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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인생의 선택에 대한 생각

by 격암(강국진) 2012. 5. 13.

2012.5.13

우리는 일생일대의 선택이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선택이던 이따금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안에 빠지게 되는데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요.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몇마디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선택은 정말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일까. 

 

제가 대학교때 생각이 납니다. 대학에 가서 좀 공부를 해보고 나서 물리학이란 학문이 이제까지 쌓아 올린 지식의 양이 너무나 어마어마하다는 것에 압도된 날이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속력을 생각하니 의욕이 별로 나지 않더군요. 그 무렵 저는 교수님에게 나중이 되면 사는게 좀 쉽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은 그럴 리가 있냐면서 더 어려워질지는 몰라도 더 쉬워지지는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의 어린 제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은 대학교때 공부한 것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생각이었던 것같습니다. 이 시기를 잘 보내면 전혀 다른 시기가 온다는 생각이었던 것같습니다. 

 

그 말은 문맥에 따라 틀리지 않습니다만 공부란 결국 계속된다는 것, 다른 어려움이 계속 나타난다는 것을 저는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어리석은 질문을 교수님에게 던진 것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대학생이 대학생의 고민이 있듯이 교수는 교수의 고민이 있지요. 선택과 고민은 끝없이 계속됩니다. 우리가 돌아보면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인생을 바꿨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말도 분명 어떤 문맥에서는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경우 좀 더 오래 살다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인생은 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자연히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왼쪽길로 가는게 좋은가 오른쪽길로 가는게 좋은가라는 한 개의 선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만 인생은 그 하나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왼쪽으로 가기로 했다면 그 이후에 그래서 거기서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르고 그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은 단순히 열심히 성실히 한다가 아니고 또다시 끝없이 계속되는 크고 작은 선택들을 포함하게 됩니다. 사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한순간의 하나의 선택이 인생을 바꿀까요? 하나의 선택, 한 시기의 성취가 인생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대부분은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선택들의 가치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의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꾼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끊임없이 크고 작은 선택을 해서 수많은 우연이 우리 인생길을 수정한다는 말도 옳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나는 나일뿐이더라는 것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 내부에 깊숙히 존재하는 질문이나 욕망이 결국 나를 어떤 방향으로 자꾸 몰아가는 것같습니다. 실은 좋은 여자와 좋은 가정꾸려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면 그렇게 가고 윤리적인 문제나 과학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흥미를 덮어버릴 수 없는 사람은 자꾸 그리로 가게 됩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높은 곳에서 하늘에 던져진 깃털은 어떻게 됩니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하지만 깃털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진다는 하향성을 잊어버리는 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바닥에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은 이런저런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번 이런 선택을 했건 저런 선택을 했건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선택이 인생을 결정한다라는 것은 진리이지만 그 반대도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결국 나는 나이며 그 선택들이 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운이 좋을 수는 없습니다. 풍파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쉽사리 긍정하기 전에 다시 생각해 봅시다. 물론 이런 말은 문맥이 중요합니다. 이 말들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자살하면 인생이 끝인데 왜 차이가 없겠습니까. 그러니 거기에는 몇가지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이 당연히 있습니다. 

 

자기를 찾기. 

 

