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1
바보는 세상 살기가 힘듭니다. 사기도 많이 당하고 따돌림도 당합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하기에 앞이 캄캄합니다. 저는 바보가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바보가 아닌 척 하지 마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크게 부풀려 실제보다 더 훌룡한 사람인 척 하는 것이 일상이며 심지어 권해지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무엇보다 경쟁에 이기려면 하나를 가져도 열을 가진 것처럼 떠들어야 하는 세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바보가 바보가 아닌 척 하는 것은 길게 보면 결국 득이 될 수 없으며 엄청난 손해가 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바보는 바보이기때문에 사람들을 오랫동안 속일 수가 없습니다. 바보는 바보가 아닌 척을 하려고 해도 결국 실패합니다. 그저 남에게 더 꼴불견이라는 비웃음이나 당하고 말뿐입니다. 다만 남들이 당신에게 그것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때로 바보는 자신이 멋지게 세상을 속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그게 더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런 허영과 착각을 누가 이용할지 모릅니다. 사기꾼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 바로 똑똑한 척하는 바보입니다. 바보는 바보가 아닌 척하는 꼴불견스러운 짓을 할수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들키고 맙니다. 통찰력있고 경험많은 사람앞에 가면 바로 들키게 됩니다. 바보가 바보인데도 바보가 아닌 척하고 세상을 속이려고 하면 결국은 오직 자신만이 세상을 속이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바보입니다.
게다가 바보가 바보가 아닌 척 하려면 누가 속이지 않는다고 해도 살기가 힘듭니다. 자신보다 더 똑똑한 척, 더 아는 척했다고 해봅시다. 바보가 아닌 척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바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요. 바보가 아닌 척 하면 결국 바보는 이런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런 경우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못하면 바보라는 사실이 탄로 날테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더 좋은 일입니다. 대개 바보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댓가를 치룹니다. 남이 보이지 않는데에 가서 지겹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공들여 모은 돈을 써야 하고,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서 삽니다. 심지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얼마 안되는 사람들을 배신하기도 합니다. 이러면 알게 모르게 그 바보를 미워하는 사람이 늘어 납니다. 이런 식으로 바보의 삶은 정말 위태롭고 고된 것이 됩니다. 바보는 자신의 삶을 바보가 아닌 척 하기위해 모두 소모하게 됩니다.
바보가 바보가 아닌 척 하는 데에는 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재능이 있어,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 나는 잘난 인간이야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스스로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당연히 우리는 삶에 대한 기대치를 올리게 됩니다. 난 잘나고 재능있는 인간이니까 멋진 삶을 살게 될꺼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보의 삶은 괴로워 집니다.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하니까요.
바보라서 모든 걸 포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바보가 뭘하든 상관없는 일입니다. 다만 기대치의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걸 알려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드메달은 오직 40세가 안된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상입니다. 그것을 수상하게 되면 전도유망한 천재수학자라고 공인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쓴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약식의 자서전이라고 할수 있는 이 책을 보면 저자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재능있는 친구들때문에 늘상 기가 죽어서 지냈다고 합니다. 대단한 일을 증명하기 직전에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먼저 증명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럴때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자신에게 나는 바보니까 라는 말을 반복해서 말하면서 삶을 견뎌나갔습니다. 나는 바보니까 나는 바보니까 라고 거듭말했습니다.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까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자신의 실패도 견딜만한 것이 되었습니다. 필드메달을 따는 천재도 자신이 바보라고 거듭 말해야 견딜만한 것이 삶인데 바보들이 잘난척하고 살면 그 삶은 지독히 쓴 맛만 날뿐입니다.
바보는 배신을 당하고, 어이없는 실패를 하고, 손해를 보게 됩니다. 사람은 대개 객관적 수준에서 가진 것이 없어서 불행한게 아니라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자신이 얼마나 뭘 기대하는가에 따라 불행감을 느낍니다. 적어도 바보들은 그렇습니다. 그러니 바보가 스스로가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살면 가슴에 나는 상처를 견딜 방도가 없습니다. 바보나 저지를 실수를 하고 일을 날려먹었으면 나는 정말 바보구나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똑똑하다를 외치면 결국 온세상이 삐뚤어져있다는 결론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일종의 과대망상증적 음모론이나 정신분열증자의 환상에 빠지면서 바보는 좁은 세계로 밀려들어가게 됩니다.
