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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고전 읽기

어윈 쉬뤼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by 격암(강국진) 2012. 4. 26.

쉬뢰딩거는 양자역학의 파동방정식으로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물리학자였습니다. 그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알려지기 전에 씌여진 것으로 고전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는 책입니다. 나는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었기에 그 책소개를 해둘까 합니다. 제가 읽은 것은 영문판이지만 찾아보니 한국에 2007년판 번역본이 나와 있군요.





이책은 사실 물리학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좀 지루하고 어려운 책일 수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비전공자에게는 따분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좋은 책이며 짧은 책이니만큼 영문으로 읽어도 되리라고 생각합니다.그리고 그 내용은 매우 흥미롭지만 본질은 매우 단순합니다. 


생명현상의 본질


쉬뢰딩거가 주목한 생명현상의 본질은 바로 불확실성입니다. 쉬뢰딩거는 생명현상이 아주 특이한 현상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생명현상은 통계적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통계적 법칙이란 이런 것입니다.


통안에 동전이 백개가 들어있는데 그 통을 뒤집고 몇%의 동전이 앞면을 보일까를 생각해 본다고 합시다. 그럼 우리는 반반의 확률이므로 약50%가 될것을 기대합니다. 실제로도 그러하며 만약 동전의 숫자가 더더 커져서 만개나 백만개가 된다면 결과는 여러번 한다고 해도 매번 50%에 매우 근접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계적 법칙입니다. 한번은 이렇게 나올수도 있고 저렇게 나올수도 있는데 거기에 관련된 입자의 수가엄청나게 크기때문에 어떤 예측가능한 간단한 결과가 나옵니다. 


그런데 생명현상은 이런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듯이 생명체에는 유전자가 있는데 이것들은 결국 고분자화합물입니다. 이 고분자 화합물을 편의상 물속에 떠있는 스카프 같은 거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스카프가 하늘하늘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물이 스카프를 무작위로 때리기 때문이죠.  


만약 진짜로 유전자가 이런거라면 돌연변이가 매순간 일어나서 생명은 지속될수가 없을거라는 것을 쉬뢰딩거는 지적합니다. 생명은 작디 작은 유전자에서 시작되는데도 -즉 통계적 법칙이 적용될 정도로 큰 물건이 아닌데도- 이 유전자는 각종 열에 의한 진동을 견뎌냅니다. 그렇게 해서 아빠의 눈이 검은 색이면 아들의 눈도 검은색이 되는 안정적인 유전적 계승이 일어납니다. 


양자효과의 중요성


당시는 양자역학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은때 였는데 쉬로딩거는 여기서 물질의 안정성과 양자역학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원자 수준에서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인 상태만 허용되게 만듭니다. 컴파스가 있다고 한다면 90도와 45도 그리고 0도로 벌어지는 것은 허용되지만 그 중간은 안되게 되는 그런것입니다. 


만약 고전역학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각도가 다 허용된다면 그 컴파스는 열적인 간섭에 의해 조금씩 미끄러져서는 시간에 따라 0도와 90도 사이를 왔다갔다할것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적인 효과때문에 0도에서 45도나 90도로 가려면 약자비약 즉 커다란 한방의 충격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온도가 엄청나게 높지 않으면 컴파스는 일단 한가지 각도에서 시작하면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결정들 즉 고체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체라는게 가능한게 이런 현상때문입니다. 양자효과는 아주 작은 곳에서만 있는거라고 생각하지만 물질의 안정적 구조를 만들어 내는 효과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그저 물렁물렁한 것들로만 이뤄져 있었을 것입니다. 


즉 쉬뢰딩거는 유전자가 있는 크로모좀은 일종의 고체 즉 딱딱한 물질로 물질적 안정성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안정적으로 생명을 재생산하는게 가능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커다란 한방의 충격이 있으면 물질구조가 바뀌는데 예를 들어 X선 같은 방사선을 쬐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원리를 찾아서


쉬뢰딩거는 생명현상이 우리가 보통의 물질에서 보는 것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생명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원리는 말하자면 생명은 그 놀라운 안정성을 통해서 미리 예정된 움직임을 하는 시계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본질적 특성은 불확실성이며 열적인 요동이라고 지적하고나서 생명은 이 불확실성을 이겨내고 정밀하게 움직이는 시계와 같은 특성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쉬뢰딩거의 주장을 좀 바꾸면 이렇게 될거라고 봅니다. 


모든 것은 이미 당신의 유전자에 씌여져 있다. 


책을 끝내는 마지막 장에서 그는 이러한 생명의 원리가 어떻게 자유의지라는 주제와 상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인도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해석을 낳을수 있는가를 간단히 말합니다. 


맺는 말


물 한컵에 한방울의 잉크를 떨어뜨리면 그 잉크는 물에 퍼져나갑니다. 이것이 물리학적으로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런데 생명은 그렇지가 않지요. 하나의 인간이라는 물체는 죽으면 부패하고 결국 흩어져 버립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인데 살아있는 인간은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차도 타고 하면서 그 형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채 수십년을 삽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지만 물리학자의 눈에는 이것은 매우 괴상한 현상이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하는 것이 생명원리를 찾는 기본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불확실성과 생명의 안정성을 주목하고 이와 같은 책을 쓴 쉬뢰딩거의 통찰력과 지식은 경탄할 만한 것이지만 생명은 단순히 안정성만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과연 어느 부분이 그 생명의 본질적 부분인가는 복잡한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이 우리의 자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사람이 팔다리를 모두 잃어도 우리는 이사람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심장이 멈춰서 죽으면 물질적으로는 같은데도 시체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시하는 이유는 생명의 안정성때문인데요. 실제로 우리는 쉬뢰딩거가 지적한대로의 안정성때문에 인간 부모를 두고 태어나서 결코 개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부모가 인간이면 자식이 인간인게 당연한게 아니다라는게 바로 쉬뢰딩거가 지적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안정성은 당연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의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세상의 무수한 불확실성을 경험하면서 -결코 유전자가 미리 예측하여 그 정보를 가지고 있을리가 없는- 자라납니다. 인간 어린이가 그 불확실성때문에 늑대가 되지는 않지만 불행한 사건이 한 인간의 내면을 완전히 바꿔서 전혀 다른 인간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는 흔한 것입니다.


이때 과연 우리는 인간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봐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인간의 본질이 정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이라는 생명현상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견해에 완전히 몰두하지 않을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이 그저 뼈와 살이라면 쉬뢰딩거가 말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자유의지는 정신의 영역이고 쉬뢰딩거가 자신의 주장에 근거해서 자유의지를 말하는 것은 좀 무리한데가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간단히 소개했을 망정 좋은 책이고 많은 유명 학자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책이므로 한국의 독자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그냥 읽으면 좀 어려울것같아 그 대충의 내용을 여기에 소개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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