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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없는 국민통합이란건 가능한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11. 10. 20.
미국에서는 링컨이나 조지워싱톤이 대통령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들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혁명을 대표하는 료마같은 사람이 큰 상징적 역할을 한다. 이들에게 있어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모두 폭력과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폭력을 행사했건 혹은 더 큰 폭력을 막았건 그런 시대에 훗날에 남는 족적을 남겼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그시대가 바로 국민통합의 시대, 정체성 탄생의 시대였고 훗날 미국과 일본 번영의 초석을 놓은 사건 혹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이나 메이지유신시대의 전쟁없이 미국과 일본은 진정으로 태어나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은 이스라엘같은 나라와 다르다. 이스라엘도 전쟁을 치뤘고 치루고 있지만 그 내부로 가보면 한번 망했던 나라 혹은 최근에 만들어진 나라답게 여러가지 다른 믿음들이 조화롭지 않게 공존해서 국민통합의 정도가 다르다. 우리나라도 영남 호남 지역감정같은게 있는데 그런 편가르기 감정의 끝이 어딘가를 보고 싶으면 이스라엘 뉴스를 보거나 르완다 학살 같은 역사를 읽으면 된다. 끝없는 전쟁과 죽음이 즐비하다. 그렇게 생각했을때 다 한국사람이라는 개념하에 움직이는게 아니라 지역차별 같은걸 만지작 거리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폭탄을 건드리는지도 모르는 철부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미국과 일본이라고 모든 국민들이 모두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에는 우리나라나 이스라엘보다 더 큰 다양성이 있다. 하지만 그 다양성이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을 깨버리지 않는 것은 사회적 정체성이라고 할 어떤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는 국민모두가 어느정도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기독교인인 가운데 그안에서 차이가 있는 식이다.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이 대화를 하고 공존하는 식이 아니다. 사실 종교를 넘어선 포용력을 가진 정신적 정체성이 없다면 각각의 종교가 공존할수 없다. 각각의 종교가 각각의 집단이 결국 내부적 시각만으로 자신을 볼때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외부에 폭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공평에 대한 감각이 서로 다르다. 그들은 인간이 인간이 먹어치우는 돼지에게 공평한 것처럼만, 유럽인들이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공평한 것만큼만 서로에게 공평해진다. 

미국에는 자유라는 이름의 종교 혹은 이상이 있다. 그렇기에 국민통합이 가능하고 그렇기에 여러사람들이 모여살수 있는 기틀이 된다. 모든 다양성이 포용되지만 자유라는 종교에 대한 반항에는 관대함이 없다. 이단으로 처벌받을 뿐이다. 그리고 이 국민통합은 바로 남북전쟁과 같은 폭력적 역사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결코 토론과 설득만으로 이뤄진것이 아니다. 

일본도 번으로 나뉘어 각각의 번주가 왕처럼 살았지만 외세의 위협이 커지자 천황을 중심으로 단일한 일본이란 정체성을 탄생시켜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변화역시 폭력적이었다. 결코 토론과 설득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질문의 의미와 맥락

폭력없는 국민통합이란 건 가능한 것인가, 이런 질문은 그저 학문적인 질문인가, 혹은 당장의 우리에게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질문인가. 나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며 이와 관련해서 노무현의 죽음이란 한국역사에 이미 큰 의미를 가지지만 더더욱 큰 의미를 가지게 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아이엠에프가 터지기 전까지 한국의 기득권을 구성하던 사람들이 아이엠에프가 터지면서 정권을 김대중에게 민주정권에게 이양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엠에프란 사건은 말하자면 저기 구름위에 천국이 있다고 말했지만 천국이 없다는 것이 알려진 사건이었다. 거품의 붕괴고 주류세력의 믿음의 붕괴다.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왔다. 한국이 아이엠에프라는 아픔을 겪는 정도로, 그정도의 폭력적 아픔을 겪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낼것인가 아니면 다시 옛날의 것을 유지하고 더더욱 큰 폭력만이 답일수 있게 만들것인가 하는 것이다. 

