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21세기 무형의 자산

by 격암(강국진) 2012. 6. 23.
반응형

우리는 워낙에 돈으로 직접 환산할수 있는 것의 가치만 보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무형의 자산에는 둔감하다. 예를 들어 꿈의 가치라던가 문화의 가치같은 말을 들으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만 느끼는 것같다. 즉 낭만주의적 환상비슷한 것으로만 받아들일뿐 그런 것이 정말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보지 못한다. 그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우리가 노예적 삶을 살기 때문이다. 노예적 삶의 특징은 명령을 받고 그것을 행하는데 초점이 있을 뿐 뭘해야 하는가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고 생각하지 말도록 훈련받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뭘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열심히만 하면 잘살수 있다는 말은 황당한 말이 아니겠는가.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엇을 어떤 문맥에서 할지가 정해진 후에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뭘하는지 어떤 문맥에 의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지면 우리가 주어진 세상의 잣대에서 가치환산이 잘 안되는 것의 가치에 눈멀게 된다. 


세상의 혼돈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이런 혼돈속에서 역사를 잠깐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필요한 무형의 자산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같다. 


미국의 경우


미국의 남북전쟁은 1861년에서 1865년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자고 하는 북부와 유지하자고 하는 남부와의 전쟁으로 알려져있다. 이 전쟁은 물론 링컨이 이끄는 북부의 승리로 끝이 났고 그가 한 게티스버그 연설은 미국에서 아이들에게 외우도록 권장되는 명연설로 남아있다. 


뭔가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것이 어떤 문맥에 놓여져있는가를 봐야한다. 예를 들어서 북부는 공업생산을 추구하던 사람들이었으며 남부는 농업생산을 기반으로 하던 세력이었다. 이 남북전쟁의 승리가 있고 나서 50년뒤에는 세계1차대전이 벌어지는데 이때 미국은 이미 엄청난 산업국가로서 세계대전에 들어가는 물량을 생산했고 세계전쟁을 치루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또 다른 문맥도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1차대전을 거치는 그 과정이 영국이 중심이 되어 세계를 이끌던 대영제국의 시대가 무너지고 미국이 패권국가가 되어가는 과정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남북전쟁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첫째로 미국이 산업국가로서 발전을 택했다는 것이고 둘째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국가적 정체성의 확립을 행한 것이라는 점이다. 링컨이 거듭 인용되고 링컨이 게티스버그연설에서 거론한 미국독립선언문의 정신이 자꾸 이야기되는 것에는 미국이라는 사회가 독립전쟁을 통해 어떤 꿈 혹은 이상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결판을 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만약 남북전쟁에 해당하는 미국의 역사가 없었거나 남부군의 승리로 끝나서 미국의 문화가 우리가 알던 그것이 아니었을때 미국은 세계패권을 차지할 준비가 산업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되지 않아 그 역사는 크게 달랐을 수있다. 


한나라의 이상향은 나중에 그 나라가 영향력을 넓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왕이란 반드시 힘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이 권력자가 아니길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나 왕이 무조건적으로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이면서 왕좌를 유지하거나 차지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왕은 나는 이런 나라를 만들것이라는 이상향이 있어야 하고 그 이상향 아래서 비록 왕이 가장 큰 몫을 가져가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달성할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런 사람이 왕이 될수는 없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무한한 생산이라는 미국의 꿈으로 세계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으며 그래서 결국 세계의 중심으로 한시대를 풍미할수 있었다. 그것은 물론 간단하게 결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인 고통끝에서 사회적 합의로 미국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키워왔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본과 중국


이와 관련해서 거론할수 있는 나라가 두개가 있는데 바로 일본과 중국이다. 20세기의 역사에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하던 소위 골든에이지가 끝나는 1970년대 이후 한동안 일본의 성장세는 바로 영국 대 미국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다. 즉 산업생산국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다가 슈퍼파워가 된 미국은 20세기 후반에서 메이드인제팬을 크게 성공시킨 일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세계 최대 채권국이던 미국은 어느새 빚쟁이가 되고 있었으며 영국의 스털링이 흔들리듯 미국의 달러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슈퍼파워는 일본이 될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슈퍼파워가 되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이를 두고 스스로 세계헤게모니를 포기한 유일한 나라라고 말한사람도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이 슈퍼파워가 될수 없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반드시 거론해야할 것은 바로 미국의 꿈을 대신할 일본의 꿈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꿈이란게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업국가로서의 일본을 만들어 낸것은 유신혁명이었다. 그러나 유신지사들이 만들어 낸것은 정치적으로 보면 시대에 매우 뒤진 황제에게 충성하는 국가였던 것이다. 황제를 중심으로 열심히 일하는 일본인을 만들어 낸 것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그 중한가지 문제가 바로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무모함을 막을수 없었다는 불합리성의 문제다. 두번째는 세계적으로 일반화할수 없는 사회적정체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일본은 지금도 윤리적 측면에서 허약하다. 진정한 독립적 인간형이 역사속에서 자라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사회에서 역사에 대한 반성이 약한 것은 이때문이다. 반성을 안하는게 아니라 반성이 뭔지를 이해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두가지 모두에 관련된 문제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세계대전의 패배후 일본은 미국에 의해 재건되었고 일본헌법은 천황숭배같은 것을 중심으로 씌여져 있지 않다. 그러나 남이 만들어준 질서와 헌법이란 그 사회의 진정한 정체성이 될수 없는 법이다. 자신들이 스스로 합의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일본이 슈퍼파워가 되었을때 세계를 어떤 곳으로 만들것인가와 같은 꿈이 있냐고 묻는다면 일본에게는 제대로 된 답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므로 일본은 대장이 될수 없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의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21세기가 되자 이제 거의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중국을 거론한다. 그러나 중국도 역시 일본과 같은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은 천안문광장에서 국민들을 탱크로 깔아뭉갠 이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적이 없다. 그 이후의 국민적 탄압은 결코 권력의 전복, 혁명을 통해 사회적 진화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어진 적이 없는 것이다. 