먼저 여기서 하나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자기이지 않고 이런 저런 계산에 의해 외부에서 누가 주는 충고에 의해 다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정도차이가 있을 뿐이며 완전히 남에게 끌려가는 것도 나쁘지만 그런걸 모두 무시하려고 하는게 반드시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행복이란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가족이나 이웃이나 다른 사람에게도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발가락이 아프다고 하는데 그걸 자꾸 무시하면 결국 발가락을 잘라내지 않는한 그것때문에 행복해질 수 없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저런 계산이나 다른 사람의 추천을 따르다보면 우리의 삶은 가야할 곳을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이 사람 생각, 저 사람 생각이 원하는 곳은 다른 곳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도달한 그곳이 애초에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보다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흔들리면서 일관성이 없게 살면 성공도 하기 힘들뿐더러 설사 남이 보기에 성공을 한다고 해도 내적으로 행복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노벨상을 받아도 빌게이츠처럼 부자가 되도 내적인 것이 다른 것을 향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반드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 않았던 길을 후회할 겁니다. 소시민으로 사는 사람은 유명인의 삶을 부러워하지만 성공해서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 된 사람은 자신의 삶의 무게가 싫고 소시민적인 삶을 부러워 할 겁니다. 그러니 답은 내 안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적인 욕구는 타고나는 것이든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든 사람마다 다르니 다른 사람들이 여기가 좋아라고 말하는 목적지가 나에게도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는 스스로가 삼킨 것이든 남이 주입한 것이건 워낙 많은 것들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 저 밑에 있는 진짜 목소리가 항상 잘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 경우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물리학과에 갔고 인공신경망 연구를 하다가 뇌과학분야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날때마다 사색하거나 철학책을 펴거나 글을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가만히 뒤돌아 관찰해보니 다 같은 욕망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굴러가는가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가치와 윤리의 문제, 선택의 문제가 마음 저 밑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문제를 향하는 마음때문에 물리학이란 학문이든 뇌과학이란 학문이든 철학이든 사회에 대한 관심이든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왜 나는 법대나 의대에 안가고 물리학과를 선택했으며 왜 인공신경망이든 뇌과학이든 흥미가 있었으며 왜 그중에서도 이런 저런 문제를 고민하고 이렇게 저렇게 살았는가를 생각하면 저 밑에서 같은 고민이 항상 오락가락 했었더라는 것입니다. 그건 친구나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 보고 싶었던 욕망에서 출발되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어쨌건 제 마음 저 밑에 있었으며 그런 고민들이 제가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 그것을 외면하고는 가짜 인생을 사는 것같을 거라는 느낌이 제 마음의 바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늘상 어떤 마음의 목소리가 들렸던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제게도 많은 '바람'들이 불었습니다. 이름을 날린다거나 사랑에 빠진다거나 누구를 미워하게 된다거나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거나 가족에 대한 의무를 생각한다거나 심지어 제가 현장에서 직접 겪은 쌍동이 빌딩테러사건이나 대일본지진 같은 재앙도 저를 흔드는 바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성격상 조용히 사는 것을 원합니다. 뭐랄까 수많은 군중속의 하나로 떠내려가듯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런 탓인지 의식한 것은 아닌데 계속되는 선택속에서 몇번에 한번은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가고 선택을 그리 하게 되었던 것같습니다. 결국은 나중에 보면 중력에 따라 바닥으로 떨어지는 깃털처럼 한쪽으로 떨어지면서 살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정약용도 귀향가서 조용히 사니 비로서 자기를 잡았다는 글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자기를 완전히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자기의 인생을사는게 아닙니다. 그런 둔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는 끝없는 선택 속에서 자기를 찾게 됩니다. 반복되는 선택속에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 있는 그것을 향해 나가게 됩니다. 자아발견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노력해서 달성하는 일생일대의 성취처럼 이해합니다만 내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나는 나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자아발견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껍데기에 빠지는 오류

 

또하나 중요한 것은 껍데기에 빠지는 오류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면 화가가 되어야 하고 과학을 연구하고 싶으면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옳은 말이지만 절대적인 진리는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법관이지만 법을 깨는 것이 직업인것같은 사람도 있고 남을 돕는 공직에서 장관이나 대통령으로 살아도 실제로는 남을 해치는 일로 시간이 다 쓰는 사람도 있으며 제자를 가르치고 연구를 하는 교수지만 실제로는 남을 해치고 사기를 치는 것이 직업인 사람도 있습니다.

