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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가 채운 광장과 시국단상

by 격암(강국진) 2011. 12. 1.

나꼼수가 일을 냈다. 서울시 한복판을 가득채운 모습은 미국소고기 파동때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때의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자발적 후불제로 모은 성금이 3억 41만원이라고. 이것은 기록적인 금액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꼼수에 다녀와서 감동했다는 글과 트윗을 쏟아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저런 잡음도 들린다. 나꼼수를 싫어하는게 당연한 집권당측에서 SNS를 검렬한다던가 나꼼수를 고발한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꼼수의 한사람 한사람이 한 말이나 쓴 글을 비판하고 끌어와서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나꼼수는 마초집단이라고 말한다던가 하는게 그것이다. 오늘 아침 이택광 철학교수는 나꼼수는 정치의 예능화라는 트윗을 했는데 그게 리트윗이 되서 나도 보게 되었다.


소고기 수입 파동이후  아주 큰 촛불집회는 이제까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심지어 FTA반대집회도 나꼼수 공연때와는 비교할수 없는 숫자의 사람만을 모았다. 이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광화문을 가득채울정도로 촛불집회를 해도 세상은 그냥 흘러가더라는, 무기력함을 경험한 탓이 아니었을까. 광화문을 가득채워도 집권당은 국민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유모차부대를 고발하고 명박산성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더더욱 가열차게 언론을 장악하고 미네르바를 고발하고 4대강공사를 밀어부쳤다. 그리고 이제 FTA같은 것도 맘대로 재협상하고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말았다. 대중은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뭉치는게 아니라 대표자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같다. 


나꼼수 공연에 모이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지난 소고기수입반대 촛불시위가 가졌던 한계를 돌파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무력감을 돌파할수 있는 것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일까. 


민주당은 없다


그 대표자의 역할은 반집권당세력의 대표라는 점에서 어쩌면 민주당이어야 할것도 같지만 요즘 시국에 민주당이 그런 역할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민주당 소속사람 얼마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한 이후 이미 죽었다. 죽어서 좀비가 돌아다니면서 민폐만 끼칠뿐이다. 민주당은 없어져 주는게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심한 말 같지만 민주당이 지난 몇년간 한일중 기억에 남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나라당 대선후보군이었던 손학규가 대표를 하고 있다. 


나는 손학규를 포함해서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개인으로서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잘모른다쯤이 현실이다. 그러나 정치는 명분이다. 한나라당출신으로 제대로 과거에 대한 세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손학규의 원죄고 탄핵에 참여한 정당으로 이름이 남는다는 것은 민주당의 원죄다. 


더 큰 문제는 사실 따로 있다. 그것은 민주당이 시국을 이끄는 정당이 아니라 시국에 끌려다니며 걸리적 거리기만하는 정당이 된지 오래라는 사실이다. 그냥 세상에서 무슨 흐름이 나오면 거기 곁다리 끼는 것만 한다. 이래서는 마치 골치덩어리 큰형같은 존재다. 아무 능력도 없이 권위만 세우면서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래도 내가 큰형인데 그러며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와같은 것을 잘 보여준것은 바로 서울시장선거였다. 박원순 당선의 최대걸림돌은 돌아보면 나경원이 아니었다. 민주당이라는 암초를 어떻게 잘 피해야 하는가가 최대 난관이었다. 민주당은 우리도 서울시장 시켜주면 잘할수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이제까지의 무력한 모습을 보건데 민주당에 쓸만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민주당에서 결국 선택받아 올라올것 같지가 않다. 결국 개혁다운 개혁을 민주당은 할 동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비전도 지도력도 없으니까. 이번 FTA정국에서도 결국 아무런 행동도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내부적으로 의견조율도 안될것이다. 김진표 원내대표같은사람은 대놓고 FTA 좋은 일이라고 하면서 통과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현정부가 FTA를 지금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떠오르는 대표들


이런 가운데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가건 아니건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안철수, 문재인, 나꼼수 박원순 정도다. 지금 야권단일화 이야기가 무수하지만 나는 큰 흥미를 못느끼겠다. 그건 나쁘게 볼일은 아니지만 굳이 나쁘게 보자면 일종의 기득권야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야권의 기성정치인이나 집단이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뭉쳐서 한나라당이겨보자고 하는 논의를 한다. 그런데 그런 논의가 성공해서 그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세력이 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가. 사실 그것은 대중적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이나 신인이 떠오르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이것역시 안철수나 박원순을 통해서 잘 보여진다. 박원순은 힘겹게 민주당과 경선을 치루고도 그래도 민주당에 들어오세요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현재의 대중적 관심을 보면 대권도전같은 것을 언급한적도 없으며 정치경력도 없는 안철수가 과반이상의 지지를 받는 최고의 차기대통령 대세론의 주인공이다. 민주당후보는 어디에 있는가. 최대의 야당이라는 민주당은 대중의 관심밖이다. 문재인이나 유시민같은 사람도 어느정도 주목받지만 그들도 노무현의 적자라는 점 또는 개인으로서 주목받는바가 크지 무슨 소속정당을 기반으로해서 그런게 아니다. 


