게 너 스스로가 되라라고 말하고 권하는 사람보다는 섹시한 몸매로 남자들을 중독시키는 여배우처럼 사람들을 그 사람의 지배속에서 헤어날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세상의 미디어를 가득채우게 되었다. 연예인과 지식인의 관계는 생각보다 깊다. 예를 들어 가수를 생각해 보자. 녹음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세상에는 동네마다 그 동네의 가수가 있었다. 이들은 그 지역에서 노래를 가르치고 부르는 역할을 하면서 각자의 특징을 발휘했다. 그런데 녹음기가 출현하자 사람들은 자기 동네의 3류가수보다 녹음된 유명가수의 노래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 시대의 연예인들이다.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미디어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은 동네의 훈장선생이나 집안의 어른에게 지혜를 배웠다. 그리고 그 지혜는 사람의 인격과 관련이 있는 얼굴이 있는 지혜였다. 하지만 미디어가 발달하자 이제 전국을 휘어잡는 유명 지식인들이 책을 쓰고 연설을 해서 모두가 똑같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직접 만날 수 있는 동네의 지식인들이나 현자들은 녹음된 목소리와 활자화된 가르침에게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지혜와 지식이 미디어를 통해서 폭포수처럼 사람들에게 쏟아지고 그만큼 사람들은 더욱 더 무력화 된다. 그들이 환호하는 새시대는 반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생각을 발달시킬 시간을 빼앗아 가버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보통의 인간이 어떻게 전세계나 전국에서 가장 다른 사람의 혼을 잘 빼앗아 가기로 유명한 사람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옛날 같으면 어설픈 스승의 느릿한 가르침속에서 자신의 생각이란 걸 좀 해볼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나 자신이고 싶으면 우리는 때때로 사막같은 곳으로 가서 혼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독이 되는지도 모르고 지혜의 중독상태에 빠져서 나중에는 자신이 없어지고 말 지경이다. 

 

미디어의 시대에는 미디어를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다. 하지만 이 말이 과연 그들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교단을 세우고 조직을 키워서 더 많은 제자들을 키워내는 사람이 가장 훌룡한 스승도 아니다. 그러니 새로운 시대는 어떤 의미로는 우리로 하여금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서 세상을 느끼고 사랑해야한다.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고 가슴깊이 느껴야 한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연예들에게 푹빠져서 자신을 잃어버린 철없는 아이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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