일본이 역사 문제에 대해서 주변국가와 충돌을 일으키듯 중국도 동북공정이니 뭐니 해서 주변국가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것들은 그들의 의도가 나쁘다 아니다로 해석할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능으로 해석해야 한다. 공존이 가능하고 질서를 만들어 낼수 있는 것 자체가 사상적 정신적 능력인데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성공적이지만 그런 분야에서 무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세계의 새로운 리더가 되지 못하고 성장의 한계를 보이게 될수 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한두 사람이 뛰어난가 아닌가가 아니라 사회전체가 어떤 합의에 이르렀다고 생각할만한 격변을 통과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도 중국도 그런 과정이 없고 앞으로 있기도 힘들어 보이기 때문에 한계는 분명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


조반니 아리기의 세계시장 (global market)이라는 1999년 논문을 읽어보면 그가 미국 이후 동아시아의 성장을 주목한 것을 알수가 있다. 역사적 흐름으로 보아 미국 이후의 패권은 동아시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견해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한국의 민주화의 역사는 세계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한국은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띄기 시작한 동아시아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어떤 의미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구세력을 제외하고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다. 참고로 일본은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결코 세계 패권을 운운할 규모의 크기는 아니지만 세계에서 상위순위에 들어갈 정도의 나라다. 세계에서 인구 5천만 이상에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한 나라는 한국말고는 이제까지 6나라만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크기를 자랑할 나라는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규모있는 나라인것이며 대만이나 싱가폴 같은 곳과 비교될 곳이 아니다. 더구나 언젠가 북한과 통일되거나 자유왕래라도 하게 되는 때가 오면 한국어문화권은 더욱 커질것이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문맥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이 하나의 문화적 중심으로 작동할 정도의 규모를 달성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며 이와 관련되어 한국음악이나 영화 드라마등이 소위 한류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있는 현실이라고 할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과연 한국이 제대로 민주화를 달성했는가하는 것이고 단순하게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말할것이 아니라 일종의 한국적 문화, 한국적 꿈, 이상향을 사회적 정체성으로 일궈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가능성은 있다. 무엇보다 87년의 민주화운동이나 촛불집회같은 것이 한국을 지켜내는 시민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물론 현정부가 보여주듯이 한국이 이뤄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빠르게 퇴조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며 무엇보다 그 이뤄냈다고 하는 것도 어느정도의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 것인가에 대해 의문점이 없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국이 확실하게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할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동아시아 지역에 전파하고 새로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위치를 생각하면 좀 꿈같은 일이긴 하지만 세계사의 흐름을 보면 그렇게 말도 안되는 꿈은 아니며 오히려 온세계가 한국이 그역할을 해낼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지역은 가능성이 더 낮기 때문이다. 


한국은 조선성리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사람들보다 오히려 더욱 고민의 깊이가 깊은 면이 있다. 물론 유학의 본류는 중국이지만 중국은 결코 유학을 기준으로 나라를 세운적이 없다. 조선은 이론가들이 세운 이상국가의 실험이었고 그 역사가 한국인들의 피에 있기에 한글같은것이 만들어져 내려오게 된것이다.  조선이전은 고려였고 고려는 불교국가였다. 불교철학역시 한국인의 피에 인간은 응당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민의 일부로써 남아있는 것이다. 


뭘 이뤄야 하는가.


우리가 이뤄야 하는 것은 한마디로 한국 사회의 꿈이다. 코리언 드림이며 그것이 한국 사회의 정체성이 될것이다. 그리고 그꿈이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보편적 적용이 가능한 힘을 가질때 그것이 동아시아의 단합 나아가 세계의 단합을 이뤄내는데 기여하게 될것이다.


