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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고전 읽기

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읽고

by 격암(강국진) 2011. 8. 3.

이번 휴가기간동안에는 일리야 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읽었습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프리고진은 복잡계, 비평형계의 연구로 유명하며 일찌기 많은 사람에게 지적인 충격을 주었다고 말해지는 이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30년쯤 전에 집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해 느지막히 이 책을 읽은 저는 그다지 크게 감명받지는 못했습니다.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은 절대아닙니다. 이책은 당연히 많은 사람들에게 지적인 자극이 될만한 책이며 좋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책이 나온지도 30년가까이가 흘러서인지 그안의 내용이 그다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더군요. 


복잡계에 대한 연구는 지난 몇십년간 매우 유행했습니다. 저는 복잡계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한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온갖 분야에서 복잡계의 혼돈현상이나 동기화 현상을 밝히는 연구를 해서 이젠 오히려 식상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큰 감명을 받지 못한 이유는 두가지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첫째는 저의 지식의 폭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실로 놀라운 독서량과 이해력을 보여줍니다. 철학에서 과학에 이르기 까지 그 지식의 폭이 대단히 넓습니다. 사실 칸트, 베르그송,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이것이다라고 한두장씩으로 정리할수 있는 과학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두번째는 거꾸로 제가 이 책이 추구하는 문제의식에 매우 공감하는 바가 컷기때문에 책을 읽기 전에 기대치가 너무 컷던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지나치게 기대치가 커서 실망하는 경우는 종종 발생하지요. 냉정하게 다시 돌이켜 보면 이책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혼돈과 불확실성 그리고 시간입니다. 책은 먼저 고전역학적 과학의 발전에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고전과학에서 추구했던 것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진리의 세계, 불확실성을 사라지게 하는 계몽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으시시한 숲을 지나고 있다고 해봅시다. 거기에는 유령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고는 -실제론 과학자도 겁쟁이입니다만- 과학적 시각에서 바라보았을때 사라지게 됩니다. 공포는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으시시한 숲에 뭐가 있는가를 과학적 시각으로 쳐다볼때 그 불확실성은 사라지고 무서운 자연은 우리앞에 순수히 개발되고 사용되어지고 조작되어질수 있는 상대로 떠오르게 됩니다. 


우리는 심지어 시간마저 정복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모든 현재를 안다고 할때 미래는 인과론에 따라 혹은 뉴튼 방정식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뤄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사실상 미래는 이미 현재에 실현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길고 복잡한 작업라인을 가진 기계가 자동차를 전자동으로 만든다고 합시다. 우리가 스위치를 올리면 자동차가 만들어져 나옵니다. 다시 말해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자동차가 만들어져 나오는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세기 과학자들은 자신만만하게 뉴튼방정식이 모든 자연의 신비를 풀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과학자의 머리위에서는 그 본질이 양자역학적인 원리로만 이해될수 있는 핵융합에 따라 빛을 만들어 내는 태양이 떠있었습니다. 더구나 자연을 둘러보면 우리는 진화를 목격하게 되고 물속에 한방울의 잉크가 떨어지면 잉크가 퍼져나가는 소위 엔트로피 증가의 현상을 목격하게도 됩니다. 


양자역학이 등장하지 않아도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지난 몇십년간 비선형 동역학의 연구를 통해 잘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카오스 즉 혼돈현상이 생기는 계에서는 초기의 조건을 제아무리 정확히 알아도 미래는 예측불가능해지며 이때문에 우리가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양자역학은 기본적으로 확률성을 그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즉 원자의 붕괴같은 현상은 원리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확률적 사건이며 일단 원자수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을 관측함으로서 그 효과를 확대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쉬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입니다. 방사선 붕괴에 따라 고양이를 독살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폐쇄된 상자안의 고양이는 죽은 상태와 살아있는 상태가 양자적 상태 중첩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쉬뢰딩거 고양이 논증입니다. 


이 책은 일반인이 읽기가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똑똑하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저는 '우연히도' 물리학전공자에 철학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알고보면 대단히 어려운 것들은 아니라고 해도 책은 상당히 자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말하자면 미대생에게 기초중의 기초인 데생이라도 그걸 일반인보고 하라고 하면 엉망이겠지요. 그러니 물리과학생에게 기초적인 것이라고 해도 비전공자라면 쉽지 않을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책은 단순히 물리학에 대한 책이 아니라 방대한 지식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엄청난 지식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에 따라읽기가 쉽지 않은것이 당연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래서 약간 실망했습니다. 세부사항때문에 독자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일반인을 위핸 책의 미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이부분을 크게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좀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철학적인 부분도 그렇습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같은 책은 김용옥씨가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어려운 책이라고 말할정도의 저작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도 어려운 책으로 유명하지요. 이런 책들을 책한두장으로 정리해 넘어가면서 논의를 진행시키는 것이 절대금기는 아닙니다만 과연 독자에게 무엇을 남길것인가하는 고민을 하게 합니다. 인문계열은 과학부분을 쫒아가기 힘들것이고 과학계열은 철학부분을 쫒아가기 힘들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좀 비판적으로 써서 책이 별로라고 말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만 사실은 이 책은 제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책과 비슷한 책입니다. 즉 그 메세지에 크게 공감하는 책이라는 것이죠. 프리고진은 시간을 키워드로 잡습니다만 저는 비슷하게 불확정성을 키워드로 잡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세상에는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겉보기만 변할뿐 실은 변하는게 없는 적분가능한 역학계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원리적 수준에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비선형계는 그 불확실성의 바다안에서 질서를 만들어 냅니다. 


고전역학의 세계에서 불확실성이란 우리의 무지를 말합니다. 즉 상자안에 공이 2개있는지 3개있는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지 공의 갯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 객관적 진실입니다. 양자역학과 비선형동역학의 세계로 오면 객관성이 의심받으며 우리가 나아가 인식론적 논의를 생각하여 실제란 무엇인가로 철학적 사고를 깊게하면 더더욱 불확실성의 범위가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존재한다는 것이 뭔가 하는 것입니다.  


화이트헤드는 모든것이 확실하지 않고 변화하는 과정(process)라는 철학을 전개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구입했을뿐 제대로 보지 않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도 존재의 문제를 고민하는 책이더군요  이번에 프리고진의 책을 읽으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누가 무슨 말을 했나하는 부분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 확실한게 뭔가를 고민하는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고전역학을 불확실성을 인간이성으로 없앨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20에서 21세기의 지성은 불확실성이란 없앨수 없는 것이며 심지어 유익하기조차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즉 계몽주의 시대, 이데올로기의 시대, 고전역학의 시대는 인간이성에 대한 과신으로 불확실성에 눈돌리고 인간을 억압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세계를 만들어 왔다면 이제 인간은 불확실성을 다시 느끼고 그것의 고마움을 다시 알게 되는 지성적 성숙의 시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화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무엇이고 윤리와 선택의 문제, 자유의지의 문제를 이해해 가게 될것입니다. 프리고진은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해서 불확실성이 어떻게 만들어 질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불확실성의 철학에 반대한 아인쉬타인을 거론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프리고진이 이것이 결론을 내는 책이라기 보다는 연구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듯이 불확실성의 과학내지 철학은 완성되어 이책에서 제시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추구할 문제라고 제시된다는 쪽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새로운 학문의 토대가 되어 다윈의 진화론이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능가할 패러다임전환을 가져올 새로운 학문의 시대가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장님있었는가를 알게 되겠지요. 프리고진의 책은 그런시대가 온다면 미래 시대를 예견한 책으로 기록에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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