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매너손 논란과 일반화의 함정

by 격암(강국진) 2011. 7. 11.

2011.7.11

매너손논란이란게 생겼다고 합니다. 문제는 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남성들이 손을 내리고 있으면 몸에 손이 닿을 것이 걱정되므로 손을 올리고 있는, 소위 매너손이란걸 하면 좋겠다는 글을 올린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수한 답글이 달렸고 심지어 동아일보 기사에 나올 정도로 일이 커졌다고 하는 군요.  저는 누군가가 그 매너손 논란에 있어서 옳다던가 그르다던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거기서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행태자체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 그를 통해서 일반화를 하는 함정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애초에 지하철에서 손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매너있는 행위니 아니니 하고 일반론적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일반론적으로 옳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법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만세를 부르지 않고 있는 남자는 벌금형 10만원에 처한다. 웃기는 일이죠. 그런 극단을 주장한 사람은 없으며 모든 것이 법으로 되는게 아니기 때문에 도덕이나 윤리가 있는거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사실 관습화된 도덕이나 윤리는 그 자체가 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매너라는게 그렇죠.

 

여학교앞에 나타나는 바바리맨과 하의실종 패션을 입고 다니는 여자 사이의 차이를 과학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실상 차이를 말하기 힘듭니다. 왜 허벅지를 보여주는 것은 개인의 자유인데 바바리맨의 행위는 극악한 범죄입니까?  저는 여자들 패션을 비판하는것도 아니고 바바리맨을 옹호하는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런 것에 대해 '당연하지'라고 쉽게 넘어가면 관습화된 도덕률의 힘을 생각해 보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지하철에서 매너손을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때의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표현은 정중하고 문제가 없는 것같으나 누군가가 어떤 것을 매너라고 부르는 순간 그는 그것을 행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매너없는 사람으로 정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격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두고 이야기가 흘러흘러서 맞아 그게 매너인가보지라고 공감대가 형성되면 이제 자신들은 매너없는 남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미니스커트를 어떤 외국에서 입었더니 그나라에서 그여자는 당연히 창녀인게야라고 취급하더라고 해봅시다. 얼마주면 같이 잘수 있냐고 질문도 받는다고 해봅시다. 기분좋겠습니까? 손을 올리라는 말에 기분 나빠한 남자들은 적어도 일부분 올리지 않고 있는 자신들을 잠재적 성추행범 취급하는 것에 기분나빠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습이나 규칙이란건 사소한것도 다 굉장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알게 모르게 답답하게 지내는 것도 대부분 하나하나보면 별거 아닌 사소한 것들입니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와는 이게 다르다라는 규칙이 수없이 관습화된 가운데 억압이 일어난 것이죠. 여자는 시집이나 잘가면 된다고 말하거나 여자가 뭐 이렇게 깨끗하지 못하냐고 하거나 여자가 너무 못생겼다고 하거나 하는 말들이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은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성차별적 발언을 한다고 비판받고 교육받습니다. 

 

사실 사회적 억압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남자에게도 있습니다. 남자다울 것을 요구받는 것이 그런 예지만 반대로 어떤 규칙들을 매너로 하는 과정에서 억압을 받기도 합니다. 이걸 이용해서 초등학교에서 여학생이 남자선생님을 놀려먹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초등학교 여학생이 어쩌다가 손이나 어깨에 남자선생님의 손이 닿을 일이 생기면 갑자기 선생님  왜 제  몸을 만지고 그러세요 뭐 이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추행의 이미지를 던지게 되면 많은 성인 남자들은 당황합니다. 아이들이 이런 걸 아는 것이죠. 물론 그 말의 심각성을 충분히 모르니까 저런 장난을 치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것이 다 어떤 상황에 일반론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이건 이거다라고 단정하는 오류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관습과 규칙을 만듭니다만 관습과 규칙따위는 되도록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매너손논란도 결국 어떤 상황에서는 분명 남자가 손을 올려주는게 예의바른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는 여자가 주변 남자들에게 손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게 지나친 요구로 생각되는 상황도 있겠죠. 우리는 그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규칙을 만들 수도 없고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보다 포괄적인 윤리적 공감대위에서 적절한 행위를 모두 해줄것을 기대할 뿐입니다. 그걸 지하철을 탈 때는 남자는 손을 들고 있어야 한다라는 매너 혹은 일반론적 예절로 만들려고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이 일반화의 문제가 아주 자주 등장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일반화의 문제가 단순히 매너손논란에 대한 것뿐이라면 저는 이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슷한 문제는 전에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데이트할  때 더치페이를 해야 하는가 마는가 가지고 시끄러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왜 그것을 일반화해서 규칙으로 만들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행동하는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각자의 형편, 상황에 따라 각자가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상황은 다 다르니까요. 