사실 바보가 바보가 아닌 척하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이기 때문에 바보가 아닌 척하는 바보들은 대개 본질적으로 비사교적입니다. 반드시 바보들은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기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후배앞에서 친구앞에서 가족앞에서 자식앞에서 부하직원 앞에서 항상 가면을 쓰고 틀에 박힌 말을 합니다. 권위주의의 뒤에 숨습니다. 이렇게 되면 물리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건 안만나건 아무도 안만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실된 자기를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바보는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갑니다. 실제로는 된장국끓이는 법에 대해 궁금해도 체면을 위해 관심도 없는 최신식 컴퓨터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바로 틀에 박힌 말을 하고 권위주의의 뒤에 숨은 사람의 대화법입니다. 관심도 없는 것에 관한 부스러기 지식은 다 흘러나가고 형태를 이루지 못합니다. 결국 바보는 세상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점점 더 바보가 됩니다. 바보의 삶은 정말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보가 바보가 아닌척을 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짧게 보면 이득이 된다고 할지 몰라도 결국은 댓가를 크게 치루게 됩니다. 바보가 바보가 아닌 척을 해봐야 좋은게 없습니다.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
하지만 바보가 그래 나는 바보야라고만 한다고 해서 바보의 삶의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뭐뭐하지 말라고 하는 부정적인 원칙이 아니라 뭐뭐해야 한다는 긍정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원칙일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착한 사람이 되라는 차원에서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보는 바보라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기에 나오는 나름대로 절박하고 눈물나는 원칙입니다.
말한 것처럼 바보는 바보라서 눈물나게 삽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남에게 잘 속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 바보는 세상을 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보는 결코 혼자서 살 수가 없습니다. 바보가 느끼던 느끼지 않던 주변의 수없는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것이 바보입니다. 나는 바보인데도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바보라서 잘 모르는 것일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손들, 무수한 호의들이 당신을 보살펴주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손들과 호의들이 없었더라면 당신은 어딘가로 인신매매로 끌려갔을지도 모르고, 사기를 당하거나 심지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보가 은행에 가서 계산을 잘못하거나 돈을 흘리면 누군가가 와서 계산을 고쳐주고 돈을 주워줍니다. 바보가 빨간불인데도 건널목을 건너려고 하면 누가 잡아줍니다. 이상한 사람이 와서 바보를 데려가려고 하면 누군가가 경고를 하거나 그런 사람들이 동네에 오지 못하게 하거나 신고를 합니다. 그렇기에 바보가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보를 보호해주는 손이 없으면 바보는 세상을 살 수가 없습니다. 바보니까요.
그렇기때문에 바보가 세상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다른 사람에게 필요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는 것뿐입니다. 바보지만 도움이 되고, 바보지만 기특하고 착한데가 있고, 필요하니까 세상이 그 바보를 돌봐주게 됩니다. 바보인데다가 고집만 세서 주변에 온갖 민폐만 끼치는 바보가 되면 사람들은 지치게 될것입니다. 하나둘씩 꼭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바보의 일은 이제 내가 알바없다고 말하게 될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들과 호의들이 사라질 때 바보의 눈에는 아무것도 사라지는게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바보의 삶은 극히 위험해 집니다.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하니까 바보에게는 그게 무리이지 않냐고 하거나 무슨 봉사단체 같은데 들어가서 자원봉사하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둘 다 사실이고 둘 다 사실이 아니기도 합니다.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원칙은 지나치게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니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돈을 잘버는 사람이 남에게 더 필요한 사람이고 결국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말은 돈잘버는 직업을 가져라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바보에게 돈 잘 버는 사람이 되라라고 말한다는 것은 대개 무리지요.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내 말은 꼭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바보에게 말해지는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는 돈이나 지위따위를 떠나서 알몸의 인간으로서 나는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있는가, 누군가가 나를 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바보라도 돈이 많으면 어쩌다가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을 가지면 자신이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돈이나 권력이나 지위는 몸바깥의 것이라 생기기도 하는가 하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원하는게 내가 아니라 내 돈이라면 내가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죠. 오히려 경우에 따라 지나치게 많이 가진 바보는 그 많이 가진 것때문에 비극을 겪게 됩니다.