이런 대단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일상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가족의 붕괴는 사회를 허약하게 한다. 그리고 한국드라마는 상당부분이 바로 가족의 질서와 현대사회의 질서가 충돌할때 그 안에 놓여진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바쳐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대장금같은 드라마가 세계적 흥행을 할수 있었던 것은 그안에 가족적 질서인 효와 사회적 질서인 정의감이 조화된 인간형을 그리는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적 꿈의 붕괴는 세계가 더이상 무한히 성장할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는데에서 주로 기인한다. 우리는 이제 무작정 서쪽으로 달려가 깃발만 꼽으면 내땅이 될수 있는 그런 신천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스스로를 멜팅 폿으로 부르면서 여러인종이 동시에 공존할수 있는 땅으로 자랑하는 미국은 그 경제적 힘이 줄어들고 백인들의 영향력이 줄면서 그런 말이 자화자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흑인과 백인은 떨어져살고 범죄율이 높고 히스패닉이 잠식해 들어오는 곳에 가면 미국은 전혀 미국답지 않은 나라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카테리나 태풍같은 위기가 닥쳤을때 바로 폭도로 변하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미국적 꿈의 허망함을 느낀다. 2009년기준으로 미국은 한해에 자동차사고보다 더 많은 사람이 약물중독으로 죽어가는 나라가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약은 물론 여러가지 각성제, 우울증약, 진통제로 살아가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학생들의 성적은 평균으로 보면 한국같은 나라와 비교가 안되게 나쁘다. 분명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좋은 환경인것은 맞지만 미국의 교육이 성공한다고 말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끝없이 벌어지는 법적인 소송을 보면 모든것을 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미국시스템이 실패한다는 느낌을 또한 받는다. 


꿈이란건 단순한 질문이다. 어떻게 다수의 사람들이 다같이 행복하게 자유롭게 살수 있는가? 모두가 무한정 자유롭다면 그것은 혼돈이다. 결국 어느 부분에는 자유가 있고 어느 부분은 가치라는 이름으로 부자유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부자유를 받아들일까가 핵심이다.


우리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우리가 서있는 부분부터일 것이다.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때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구호가 있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꿈은 참 간단한것같지만 이렇게 심오한 말도 실은 별로 없다. 상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면 그렇다. 그리고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말도 있다. 이것도 물론 나름의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개인이 아니라 하나의사회는 그 역사적 결단속에서 정체성을 가지고 나온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뭘 잡고 뭘 이뤄야 할것인가 하는 것은 완전히 무에서 시작하기 보다는 우리가 가진것에서 키워내야 한다. 나는 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와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두개의 구호가 한국사회가 이뤄내야하고 이뤄낼수 있는 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상식이 말하는 합리성은 단순히 논리적 합리성이 아니다. 미국까지 갈것도 없이 한국에서도 지금 정치검찰 논쟁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논쟁으로 법이란 것이 무력하다는 느낌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가. 과연 분쟁이라는 것이 논리로 사실로만 풀리는 것일까? 무엇보다 가치란 근원적으로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사는 세상이란 것은 우리가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수 있어야겠다는 기본적 인권과 삶의 질을 천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런저런 핑계나 변명을 대지말고 상식이 통하고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무한히 사치하면서 살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 소통하지 않는 세상이 아니다. 상식이란 소통이 있어야 모두가 같은 상식속에서 살기 때문이며 내가 더 많이 사치하기 위해 누군가가 인간이하로 살게 되는 것은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식이란것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하나의 세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한국이 말하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란 공동체철학을 포함한 세상을 말하기를 바란다. 


나는 여기서 뭐가 상식이고 뭐가 사람사는 세상인가에 대해 더 길게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내 고민의 결과를 쓰기에는 공간도 협소하며 이블로그에서 많이 썼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고민하는 것이상으로 한국사람들이 뭐가 상식인지를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키워드로 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 한다. 상식이나 사람이라는 말은 물론 추상적이다. 그러나 미국 독립선언문의 자유나 평등도 추상적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중요한건 단어가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 체험으로 채우는 것이고 그렇기만 하다면 돌멩이와 지팡이가 우리의 꿈이라도 상관없다.


맺는 말


모두가 정해진 일을 하는 노예일때 무슨일을 해야하는가를 고민하는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 고민하나 마나 할일이 정해져 있으니까. 세계가 팍스아메리카나에서 살고 있을때가 바로 그랬다. 세계가 미국적인 꿈에 취해서 그안에서 보이는 목표를 향해 뛰어갈때 팍스아메리카나를 뛰어넘는 생각이 뭘까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러나 그 팍스아메리카나가 무너져가고 있고 무너졌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뭘위해서 살아야 할까를 응당 스스로 생각해야 하며 그것의 가치는 한없이 증가하게 될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이 그런것을 해낼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끝이 없다. 한국인은 아직 정열이 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 한국인만 잘살겠다고 하는 것이 한국인의 꿈이자 보편적 꿈이 될수는 없다. 좋은 말은 여러 성인과 철학자가 많이 했다. 한국인이 이뤄내야 하는 것은 그 좋은 말의 실체화다. 그런가치와 문화가 실체화되어 생생하게 잡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게 가능하다면 우리들의 아이들은 적어도 백년이상 가장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될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자산이 되겠는가.


반응형

댓글0