 

제 말은 이름과 실질이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사람들이 작가님, 교수님, 장관님, 영감님 하고 불러주면 기분은 좋을지 모릅니다만 이런 껍데기에 너무 많이 빠지게 되면 결국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껍데기 즉 어떤 자리나 이름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그러니까 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초등학교에는 껍데기 우등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딱 초등학생으로서 선생님에게 칭찬받을만한 답을 잘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들은 영악하여 무슨 답을 하면 어른들이 칭찬을 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렇게 해서 모범생이 되고 칭찬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껍데기 우등생들은 껍데기에 신경을 너무 써서 진정한 내적 성장은 오히려 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인쉬타인은 실제로는 열등생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천재가 어렸을때도 천재가 아니었던 이야기는 고민해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인쉬타인은 어린 나이에 어리석은 고민을 했기때문에 나중에 큰 업적을 세운겁니다. 딱 칭찬받기 좋은 행동만 하는 모범생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 문제는 당연히 초등생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저는 학력고사 전국1등을 했었다던 교수들, 서울대학교 수석졸업했다던 교수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원때 제가 처음 해외학회에 가서 느낀 것은 그런 이야기들이 우물안 개구리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교수님들이 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건 상대적이고 사람마다 다 다른 이야기니까요. 그러나 수준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자들, 세계적인 연구프로그램들을 주도하는 학자들앞에서는 대학교때 학점이나 대학입시성적같은 것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대학입시에서 영어 만점, 수학만점 같은게 세계 최고수준 지성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게 정말 어떤 지성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오히려 어떤 시험시스템에 완전히 매몰된 문제풀기 기계가 되었다는 이야기라서 숨기고 싶어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게 영문학의 고전을 얼마나 읽었는가, 진정한 수학재능을 가졌는가를 말해줄까요? 

 

우리는 이름에 흔들리고 가진것, 자기가 이뤄낸것 에 집착하게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은 그저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장을 제약하거나 언젠가 깨져나가서 허무하게 느껴질 껍데기인 것이죠. 남에게 자랑할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주는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

 

다시 선택의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결국 우리는 조용히 자기에게 물어보고 조금은 덜 걱정하면서 살 필요가 있습니다. 한번 잘못 선택하면 고생은 무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긴 인생길 10년 20년단위로 생각하면 쉬운 길로 가고 자기 마음속의 목소리를 버리고 한 사람이 반드시 자기가 생각한 그 길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쪽이든 길은 있으며 결과적으로 자신이 처음에 생각한 것과는 달라질지 모릅니다만 우리는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면서 선택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담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다만 자신을 잊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껍데기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에 카이스트에서도 자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세계 유명대학에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버드를 나오면 다 인재일것 같지만 멍청한 사람도  보게 됩니다. 삶이란 길고 복잡한 것이라 이거다라고 쉽게 이야기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반응하는가 하는 것은 물론 아주 중요합니다. 타인이 부정하는데 혼자서 내 삶을 긍정하고 살기에 한국은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개인주의가 약하니까요. 하지만 타인에게 칭찬받지만 내적으로는 공허한 삶도 결국 성공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가족여행을 계획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저는 스스로 잘 생각해보고 즉흥적으로 결정하는게 최고다라는 말을 합니다. 즉흥적이란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잘 생각해보고 확 결정한다고 하는데 잘 생각하는 단계에서는 이런 저런 정보를 안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확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그 모든 정보와 계산을 뒤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에 집착하면 내가 지금 어디로 당겨지고 있는가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정보를 집어넣고 산책이라도 하다가 마음이 어디로 당겨지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거면 됩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 되든 재미있는 것이 나올것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그럭저럭 길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한번 잘못된 선택을 하면 여행이 완전히 엉망이 될거라고 떨 필요가 없습니다.  설사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다고 해도 어차피 미래를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유한한 에너지와 시간을 가진 우리가 현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런게 아닙니다. 종종 집착과 지나친 계획이 우리의 즐거움을 다 파괴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좀 가볍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산 더 더 많이 하면 더 좋은 선택이 나온다는 것은 대개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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