바보는 바보라서 실패도 합니다. 그래서 알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들에게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보라도 사랑은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를 열심히 해서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것은 돈이 없고 지위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보의 사업이 실패했다고 해서 자원봉사단체에서 이제 당신의 봉사는 필요없습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 인기가 없는 낮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돈이나 지위로 뭔가를 하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이라고 하니까 먼데서 찾을 것도 없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우리는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했으므로 내 할일은 다하고 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극단적인 경우지만 부모의 경우에 그저 자식의 교육비를 대고 있는 것일뿐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시간은 거의 가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저 비싼 옷이나 장난감을 사주고 비싼 학비를 대주고 아이를 위해서라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이런 저런 교육시설을 뱅뱅 돌게합니다. 이런 경우 그 부모란 결국 돈으로서의 의미밖에는 없습니다. 알몸의 인간으로서 그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있는게 아닙니다. 월급봉투를 가져다 준다거나 가사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배우자로서의 할일을 다했다라고 끝난다면 부부는 서로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있지 못한 것일 것입니다. 집안이 홀랑타서 알몸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한 사람으로 느낄 수 있을때 평상시에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 손이 되고 보이지 않는 호의로 서로를 지켜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몸의 인간이 되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고 낮은 자리, 인기가 없는 방향을 쳐다볼 때 바보는 자신이 정말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일뿐 잘난 사람인가 아닌가가 핵심은 아니니까 잘나기만 했을 뿐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의 삶도 어느정도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맺는 말
세상의 모든 악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악은 바보가 바보가 아닌 척하는데서 나옵니다. 그럴 능력도 의도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자리가 아닌데 어떤 자리에 앉아서 아는 척을 하니까 세상이 엉망이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겠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왜 나여야 하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고민없이 임무가 중요한 자리에 올라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다 해봐서 안다고 말하는것, 그게 악의 시작입니다.
모든 사람은 물론 어떤 의미에서 바보입니다. 누구와 비교하는가에 따라 바보일뿐 아니라 어떤 분야를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바보가 됩니다. 아주 똑똑한 과학자라도 주말에 수다를 잘떠는 아내의 친구사이에 끼면 바보가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바보가 된 느낌이 드는게 아니라 바보인게 맞습니다. 그 과학자는 소위 말하는 사교적 잡담의 기술방면으로는 바보니까요. 바보인데 바보가 아닌 척하면 분위기는 점점 더 썰렁해집니다. 대화의 맥을 누가 팍팍 끊고 있는데 바보는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바보입니다. 아내의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서비스하거나 짐이라도 들어준다면 그래도 인정받을지 모르나 뒷방에 앉아서 손님을 맞은 아내를 계속 불러내서는 이거 찾아라, 저거 내놔라하고 있다면 방해만 됩니다. 힘있고 돈잘버는 젊은 시절은 그래도 될지 모릅니다만 이래서는 나이가 들면서 뒷방늙은이가 되면 집에 있는 강아지만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도 역시 바보는 스스로 바보임을 인정하고 남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위해 상냥해져야 살아갈 방도가 생기는 법입니다.
'주제별 글모음 > 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선택에 대한 단상 (0) | 2013.01.15 |
---|---|
젊은이는 왜 보수화 되는가 (0) | 2012.12.24 |
인생의 선택에 대한 생각 (0) | 2012.05.13 |
실패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되기위한 조건 (0) | 2012.03.13 |
걱정이란 무엇인가. (0) | 2011.09.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