이것이 대중의 정서인데 어떤 야권연대로 정국주도의 기준을 잡겠다는 것은 뭘까. 시간에 따라 정서도 변해가는 것이지만 지금의 대중정서대로라면 안철수가 문재인하고 손잡고 정당만들어서 박원순이 거기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그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 대중 정서다. 그리고 그게 분명 가장 확실한 정권교체 시나리오일것이다. 물론 그럴수 없다는 것이 지금 별로 인기없는 수많은 야권정치인, 정당들이고 그런 반응은 기득권을 놓치기 싫은 마음때문이라고 안할수 없을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어쨋건 모든 것은 나를 통해서라고 하고 싶을 것이다. 


개혁적 비전, 컨텐츠란 무엇인가


종편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종편을 걱정하지만 나는 개혁세력의 컨텐츠가 걱정이다. 개혁세력의 컨텐츠건 보수의 컨텐츠건 정치의 컨텐츠란 사람은 응당이렇게 살아야 하고 그래야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이다. 무슨 주의가 어떻고 무슨 선거개혁이 어떻고 하는 모든 것들은 때로 너무 수단에 매몰된 나머지 그것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들릴때도 있지만 다 수단에 불과하며 그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그 밑에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림에 딸린 것이다.


보수의 컨텐츠란 무엇인가. 세상에 믿을 놈하나도 없거든. 인간은 본래 썩었고 조선놈은 특히 썩었어. 결국 돈이 최고야. 돈벌게 해줄께. 공산당막아줄께. 이게 보수 컨텐츠의 본질이다. 그래서 특히 전쟁의 트라우마로 공포에 떠는 분들, 사실 치료를 받아야 할 불쌍한 분들에게 잘먹힌다. 세상 사람들이 믿을 만하지 않다고, 요즘 사람들 다 썩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수 컨텐츠의 영향을 받은 분들이거나 그걸 선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보수세력은 물론 성추행사건이나 부패사건을 통해서 스스로 인간은 믿을만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그것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서 분노와 미움만 생기면 그건 보수 컨텐츠에 넘어가는 것이다. 결국 보수 컨텐츠에 대한 최대의 적은 믿음과 사랑이다. 공동체 정신이다. 


사실 보수컨텐츠는 이미 잘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sns의 발달로 세상이 훨씬 투명해 졌기 때문이다. 원래 허수아비를 가리키면서 유령이라고 사람들 겁주는 행위는 불투명해야 잘된다. 예전같으면 천안함사태 북한이 그랬다고 하면서 얼마나 사람들 공포와 분노에 떨게 만들었겠는가. 그런데 지금은 약발이 그렇게 잘 안먹힌다. 대기업 영웅만들기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미국에서 현대차가격바로 두들기면 나오는 시대에 그러기 쉽지 않다. 


문제는 진보나 개혁의 컨텐츠다. 세상이 안바뀌는 것은 세상이 불투명했던 탓도 있지만 진보나 개혁세력이 컨텐츠가 없어서인 것이 크다. 한나라당이 강해서가 아니라 반한나라당이 자기철학이 부실한게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인기없고 한계많은 엉터리 진보컨텐츠란 우리도 독일이나 프랑스같은 선진국처럼 살아보아요라던가 우리 정의로운 세상에 살아보아요 같은 것이다. 이것들은 보수의 부패와 비리를 고발할때 어느정도 효과를 보이지만 주류가 되기엔 형편없는 컨텐츠다. 


선진국사람 흉내내고 살면 행복해 지는가? 흉내가 무슨 행복을 주는가. 정의가 행복을 주는가? 아니다. 


