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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책 이야기 : 꿈꾸는 책들의 도시

by 격암(강국진) 2011. 9. 28.

2011.9.28

 

요근래 광대한 일반론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날이 많았고 그때문에 나는 좀 지쳤습니다. 주로 불확실성에 대한 원고를 다시 고치다가 일어난 일입니다만. 그래서 아내가 사둔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는 일이 즐거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림이 잔뜩 들어있는 환타지물이니까요. 해리포터와는 다르지만 해리포터 처럼 아동에게도 읽혀질 수도 있는 그런 책입니다.

 

저자인 발터뫼르스는 독일의 베스트 셀러작가로 만화가이자 소설가라는 특이한 작가라고 합니다. 책에 나오는 그림들은 그렇다면 저자가 그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은 하나의 모험활극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작가수업을 받는 한 애송이가 위험한 도시에 가서 스승을 만나고 글쓰는 법을 배워서 돌아온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니까요. 그런데 주인공은 공룡이고 나오는 인물중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이었던 사람은 있지만 그도 호문쿨루스라는 괴물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기괴한 캐릭터들과 기괴한 마을에 대한 묘사가 많이나오고 여러가지 활극이 많아서 마치 한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식상한 할리우드 영화와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독일식이랄까, 좀 더 색다른 풍미가 책에 있기 때문이 하나고 또하나는 그런 이야기 밑에 작자가 책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풀어 놓고 출판업자나 편집자에 대한 풍자를 하는 모습이 흥미롭고 웃기기 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빨리 책을 쓰라고 채근하는 편집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씌여진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최고 악당은 출판업계를 독점하는 출판업자이며 최고의 비극의 주인공인 호문쿨르스는 최고의 작가이면서도 최고의 책을 쓴다는 이유로 출판업자에게 괴물로 개조당하고 지하에 갇혀진 인물입니다. 이런 책을 쓰는 작가가 세상에 나가면 돈을 벌게해주는 시시한 책들이 팔릴 리가 없다는 거지요. 

 

꿈꾸는 책들의 도시란 출판업계에 대한 풍자이며 거기에 나오는 무수하고 기괴한 위험들이란 책들 자체의 위대함이나 위험함을 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문학에 대한 열정은 하나도 없이 그저 돈만 밝히는 출판업자나 편집자들이 만들어 내는 위험을 풍자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웃깁니까. 편집자가 빨리 책좀 써보내라고 이 작가를 얼마나 채근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채근을 당한 끝에 내민 원고라는게 편집자와 출판사가 괴물이고 살해당하는 역으로 출연하는 책이라는 사실이. 

 

책을 팔아먹는 최고의 악당 출판업자는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최면을 걸어서 쓰레기 같은 책을 마구 사들이게 합니다. 그도 인간이 아닌데 그의 모습은 상어의 머리를 한 얼굴과 송충이 같은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상어처럼 잔인하게 물고 벌레처럼 역겹다는 뜻이겠지요. 이 원고를 읽는 출판사사장과 편집자는 꽤나 웃었을 것입니다. 한방맞았다면서. 

 

이 책의 저자는 최고의 베스트셀러작가라고 작가 소개에 나옵니다만 책에 나오는 작가나 작가지망생들의 모습은 초라하고 비참합니다. 쇠락해서 땅에 묘자리 모양으로 구덩이를 파고 놀림을 당하면서 싸구려 시를 지어 팔아 먹고 사는 모습이 나오는가 하면 더할나위없는 역사상 최고의 작가가 쓴 글을 보고 글쓰기를 꺽는 대부도 나옵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인공은 그 대부역시 대단한 작가로 평가되며 진정한 명작을 출판했다라는 사실에 감동하게 되지요. 

 

작가는 성공하지 못한 작가지망생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도 합니다. 진정한 책의 가치와 평가는 시중에 책이 얼마나 유명하고 얼마나 많이 팔리는가와는 거의 무관하다라는 메세지를 이 책은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우연과 행운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주인공 미텐메츠는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은 작가 지망생입니다만 호문쿨루스가 수집한 오름의 도서관에 가서는 어리둥절해 합니다. 신들림이랄까 진정한 책을 쓰게 만들어 주는 우주적 호응같은 것으로 번역해야 할 그 오름으로 씌여진 책들만 모여진 곳에 갔더니 주인공이 모르는 책들만 잔뜩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잠시 뭘 이런 허접한 책들이 있나라고 생각하다가 거기서 대부의 책을 발견하고 반성합니다. 위대한 대부의 작품이 선입견으로 무시되었듯이 자신도 다른 책들을 그저 껍데기만 보고 무시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책을 읽자 그 책들은 너무도 무시무시한 중독성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옵니다.

 

이 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브흐링족입니다. 브흐링족은 지하에서 한명이 하나의 작가의 작품을 외우면서 그 작가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종족이며 무섭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화신이라고 불러야 할 순진한 종족입니다. 

 

미텐메츠의 작가수업과 그의 스승 호문클루스 그리고 모든 작가들에게 하나씩 지정되는 것같은 브흐링족의 존재같은 것은 흔하지만 잊혀지기 쉬운 메세지를 사람들에게 던집니다. 진정한 작품의 가치는 내 내부에서 얼마나 오름에 가까워지게 해서 글을 썼는가 하는 것이며 어딘가에 존재하는 브흐링은 그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문학작품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열정에 따라 살아야겠다. 외적인 성공 실패의 평가에 좌절하지 않고 내적인 기준에 따라 살아야겠다는 메세지를 던짐으로써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괜찮은 책으로 완결됩니다. 그리고 헐리우드식의 너무 쉬운 너무 상업화된듯한 메세지가 아니라 장인이나 마니아의 냄새가 나는 독일식이라고 생각되는 글쓰기가 괜찮은 뒷맛을 남기는 군요. 

 

작가는 글속에서 가장 신비로운 문장은 이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브흐링은 아직 한권의 책도 쓰지 못한 미텐메츠에게 격려를 하면서 무조건 시작하라 그러면 저절로 써진다고 격려합니다.  베스트셀러작가가 거만하게 쓰지 않고 힘들었던 초보작가때의 감성을 유지하며 따스하게 써내려간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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