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한국에서의 과학대중화

by 격암(강국진) 2012. 3. 19.

2012.3.19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은 이미 알것이다. 나는 한국에서의 과학대중화라는 것에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볼까 한다.

 

왜 과학 대중화라는게 필요한가.

 

과학은 좋은 것이니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게 좋다라는 것이 과학 대중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는 없다. 그 보다는 왜 과학은 대중에게 좋은 것일까, 그리고 과학 대중화는 왜 과학자에게 중요한가를 짚고 넘어가는게 필요할 것이다. 그 중에서 왜 과학이 대중에게 좋은 것일까의 부분은 과학 대중화에서 뭐가 문제인가를 짚는 부분과 겹치므로 왜 과학자에게 과학대중화가 중요한가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첫째로 그래야 사회적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사회적 지원 위에서 과학연구가 이뤄지지않는다면 과학은 시장논리에 지배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학연구는 전부 당장 제품만들어 물건 팔고 돈을 버는 초단기적 연구만으로 제약될 것이다. 

 

둘째로, 돈이야 소수의 지각있는 분들이 대준다고 해도 여전히 사회적 관심도라는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가 영화를 만드는데 돈을 대준다고해도 관객이 없는 영화가 명작이면 뭐할것인가. 관객의 반응과 자극은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데 아주 핵심적 부분이다. 영화와 과학이 어떻게 같은 것인가라고 말할지 모른다. 물론 그 둘은 다르다. 그러나 과학에서도 대중의 관심과 참여는 중요하다. 

 

결국 과학적 연구라는 것도 가치 판단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사회적 관심이 없는 가운데 연구를 하는 과학자란 말하자면 다른 사람과의 소통없이 홀로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대중의 생각과 한 연구원의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다른 것이 자연스럽지만 나는 그 한계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며 배운다는 말이 있다. 과학자는 대중과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스스로의 출발점을 점검하고 배우게 된다. 그렇지 않을때 과학자는 소수의 매니아들한테나 통하는 기괴한 영화를 만들어 내는 영화감독처럼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연구에 바쁜 대학교수들이 기꺼이 학부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과학대중화 뭐가 문제인가.

 

한국에서의 과학대중화의 근원적 문제는 과학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의미란 그 하나의 존재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의 관계속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 빨간 지갑이 하나 있다고 하자. 우리는 이 지갑이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친구에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럴때 야 이거 1억짜리야라고 말하거나 야 이거 무슨무슨 브랜드야 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면 그것이 나와 친구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그저 돈의 액수나 무슨 유명한 브랜드에서만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과학은 사람들과 제대로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대개 재미나 돈같은 가치와 연관되어져서 설명되어진다. 다시 말해 과학의 의미를 알려주려는 노력은 흔히 야 이런 이론은 한국을 부자 만들어 줄거야라던가 한국을 유명하게 만들어 줄거야라는 식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최고라고 불리우는 업적들이 돈이나 명성보고 이뤄지는 일은 없다. 심지어 기업가도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한 가치를 추구할 때 진정으로 성공하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대단한 업적은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나 돈같은 이유로 진정으로 인생을 갈아넣는다고 할만큼 집중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선구적인 업적은 대개 적어도 처음에는 외롭게 행해지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안하는 걸 먼저하다가 선구적인 업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다 그걸 비웃고 그 가치를 폄하하는데 과연 돈이나 재미같은 단순한 가치로 그걸 계속하게 될까?  노벨상 수상자에게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탈수 있냐고 물었던 한국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에 대해 노벨상 수상자는 노벨상 수상을 위해 노력해서 노벨상을 받는 사람은 없다고 답했다고 하는데 아주 당연한 답이다. 