적어도 진보 개혁세력이 말하는 정의는 아니다. 그건 대개 무한한 엄숙주의같은 정의다. 바로 어제까지 곽노현을 진보나 개혁세력의 슈퍼스타처럼 말하다가 무슨 사건 하나터지면 별로 따져보지도 않고 내몰아버리는 정의다.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의고 한명숙이 재판에 시달리게 하는 정의다. 나는 법이나 정의가 좋은게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그걸로 행복해지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최근들어 정치인으로서 최고로 성공한 컨텐츠를 들고나온 노무현의 컨텐츠는 뭘까. 상식이다. 상식이 있는 사회가 되면 불안에 떨지 않고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진보개혁세력의 컨텐츠 부재는 문학이나 영화같은데서도 잘 나타난다. 진보의 영향이 들어간것같은 작품들의 공통점은 인간이 매우 수동적이며 가난과 부당한 권력에 당하고 살아서 불행하다는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일어서고 외적인 환경과 무관하게 행복해 질수 있다는 것이 없다. 미국의 작품은 가난한 사람들을 그려도 그안에서 행복한 아이들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즉 자본주의의 종가에는 가난과 행복은 별개라는 인식이 깊게 깔려있는데 정작 한국의 진보는 불행하고 주눅들고 수동적인 인간형만 죽 늘어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당컨텐츠는 뭔가. 없다. 한때 그것은 독재정권타도였다. 그런데 이제 독재정권은 타도되고 없다. 전두환도 조용히 산다. 그러니 할말도 없고 떠오르는 생각도 없고 지지도 없는 것이다. 


대중은 안철수와 박원순에게 지지를 보낸다. 그들은 지금 야권과는 컨텐츠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중심주의, 공동체주의를 자주 말한다. 감수성을 자주 말하고 행복이 반드시 성공과 돈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전에도 한가하게 정년을 보장받은 대학의 노교수들이 그런 말을 던진적은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나 박원순은 그들의 삶으로 그걸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쉽고 안정적인 길을 택한 적이 없다. 항상 불확실한 길을 택했고 그럼에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세를 떨치고 성공한 사람들로 말해진다. 


살만큼 다 산 노인들보다 젊은이들은 이들에게 더 큰 희망을 느낀다. 기성세대가 주는 교훈은 어딘지 모르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안철수나 박원순의 메세지가 훨씬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도 그렇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토건의 이명박 대통령이 일자리 얼마나 많이 만드는가. fta로 왕창 없애기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비획일주의, 공동체를 강조하는 사람들, 중소기업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 젊은이들에게 누가 희망이겠는가.


맺는말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내가 왜 문화적 철학적인 것에 대한 고민없는 야권통합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가를 알것이다. 한나라당은 행복한 나라 못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에 반대한다고 해서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스스로를 진보주의로 말하고 한나라당에 극렬하게 반대한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내가 느끼기에 합리적인것이라던가 행복한것에 대해 별 고민이 없다. 그저 어떤 악을 앞에 세워놓고 이세상의 모든 문제는 저 악만 없어지면 다시말해 한나라당만 없어지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지 않다. 


중요한 건 컨텐츠다. 그게 없으면 통합도 이뤄지기 힘들뿐만 아니라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세력이 되고 정권을 바꿔도 행복한 나라 못만든다. 나찌가 떠서 독일이 행복해 졌는가? 


안철수나 박원순은 행동가이지 이론가가 아니다. 그점은 좀 아쉽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김용옥같이 이론적으로 뭔가를 설명할 사람은 아니기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모든 걸 다할수는 없다. 문필가나 철학가나 사상가가 해야 할 일이다. 


유시민은 안철수가 이건 반대고 저건 찬성이고 하는 입장표명을 많이 안했기 때문에 판단 이전의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그런 사안별 입장표명을 하는 것자체가 그 선택이 뭐냐 이전에 어떤 철학의 선택이다. 진정한 실용주의자는 획일적인 단어에 매달리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자체에 파고들어서 그안에서 상식적인 합리적인 답이 뭘까를 고민할 뿐이다. 미리 어떤 이름으로 세상을 재단해서는 이건 안돼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보쪽 사람들이 너 신자유주의자아니냐고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것은 그 본질을 봐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 빨갱이새끼들이 하면서 욕하는 것과 별로 다른게 없다. 지금 현재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fta나 기업형 슈퍼마켓의 문제는 이념적으론 이런 기계적 획일화된 사고에서 사실 출발되는 것이다.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는 것은 머리나쁜 사람들의 경우라고 안철수는 말한다. 사실 요즘세상에 뭘 안바꾸고 살수가 있는가. 기술적 진보가 이렇게 빠른데. 그런데 바꾼다고 해서 뭐든지 다 내던지고 어떻게 살아갈수가 있는가. 뭐가 진보고 뭐가 보순가. 


쓸떼없는 관념적 분석과 행복을 가르키는 손가락 분석은 그만두고 본질적 컨텐츠에 집중해야 한다. 뭐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 그래야 믿음도 생기고 사람도 제대로 고르고 선거도 이기고 행복한 나라도 만들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길이있고 거기에 무력감을 돌파할수 있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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