10년의 민주정권끝에 이명박정권이 들어섰고 노무현은 죽었다. 김대중도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이 너무 과격하게 변화를 추구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은 이명박과 차이가 없으며 친대기업적이었고 부동산 거품도 못잡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선택권이 국민에게 있는, 대기업에게 있는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즉 전두환식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부자재산을 빼앗고 언론을 장악해서 국민을 세뇌하는게 아니라 어느정도만 할테니 알아서 스스로 자제하라는 비폭력적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몇몇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부동산 거품이 반드지 꺼질텐데, 예를 들어 부동산 소유세 확올리면 부동산 거품이 꺼질텐데 그것도 모르는걸보면 바보거나 기득권세력의 간첩이라고 노무현을 욕한다. 노무현이라고 능력이 무한대고 어리석지 않았을수는 없겠지만 뭔가가 확 변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폭력이 된다. 그리고 누가 죽는다. 우리는 용산의 참사같은 것에서 4대강 공사현장에서 그런걸 배우지 않는가.

그리고 노무현은 죽었다. 대기업은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국민들은 이명박정권들어서 줄줄 새는 세금의 폭포들을 보면서 얼이빠지는 상황이다. 언젠가 부터 우리는 1조나 10조 이야기하기를 아주 가볍게 하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은 돈없어 교육못받고 결혼도 못하며 자살하는 사람이 급증하는데 사람없고 홍수나는 강변에 자전거도로 깔고 있다. 나는 노무현의 죽음이 결국 비교적 비폭력적 변화를 행하고 국민적 통합을 이뤄내는 것을 거부한 사건이라고 해석된다. 재벌은 결국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한 것이다. 

뉴라이트가 나와서 김구는 테러리스트고 일본이 한국을 발전시켰고,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인것이고 하는 말들을 뱉어내고 있다. 일제때 순사의 외손녀인 나경원이, 그돈받아 재단세워 부자로 떵떵거리고 살아온 아버지의 딸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와서 박원순의 할아버지가 자발적 징용이냐 강제적 징용이냐 같은 것을 논한다. 박원순의 월세방이 크다 작다 같은 것을 논한다. 이쯤 되면 이건 국가정체성의 와해다. 미국에서 마틴루터킹은 테러리스트고 노예제도가 좋은것이며 영국국왕의 통치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원순이 이기냐 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오세훈을 겪고도 박원순이 나경원과 비등한 지지도를 보여주는 상황이 지속될수 있다는 것자체가 이 시대가 어떤 시대냐를 보여준다. 

폭력없는 국민통합이란건 가능한 것인가

결국 폭력적이지 않은 변화, 폭력없는 국민통합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자발적으로 어떤 중심적 가치, 규약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하고 스스로 족쇄를 차는 행위를 요구한다. 사회적인 환경이 그런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런 저항이 거세면 거셀수록 변화는 격렬하다 못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될것이고 결국 그러다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요즘 여기저기서 재벌가의 4대 5대들이 사업을 벌여서 자영업자들을 죽게 만든다고 한다. 베이커리나 음식점 체인같은 것을 해서 말이다. 확실히 한국은 자유국가이므로 사업에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를 요구하고 싶으면 그 자유만큼 전체 국민들에게 우리는 모두 하나의 공동체의 일원이며 어느 정도의 기본적 공동체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시키지 않으면 곤란하다. 돈가진 자들은 법위에 군림하고 세금도 안내고 군대도 안가면서 없는 사람에게만 질서지켜라, 자유다 운운하면 사람들이 공감할리가 없다. 지금 청와대나 한나라당, 나경원의 모습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더러운 꼼수를 전부 보여주면서 자기 자신만 그게 안보이는 사람들이다. 내곡동 이명박 사저는 돈의 규모로 볼때-결국 돈의 액수가 중요한것이지 땅의 넓이가 뭐가 중요할까. 평당 백원하는땅 만평 산다고 누가 너무 넓다고 욕할필요 있을까-노무현의 몇십배다. 그러나 그차이가 안보이는 수준을 넘어 노무현의 사저가 아방궁이다. 