 

물론 재미나 돈도 중요한 것이다. 그걸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면 과학자는 서커스 단원같아 진다. 뉴튼이 그의 물리학을 발전시킨 이유는 재미나 유명세때문이 아니라 신의 법칙을 찾는다는 종교적 신념때문이었다. 더구나 재미나 돈이라는 관점은 굉장히 쉽게 변한다. 지금은 세상이 인공지능때문에 난리지만 30년전 한국에서 기계학습을 연구한다고 하면 그걸 비웃는 사람이 많았다. 이것은 학문을 보는 눈이 얄팍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럼 뭐가 필요한가.

 

진정한 과학 대중화에는 철학과 문화적 배경 즉 인문학이 필요하다. 이공계와 차별된 지식을 팔아먹기 위한 존재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이 세계에 풍부한 의미를 보여주고 인생에 대해 의미를 발견하게 만들어 주는 인문학 말이다. 그래서 단순히 돈이나 서커스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세상에서 사람들이 보게 될때 그들은 과학의 의미를 보다 진실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젠베르크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이미 양자역학에 관련된 유명한 연구를 하게 된 이후에도 기차 값때문에 고민하는 생활을 했고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과학이란게 재미나 흥미거리로 하는거라면 이렇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성공한 이후의 화려함에 속아서는 안된다. 진정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성공할 기약도 확실치 않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걸 계속하고 그러다가 성공해서 역사에도 남고 많은 화려함도 얻게 되는 것이다. 

 

과학은 상업이 발달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부터 추구되어진 철학이다. 바로 이 세상이 어떻게 된걸까를 고민하는 철학이며 이 세상이 어떻게 된 것일까를 추구하는 이유는 신학의 연장선상에서도 그러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자기 존재의 고민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우리 몸에 대한 고민, 이 세상에 대한 고민이 과학을 만들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은 우리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의 몸은 모두 원자로 이뤄져 있고 무거운 원자들은 별들이 핵융합을 통해서 에너지를 만들고 남은 핵폐기물같은 별의 찌거기, 별의 잔해들이다. 그런 것들이 다시 모여서 우리 몸을 이룬 것이다. 과학의 정신은 물론 합리주의다. 우리가 이런 저런 지식과 논리를 모아서 세상의 어려움을 돌파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그 근간에 있다. 과학의 의미는 언행에 일관성이 없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에도 있다. 우리가 모두 과학의 정신을 이해할 때 그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것 뿐이겠는가. 인문학을 배워야 과학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과학을 알아야 인문학의 의미도 알 수가 있다. 의미와 관계는 서로 짜맞춰져서 점점 더 높은 과정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달콤한 캔디를 먹는 것이나 서커스에 가는 구경거리도 아니고 유명천재과학자를 영화배우처럼 숭배하는 것에 대한 것도 아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의 일부로서 거대한 우주선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밖에 없다면 그건 마치 빨간지갑에 대해 가격이나 브랜드만 보고 감탄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저 실험은 무려 1조나 돈이 들었대하면서 과학기사를 읽는 것 말이다. 그런 사람만 있다면 아름다운 디자인에 대한 추구도 생활과 관련된 연구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므로 진정 좋은 지갑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맺는 말

 

사람들은 종종 아인쉬타인이나 퀴리부인 같은 사람들이 한국에 태어났어도 훌룡한 과학자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은 한국의 교육시스템이나 경쟁시스템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행해진다. 즉 그런 천재들이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해도 한국에서는 대단한 일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국에서 그들이 태어나고 성장한다면 그들은 과학의 의미 자체를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즉 시스템에만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문화에도 문제가 있다. 그들은 좌절을 하는게 아니라 애초에 과학자같은걸 꿈꾸지 않고 과학에 열정을 가지지 않을런지 모른다. 보다 가치있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할지 모른다. 

 

문화나 가치판단에 문제가 있을 때는 하기 어려운 시스템개혁의 기회를 맞이해도 문제가 생긴다. 여전히 틀린 가치판단을 반영한 시스템을 만들 것이다. 과학의 대중화란 사람들이 인생과 삶의 질에 대해 보다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그러한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과학이란게 그런 질문들과 소중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이 지혜에 대한 것이라면 과학도 마찬가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