 

이런 사회문제가 아니라 일상사나 가정문제에도 이 일반화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있는데 이 부부가 이런 저런 규칙을 만들기로 합니다. 주말에는 남자가 설겆이를 하고 청소를 해준다던가 아이를 유아원에 데려가 주는 것은 남자가 하기로 한다던가 하는 식입니다. 이런 규칙들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그런 규칙이 있는게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규칙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규칙에 매몰되면 좋은게 하나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자발적으로 서로 서로 돕는 것이 되어야지 이건 누가 한다는 의무식으로 규칙을 정하고 거기에 매몰되면 이젠 나는 그것만 하면 할도리를 다 했다라는 식이 됩니다. 점점 그렇게 되면 이젠 부부는 부부가 아니라 무슨 회사 직원처럼 됩니다. 그 각자의 의무에 대한 규칙이 인간관계를 망가뜨립니다. 각자 할일을 다했으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 이렇게 되는 것이죠. 애정이란 규칙을 넘어서 놀라움을 주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규칙으로 딱 절반씩 하기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말입니다. 절반이라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결국 너는 무슨 기여를 했나, 나는 무슨 기여를 한다는 식의 상호파악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파악은 대개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공평할 수가 없습니다. 그걸 따지다가 싸움이 납니다. 

 

이것은 부부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규칙을 정하는것이 필요한  일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규칙을  만만드는 일에 너무 빠지면 사회적 공동체가 약해집니다. 사회는 결코 기계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회처럼 복잡한 조직이 기계라면 끝없는 고장으로 절대로 움직일  리가 없는 기계입니다. 사회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돌아갑니다. 즉 내  일 남의  일 따지지 않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느정도 있기 때문에 이쪽 저쪽 문제를 서로 메꿔가면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 누군가가 엄격히 열심히 논리따지고 규칙따지기만 한다고 해봅시다. 때로 그런 사람들은 욕심꾸러기로 보일  때도 있고 세상을 구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시장논리가 원래 그렇다면서 자기가 유리할  때는 한푼도 손해 안  보겠다면서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재벌오너가 그렇고 엄격히 논리따져서 이런 저런 법을 만들고 복지혜택을 이렇게 저렇게 해서 분배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외치는, 법과 정책만 따지는 논리 중독형 좌파도 그렇습니다. 

 

결국은 그들은 같은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법도 구멍이 있으며 그런 구멍을 잘 활용하는 것은 머리좋고 비싼 전문가나 법률가를 고용할 여유가 있는 법인이나 재벌입니다. 세상을 덕지 덕지 법과 규칙으로 묶어놓으면 잠시 잠깐은 어떨지 모르나 결국은 그걸 이용해 놀고 먹고 축재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힘없는 개인은 더더욱 착취당하기 쉽습니다. 그 복잡성이 그 개인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되어도 그렇습니다. 결국은 공동체 정신이 없는 사회가 행복해질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없이 살기는 힘들겠지요. 교통법규없이도 착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살더라라고 까지 하기는 힘들것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진 사회적 관례나 관습도 대개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사회는 효를 중요시 합니다. 그게 전통적 합의죠. 그 규칙에 따라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런 저런 법률과 사회적 근간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 일반론적으로 생각하고 규칙을 만들고, 이건 이거라고 단정짓는 행위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규칙을 만들  때는 그것만 만들면 좋은 세상 올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좋은 책한권  더 읽고 생각한번 더하고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 한번  더 보여주는 것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 세상에는 이런 저런걸 규칙으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논객이 많지만 말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