만약 나경원같은 사람, 이명박 같은 사람이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이미 가진 것들로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해 국민적 공분은 끓어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 이런 말같은거 안하고 살면 국민들이 덜 흥분할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살펴봐도 가식적 행위를 제외하면 사회적 공공봉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나와서 사회적 중대사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겠다고 주장할때 사회적 공분이 발생한다. 

미래는 정말 알수 없는 것이지만 때로는 한국이 괴멸적 폭력을 피해갈수 있었던 마지막기회는 결국 노무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도 기득권은 여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잘살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죽었다. 이제 설사 문재인이나 안철수 같은 제2의 노무현이 나타나서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물을것이다. 당신도 개혁의 연착륙을 시도할거냐고. 노무현처럼 참다가 탄핵도 당하고 하다가 죽을거냐고. 아니면 죽기전에 상대를 쳐버릴거냐고. 이대로 계속 무상급식 같은거 이야기하면 빨갱이운운하는 나라를 유지시킬거냐고. 

모순의 압력은 누적되어 있다. 설사 누가 조화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걸 사람들이 들을것인가가 문제다. 히틀러에 의해 일어난 세계대전이 과연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라고만 해석되어야 할것인가. 왜 사람들은 히틀러를 선택하는가. 왜 보다 폭력적인 방식이 사람들에게 유일한 방법으로 들리게 되는가. 노무현의 죽음과 부관참시앞에서, 그런 질문을 피하가기는 어렵다. 

맺는말

미래는 모르고 상황은 별로 안좋다. 안철수나 박원순이 정치하겠다고 나온 상황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상황이 안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국도 공지영도 다 그렇게 말한다지 않는가. 정치에 신경 안쓰고 살기위해 정치이야기한다고. 

정말 극적으로 천천히 분노와 모순의 압력을 빼내면서 개혁을 안착시키고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미래가 올건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 지금도 믿을수 없는 속력으로 고령화되는 한국은 이대로 1-20년이면 거의 재건불능의 늙은 나라가 될것이다. 마치 전쟁이 젊은 사람만 골라죽인것같은 젊은이가 없는 나라, 한두세대가 뻥뚤려있느나라가 될것이다. 그걸 막자고 들여온 외국인노동자들이 더더욱 국민통합을 어렵게 하면 남는건 르완다, 이스라엘의 분쟁상태다. 써버린 세금을 메꿀 젊은 사람이 없으니 사람들이 국적포기하고 도망가기 시작하면 더더욱 사람이 안남을 것이다. 경제적 국가부도, 정신적 국가부도면 끝이다. 아이엠에프보다 훨씬 더 큰 비극을 겪고 그냥 나라가 죽어버리던지 아니면 하나의 통합된 국가로 재건되던지 하는 폭력적 변화를 우리는 피할수 있을까. 

나는 폭력을 피할수 없다고 말하기 위해 이글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을 찾기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답은 전쟁이나 폭력적 혁명이 아니다. 답은 문화적 내적 혁명이고 정신의 혁명이다. 그게 뭐냐는 아직 아무도 정확히 모르고 내가 아는 것만 쓸려고 해도 한개의 글로 쓸 일이 아니다. 도란 무엇입니까 뭐 이런 질문이나 마찬가지니까. 결국은 문화적인 혁명, 신나는 난장판과 정신의 자유의 획득이 필요하다. 이 답은 넓고도 넓은 길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좁은 길이기도 한것같다. 일본이 외세에 의한 위기에서 메이지유신을 하고 하나의 국가로 태어나듯 우리도 그런 변화와 국민통합이 절실하다. 우리에게도 료마가 있는지는 알수 없지만 말이다. 아니 이미 료마는 우리가 죽여없애 버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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